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발간된 『헤겔 정신현상학 번역과 주해(1, 2)』는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동시에 주석과 해제를 달아 놓은 책이다. 헤겔 『정신현상학』 번역은 국내에서 여러 번 시도됐지만, 헤겔 『정신현상학』을 번역하고 동시에 주석과 해제를 단 책으로서는 이 책이 처음이다. 아니 세계적으로 볼 때도 『정신현상학』을 주해하기를 시도한 책으로는 처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자는 『정신현상학』의 해석을 위해 거의 50여 년을 바쳐왔다. 그동안『정신현상학』 해설서를 여러 권 발표했으나, 이번 나온 주해 본은 그의 최종적인 노력의 결실이라 하겠다. 헤겔 『정신현상학』은 1807년 발간된 지 200년이 더 지났어도 아직 그 감추어진 진의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 헤겔이 도대체 어떤 목적으로 이 책을 지었고 나가서 이 책이 전개되는 독특한 방식이나 전체 구조도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지금껏 부분적인 해석은 있었어도 전체에 거쳐 완전하고 일관적으로 해석한 책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다. 그런데도 누구도 헤겔 『정신현상학』의 내용이 심대한 의미를 지닌 것이라는 점을 부정하지 못했는데, 간간이 드러난 내용만으로도 헤겔 이후 철학의 발전에 어마어마한 충격과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헤겔 『정신현상학』 연구와 관련된 저간의 사정을 생각해 볼 때 이를 번역한 것에 그치지 않고 심지어 주석과 해제를 붙였다는 것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엄청난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책은 헤겔 『정신현상학』의 전개 과정을 헤겔이 서론에서 제시한 ‘의식 경험’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해하고, 『정신현상학』의 최종 도달 목적인 절대정신을 그리스 철학의 비의인 ‘헨 카이 판(hen kai pan)’에서 흘러나오는 공동체 정신이라고 해석하면서 전체를 일목요연하게 서술했다. 이 과정에서 주인과 노예의 투쟁을 통해 형식적 자유의지가 출현하고 근대정신의 소외된 관계를 통해 실질적 자유의지 또는 정의를 추구하는 일반의지가 출현하며, 마지막으로 예술과 종교, 철학을 통해 이 일반의지가 구체적으로 표현된다고 보았다. 이 책의 설명이 모든 점에서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더라도, 헤겔 『정신현상학』을 이해하는 데 하나의 초석이 될 것은 틀림없다. 이 책을 토대로 질정을 거쳐나가면, 헤겔이 『정신현상학』에 감추어놓은 비의가 철저하게 드러나면서 앞으로 정신의 발전을 고대하는 세상 사람들의 갈망을 충족할 것이다. 특히 우리 민족의 철학사는 항상 심성을 함양하는 문제에 주력해 왔는데, 이 책은 그런 철학적 관심을 충족하는 데도 많이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 : 이병창 서울대학교 철학과 수학, 서울대학교 철학박사, 동아대학교 철학과 교수, 2011년 2월 명예퇴직, 현대 사상사 연구소 소장 헤겔철학과 정신분석학 및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하면서 문화철학 및 영화철학을 연구한다 박사학위 논문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정신 개념에 대한 연구, 서울대, 2000 주요저서 『영혼의 길을 모순에게 묻다(헤겔 정신현상학 서문 주해)』, 먼빛으로, 2010 『반가워요 베리만 감독님』, 먼빛으로, 2011 『불행한 의식을 넘어(헤겔 정신현상학 자기의식 장 주해)』, 먼빛으로, 2012 『지젝 라캉 영화』, 먼빛으로, 2013 『청년이 묻고 철학자가 답하다』, 말, 2015 『우리가 몰랐던 마르크스』 , 먼빛으로, 2018 『정신의 오디세이-자유의지의 역사』, 먼빛으로, 2021 『헤겔의 정신현상학-EBS오늘의 클래식』, EBS BOOKS, 2022 『지적 대화를 위한 교양인의 현대철학』, 팬덤북스, 2024 『헤겔 미학 산책-정신의 표현 기호로서 예술』, 먼빛으로, 2025 번역 프리드리히 슐레겔, 『그리스 문학 연구』, 먼빛으로, 2014 프리드리히 슐레겔, 『미학 철학 종교 단편』 , 먼빛으로, 2020 마르크스 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 먼빛으로, 2018

