"공간에 던져진 소리처럼, 빛나게 아름다운 문장들.” 『미디어 미학』은 음악사 속 네 개의 결정적 장면을 통해, 음악이 머무는 공간의 변화를 탐구한다. 음악은 단순한 소리의 예술이 아니라, 확장되고 연결되며 초월하고 해방되는 공간의 미디어로서, 인간과 세계를 이어온 감각적 통로였다. 그레고리오 성가에서 르네상스와 바로크, 고전과 낭만주의를 지나, 재즈·디지털 음악·인공지능·미디어 아트에 이르기까지, 음악은 새로운 기술과 미디어의 등장과 함께 진화해왔다. 문자와 기보법, 인쇄술, 녹음과 방송, 디지털 기술은 음악을 기록하고 재생하면서, 그 감각과 의미를 추상화하고 표준화해왔다. 이러한 매체 변화의 과정에서 제거되거나 생략된 감각의 틈은, 오히려 우리가 음악을 통해 세계와 존재를 사유하는 방식을 형성해왔다. 음악은 단지 감상의 대상이나 도구가 아니라, 존재를 감지하고 세계를 인식하는 예술적 사유의 통로가 된다. 『미디어 미학』은 이러한 음악의 여정을 따라가며, 기술과 감각, 공간과 예술의 관계를 깊이 있게 통찰한다. 그리고 우리가 ‘듣는 존재’로서, 세계와 어떻게 관계 맺는가를 섬세하게 묻는다.

서문 인간은 미디어를 통해 세계를 만난다 9 1장. 폴리포니: 공간의 확장 말과 음악 17 그레고리오 성가와 말의 힘 20 음악의 힘을 말에 집중시킨 중세 교회 22 미디어가 된 수도원과 성당 26 고딕 성당과 다성 음악의 시작: 말의 시대를 넘어 음악의 시대가 시작되다 28 거대한 공간이 여러 소리를 품는다 32 대위법, 원근법, 기보법 35 산마르코 대성당의 더블 콰이어 37 미디어로 발전한 음악 40 2장. 악보와 인쇄술: 공간의 이동 음악을 다른 공간으로 옮겨주는 미디어가 된 악보 45 악보의 출판으로 축적되고 선택되는 음악 47 인쇄술과 악보의 대중화스타일과 취향의 탄생 49 사교계의 필수 교양이 된 음악 53 바흐의 방과 리스트의 무대: 신 앞에 선 단독자의 공간 56 소리 없는 세상을 통해 초월적 세계로 들어선 베토벤 62 바그너의 바이로이트 극장 68 3장. 녹음과 방송: 공간의 연결과 초월 음악을 복제하다 75 방송으로 확장된 음악의 공간 78 복제 기술에 대응한 미술과 음악의 차이 80 방송과 함께 성장한 미국의 오케스트라들 83 재즈: 녹음, 방송 기술과 함께 태어난 음악 89 비밥과 추상표현주의 95 시간을 편집한 글렌 굴드와 마일즈 데이비스: 분리된 공간에서 녹음된 조각들을 이어 만드는 걸작들 98 삶에서 음악을 지워가는 위대한 공연자: 그리고리 소콜로프 101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7번 교향곡〉과 120개의 스플라이싱 테이프 104 마이크와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진실과 감동: 예술가의 몰락 108 4장. 디지털 음악: 공간의 해방 데이터가 된 음악 113 백화점과 콘서트홀: 귀족들의 문화를 중산층에게 선보이는 미디어 117 쿠팡과 스포티파이: 공간의 해방과 해방의 대가 122 상상력과 호기심: 데이터 감수성 126 디지털 음악 아카이브와 메타데이터: 데이터 감수성을 위한 첫걸음 129 데이터 감수성: 생략된 감각을 복원하는 힘 132 공간의 해방과 음악적인 삶 135 5장. 인공지능 축적된 데이터를 학습하는 인공지능: 확률로 쓰이는 음악 139 바둑과 음악 141 보니 엠과 e스포츠 144 〈유리알 유희〉와 인공지능 148 해체되는 무대와 창작의 공간 151 감상의 미학 155 인공지능과 폴리포니 158 미디어가 된 인공지능: 미디어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160 6장. 미디어 아트 존재의 폴리포니 165 백한승의 〈푸른 꽃〉 170 인스타그램: 존재의 표층을 연결하는 미디어 아트 174 구글 포토: 사적 영역의 미디어 아트 177 신세계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조명: 도시 규모의 미디어 아트 181 감사의 말 참고 음악 목록 에필로그

“음악이 아름다운 것은 내가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이 이미 찬란하게 아름답기 때문이다. 음악은 다만 그 순간들이 끊임없이 사라지면서 다시 태어나고 있다는 진실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음악은 생겨나는 순간부터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고정되지 않는 것이었다. 음악은 잠시 공간을 채우지만 이내 흩어진다. 인간의 삶과 시간도 마찬가지다. 걷는 도중에도 과거의 나는 발자국만 남기고 사라진다. 가만히 앉아있는다 해도 움직이지 않아 차이와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시간들은 아예 기억에서도 사라진다. 문명은 이런 것들을 고정시키려는 노력과 함께 발전했다. 음악을 고정하는 방법이 오랜 세월에 걸쳐 고안되고 발전했는데, 음악은 그것을 고정하는 방법에 따라 변화했다. 문자와 악보, 음반 같은 미디어가 음악을 고정하기 위해 사용되었고 각 미디어의 특성에 따라 음악은 달리 전승되고 전파되었다.”

“음악은 원래 태어나자마자 사라지는 것이다. 음악은 인간의 삶처럼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속에 존재한다.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 음악이다. 이제 음악 감상자는 상상력을 통해 사라진 삶의 감각을 되살려야 한다. 데이터가 되어버린 이 아름다운 예술의 본질을 복원하기 위해서, 우선 음악을 감상하는 우리의 감각이 복원돼야 한다. 데이터가 되어 네트워크를 타고 떠도는 음악은, 매 순간 생의 마지막 순간을 살고 있는 인간의 시간에 대한 감수성으로만 복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