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마주치는 불합리한 시스템에 대한 상식적 질문인 박정선의 시들 2010년 『호서문학』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라싸로 가는 풍경소리』, 『잉크가 마르기 전』 등을 선보였던 박정선 시인이 세 번째 시집 『너의 초대는 언제나 위험했다』를 현대시세계 시인선 181번으로 출간했다. 박정선 시집 『너의 초대는 언제나 위험했다』는 전체적으로 두 개의 축을 이루고 있는데, 하나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삶의 화두이고, 또 하나는 삶에서 마주치는 불합리한 시스템에 대한 상식적 물음이다. 시 「어찌 하」는 이 시집의 한 축을 이루는 삶의 근원적 갈등과 질문에 부합한다. 욕망, 번뇌, 욕심, 유혹 등 삶을 자극하는 매개체를 뿌리치는 일은 쉽지 않다. 누군가의 욕망으로 인해 다른 누군가가 아파하는 현실은 분명 불합리하다. 그런 상황에 박정선 시인이 주변의 함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침없이 소리를 던지는 이유는 그의 시가 과거보다 현재에 가깝고 몰상식보다 상식에 가깝기 때문이다. 사회적 이슈는 박정선 시집을 이루는 또 다른 축으로 작동하고 있는데, 「고독사」라는 시를 통해 사회적 시스템과 갈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박정선의 시는 보편적 가치에서 뒤틀린 언저리에서 자주 발화하는데, 뒤틀린 현상을 마주친 바로 그 순간부터 목소리를 쏟아내지 않는 걸로 보아 그의 시가 서사 한 칸 아래에 발을 내리고 어떤 색깔로 표출할지 고민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시 「사랑의 지도」는 숙고하는 시인의 자세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담”은 외부로부터 보호하는 기능 외에도 내부의 감정들이 무분별하게 발산되는 것을 막아주는 장치다. 다시 말해 “담”은 정제되지 않은 언어를 거르기 위한 최소한의 기능이며 동시에 하나의 사유로 정리되기 전까지 다른 곳에 눈길을 두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작동한다. 독백처럼 써내려간 시 「책갈피」에서 시인의 포괄적 갈등을 엿볼 수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시세계에 대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삶의 방향성이며, 마지막 하나는 역사적 흐름에 대한 고찰이다. 박정선 시인이 어떤 목소리로 세상에 질문하는지, 어떤 자세로 갈등과 충돌하는지 듣고 보는 것으로도 족하지만,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 어떻게 번지고 스며드는지 함께 느낄 수 있다면 시는 분명 스스로 생명력을 지니게 될 것이다.

저자 : 박정선 충남 금산에서 태어났다. 2010년 『호서문학』에 시부문 시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라싸로 가는 풍경소리』, 『잉크가 마르기 전』이 있다.

시인의 말 · 5 1부 피안화 · 13 섬 · 14 어찌 하 · 15 미끼 · 16 투사 · 17 새망 걷혔다 · 18 블랙아웃 · 19 로드킬 · 20 인연 · 21 틀 · 22 내려놓지 마라 · 23 절벽마을 · 24 바람과 욕망 · 25 돈주앙 콤플렉스 · 26 2부 하얀 기억 · 31 요새 · 32 미궁에 빠지면 · 34 한발 늦었다 · 35 굿 · 36 수컷 본능 · 38 잎샘추위 · 40 동트기 전인데 · 41 신기루 · 42 관종 · 43 낯선 사람 · 44 다행이다 · 45 너만 있으면 · 46 진작에 · 47 책갈피 · 48 3부 단서 · 51 휴브리스 · 52 그녀의 무기 · 53 방황 · 54 추풍낙엽 · 55 양두구육 · 56 구원 환상 · 57 역린 · 58 열두 시 · 59 상실감 · 60 우월감 뒷면 · 62 과대망상 · 63 자화상 · 64 반응성 자아도취 · 65 혹시 · 66 4부 틀린 그림 찾기 · 69 이 남자 화법 · 70 자연법칙 · 71 노루골 연가 · 72 선 긋기 · 74 애상 · 75 습관 · 76 이순(耳順)에 던진 화두 · 77 문자 20200823 · 78 어떤 인연 맺고 있는가 · 79 레몬 팩 · 80 사랑의 지도 · 81 고독사 · 82 해설 번짐과 스며듦의 시학 / 최은묵 · 83

[표제시]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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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오늘도 절벽에 올라 그네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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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를 끼고 물구나무 선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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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세게 밀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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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 흔들리고 날개 흩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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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풍 부는 계곡으로 추락하는 그림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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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소리치는 밤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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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날개 접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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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초대는 언제나 위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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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시]

책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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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직도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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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떠난 사람 대답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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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 다녀온 사람 묵묵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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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산 아래 드리워진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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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칫하는 순간 눈폭풍 메아리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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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이어지는 발길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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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있는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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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쁜 숨 몰아치며 따져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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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힐 듯 잡히지 않는 흔적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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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에 매달린 구어체 행간 심하게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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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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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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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은 쌓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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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돌아오지 못하게 으르렁 소리 넘지 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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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는 그림자로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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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도 자꾸 쌓으면 담이 되는지는 아직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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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물지도 머물지도 않는 상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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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치 끝에서부터 어긋난 길 서로 알아가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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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는 손 내밀어도 닿지 못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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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에 닿는 순간 조금씩 무너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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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속적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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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耳順)에 던진 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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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 이치 깨닫고, 들은 대로 이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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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耳順)에
어떤 어른이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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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것
할 수 없는 것
해야만 하는 것을 구분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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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삶과
당위적 삶 속에서
무엇을 조율하며 살아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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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표 찍어야 할 시간 잊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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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디에 한 발짝 내딛고 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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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프스 바위, 다시 굴러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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