C (BB) 정신 9 Ⅵ 정신 11 A 참다운 정신, 인륜성 24 a 인륜의 세계; 인간의 법칙과 신의 법칙; 남성적 존재와 여성적 존재 28 b 인륜적 행동; 인간의 인식과 신의 인식; 죄와 운명 62 c 법적 상태 97 B 자기에게 소원화된 정신: 교양 114 B-1 자기에게 소원화된 정신의 세계 126 a 교양과 교양이 실현된 나라 129 b 신앙과 순수 통찰 203 B-2 계몽 229 a 계몽과 신앙의 투쟁 236 b 계몽의 진리 310 B-3 절대적 자유와 공포 336 C 자기를 확신하는 정신, 도덕성 368 a 도덕적 세계관 376 b 전치 409 c 양심, 아름다운 영혼, 악과 그 용서 443 C (CC) 종교 543 VII 종교 545 A 자연 종교 576 a 빛[Lichtwesen] 582 b 식물과 동물의 신 588 c 장인 593 B 예술 종교 604 a 추상적 예술작품 613 b 생동하는 예술작품 642 c 정신적인 예술작품 656 C 계시 종교 706 C (DD) 절대지 795 Ⅷ 절대지 797 부록-1 정신현상학을 이해하기 위한 예비지식 851 1 『정신현상학』의 발간 851 2 판본에 관해 863 3 『정신현상학』의 구조, 방법, 개념과 목적 869 5 본문의 예

c 양심, 아름다운 영혼, 악과 그 용서
[해제] 정신은 A 절 그리스 로마의 정신을 다루고, B 절은 소외된 정신 즉 교양과 계몽을 다룬다. 그리고 마지막 C 절은 자기를 확신하는 정신인데 먼저 a, b 소절에서 칸트의 의무 의식을 비판적으로 다루고 이어 c 절에서 자기 확신하는 정신의 핵심으로 되는 양심을 다룬다.
여기서 의무와 양심의 차이를 간단하게 비교해 보는 게 전체를 이해하는 데 도움 될 것이다. 의무는 내적 확신에서는 의무와 자아가 합일하면서 무조건적으로 행동하려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여전히 의무는 추상적이고 자아는 개별적이므로, 의무는 자아를 통해 행동으로 나갈 수 없다. 의무에서 행동은 내적 사유에만 머무르며 실제로 행동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제 양심에 이르면, 추상적 의무가 구체적 의무로 되고 자아는 자기를 넘어서면서 의무와 자아의 합일 즉 행동이 발생한다. 그러나 이런 행동은 여전히 현실에 부딪혀서 자기를 실현하지 못하니, 이런 현실 앞에서 다시 양심은 분열하게 된다. 의무에서 분열이 개인의 내면에 속한 내적인 분열이라면 양심에서 분열은 의무를 따르는 개인과 행동하려는 개인으로 분열된다. 이런 분열을 극복하면서 절대정신이 출현한다.
이 양심 소절로 정신 장은 마감되고, 이어서 종교 장이 시작된다. 종교 그 가운데서도 계시 종교에 이르러 마지막 장인 절대지로 이어진다. 양심 개념이 『정신현상학』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볼 때, 헤겔은 이 양심 개념을 상당히 높이 평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양심 개념의 한계를 아주 깊게 들여다보고 있다. 그는 이 소절에서 양심이 종교로 이행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설명한다.

[해제] 전체 흐름
632) 양심으로의 이행
633) 양심과 인격, 절대적 자유와의 비교
634) 양심의 개념
635~636) 양심의 인식
637) 전치의 부정
638~640) 양심적 의무와 도덕적 의무의 구별
641) 양심과 다른 의식의 비교
642) 상황 인식의 불완전성
643) 의무의 자의적 선택
644) 의무 충돌의 구체적 예
645) 의무의 추상적 일반성
646) 양심의 자주성
647) 양심의 공동체
648~649) 양심의 실제
651~653) 양심의 지반은 언어
654) 양심의 언어와 타자
655) 양심은 도덕적 천재
656~657) 양심적 공동체의 한계
658) 아름다운 영혼
659) 행동하는 양심과 평가하는 일반적 의식의 투쟁
660~662) 행동하는 양심의 위선과 자기 고백
663) 일반적 의식의 시기
664) 일반적 의식의 자기모순
665) 일반적 의식의 오인
666) 일반적 의식의 완고성
667) 행동하는 양심의 분노
668~667) 아름다운 영혼
668) 행동하는 양심과 일반적 의식의 화해
669~670) 절대정신의 출현
671) 절대정신의 개념
632) 〈SK 464:22~465:12〉〈FM 340:30~341:16〉
도덕적 세계관의 이율 배반은 곧 도덕적인 의식이 성립한다거나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더 나가서 의무는 오직 의식의 피안에 성립한다거나 아니면 반대로 오직 의식 속에서만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이율 배반이 집약적으로 표현됐던 관념[Vorstellung]을 보면 비도덕적 의식이 도덕적인 의식으로 여겨지고 그러한 우연적인 인식과 의욕도 더없이 중요한 의의를 지니는 것으로 취급되는가 하면 또한, 이 [도덕적] 의식은 행복마저도 은총 때문에 얻는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여기서 도덕적 자기의식 은 이렇듯 자기 모순적인 관념[Vorstellung]을 자기가 떠맡는 것이 아니라 이를 오히려 자신과 다른 본질 속으로 전이하게 했다. 도덕적 자기의식은 필연적인 것으로 사유해야 하는 것을 자기 자신의 밖[피안]으로 밀어 놓으므로 내용상 모순인 것과 마찬가지로 형식상 모순 으로 된다. 그러나 서로 모순적인 것으로 등장해 서로 분리됐다가 다시 해소되는 가운데 도덕적 세계관을 배회하게 했던 것은 그 자체로[an sich] 본다면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즉 순수 의무는 순수 인식이면서도 또한, 의식 속에 있는 자아와 다른 바 없으며 또한, 의식 속의 자아가 곧 [순수 의무의] 존재며 실현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실제적 의식의 피안에 자리 잡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 순수 사유 바깥의 그 어떤 것일 수 없으며 사실상 자아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마침내 자기의식은 우리가 보거나 그 자체로 보거나 자기 내로 반성하면서 그런 본질을 곧 자기 자신으로 인식하니 그런 가운데서 현실이 동시에 순수 인식이며 순수 의무가 된다. 그러한 도덕적 자기의식 자체 는 자신이 우연히 인식한 것을 완전히 타당한 것으로 여기니 그런 자기의식은 그의 직접적인 개별성을 곧 순수 인식과 순수 행동으로 다시 말해서 참된 현실이며 조화로 인식한다.

[해제] 1) 이제 양심 소절에 들어가면서 헤겔은 처음에 도덕적 의식(의식적인 도덕적 자기의식)에서 전치가 어떻게 양심으로 나가는지를 설명한다.
도덕적 의식은 의무와 현실, 순수 의지와 자아 사이에 모순을 빚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피안을 요청한다. 양자의 통일은 피안에 이르러 출현한다. 하지만 여기서 현실과 피안 사이의 모순이 벌어진다. 전자가 내용상 모순이며 후자가 형식상 모순이다.
이런 모순의 유희 가운데서 전치가 일어나지만, 이런 모순의 유희를 통해 도덕적 의식은 자기 내로 반성하면서 양자의 통일성을 자각하고 이로부터 양심이 출현한다. 이런 양심은 곧 도덕적 의식에서 피안에서 이루어진 통일이 실제로 구체적 현실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양심에서 순수 의무와 그 실현, 순수한 자아와 개별 자아 사이의 통일이 일어나면서, 헤겔은 이런 양심을 “현실이 동시에 순수 인식이며 순수 의무”가 됐다고 한다. 즉 우연한 인식이 본질에 관한 인식이며, 개별 자아가 곧 순수한 일반적 자아다. 그러므로 의무는 현실에서 직관되며, 인식은 곧바로 행동으로 나간다. 여기서 의무의 행위는 곧 행복으로 된다.
2) 헤겔이 다루는 양심 개념은 칸트 이후 등장한 낭만주의자의 양심 개념이다. 헤겔은 낭만주의의 철학에 대해 비판적이었는데, 헤겔은 『정신현상학』을 쓰기 직전 1800년 전후 셸링의 초청을 받아 예나에 머무르면서 셸링의 자연철학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1800년경 셸링은 자연철학을 넘어서 무차별성 개념에 이른다. 이 시기 이후 헤겔은 낭만주의를 비판한다. 그런 비판적 의식이 『정신현상학』에서도 드러난다. 『정신현상학』 「서문」에서는 낭만주의의 학문적 한계가 지적된다. 헤겔은 셸링의 무차별성 개념을 비판하면서 “모든 소를 검은 소로 그려낸다”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지금 서술하는 이 소절에서 낭만주의의 정신적 토대인 양심 개념을 비판한다.
헤겔의 낭만주의에 대한 대결은 정치와 연관되면서 아주 복잡하게 전개됐다. 이 시기 프로이센의 정치적 상황도 복잡했다. 나폴레옹의 지배 시절 프로이센 개혁파가 득세했으나 나폴레옹이 물러난 다음 프로이센은 다시 반동파가 장악한다.
초기 낭만주의자는 대체로 급진적이었다. 그들은 독일 통일과 자유주의적 개혁을 주장하면서 학생 운동을 일으켰다. 1807년 나폴레옹 점령 이후 독일 해방운동을 거치면서 낭만주의 운동이 분열한다. 그 가운데 일부는 급진 자유주의를 심화하면서 프로이센 봉건 체제를 비판한다. 이들은 학생조합(부르센샤프트)을 통해 1817년 바르트부르크 축제를 벌이면서 루터의 종교 개혁을 옹호하고, 반동파의 저서를 불에 태운다. 반면 상당수의 낭만주의자는 반동화한다. 이들은 해방운동을 계기로, 반동의 소굴인 오스트리아 메테르니히 체제를 지지하며 중세의 신성로마 체제를 부활하려 한다. 대표적인 사람이 낭만주의자 프리드리히 슐레겔이나 종교학자 슐라이어마허일 것이다.
정치적으로 반동파는 낭만주의자를 이용한다. 반면 헤겔은 프로이센 개혁주의를 지지한다. 낭만파와 헤겔의 대결의 한 가운데 코제부 사건이 있다. 이 사건은 1819년 시인 잔트가 러시아 스파이 코제부를 살해한 사건인데 낭만주의자는 시인 잔트를 양심에서 나온 행위로 옹호했다. 반면 헤겔은 양심에서 나온 행위도 불법일 수 있다는 주장을 전개했다. 그가 1821년 『법철학 강요』를 썼던 이유는 동시에 반동화하는 낭만주의파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헤겔은 급진적 낭만주의가 반동적 낭만주의로 전환하는 것은 필연적이라 보았다. 즉 그는 낭만주의의 두 측면은 동전의 이면이라고 보았다. 그런 논리가 이미 『정신현상학』 양심 장에서 설명되고 있다.
633) 〈SK 465:13~466:9〉〈FM 341:17~342:13〉
양심적 자아 즉 자기를 직접 절대적인 진리로 인식하며 그런 진리의 존재를 확신하는 정신은 우리가 보기에는 세 번째 정신세계에서 생성된 세 번째 자아를 뜻하는 것이니, 여기서 우리는 양심적 자아를 그 이전에 등장한 다른 자아와 간단하게나마 비교해 보기로 하자. 인륜적 세계의 진리로 등장했던 총체성 또는 그 실현[Wirklichkeit]은 인격으로서 자아다. 인격의 현존은 인정된 존재[Anerkanntsein]를 뜻한다. 그런데 이런 인격이 실체적 토대가 없는 자아에 그치듯이 인격의 현존 역시 추상적인 현실에 지나지 않는다. 인격이란 곧 타당한 것[gilt]이지만, 직접 타당한 것일 뿐이다. 이때의 자아란 다만 그것이 존재하는 지반 속에 직접 존재하는 정지한 점과 같은 것이어서 이 점과 같은 존재는 자기의 일반적 토대로부터 전혀 분리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이들 양자[인격과 일반적 토대]는 상호 운동하거나 관계를 지닐 수 없다. 여기서 일반적 토대는 자기 속에서 아무런 구별도 지니지 않으므로 결코 자아의 내용을 이룰 수도 없으며 또한, 자아도 여기서 자기 자신을 통해서 충족되는 것도 아니다. -두 번째 자아는 교양의 세계가 자기의 진리에 도달한 결과 등장한다. 여기서 정신의 분열이 다시 되돌아오니-이것이 곧 절대적 자유다. 이 두 번째 자아에 와서 개별 자아와 일반적 토대 사이의 최초의 직접적 통일[인륜적 정신]은 분리되고 만다. 즉 일반적 토대는 또한, 순수한 정신적 본질이거나 인정된 존재 또는 일반 의지며 일반적 인식으로 머무르더라도 [개별] 자아가 추구하는 대상이며 동시에 개별 자아의 내용을 이루며 또한, 개별 자아가 일반적으로 현실화된[seine allgemeine Wirklichkeit] 것이다. 그러나 이 일반적 토대는 [개별] 자아로부터 독립된[frei] 현존의 형식을 지니지 않은 탓으로 이 [개별] 자아를 통해서는 그 어떤 충족된 내실에 이를 수도 없으려니와 또한, 여하한 긍정적 내용이나 어떤 세계에도 다다를 수 없다. 그에 반해서 도덕적 자기의식 은 사실 자신의 일반적 토대를 독립적으로[frei] 존재하게 하니 이 일반적 토대는 고유한 본성[을 지닌 것]으로 되고 따라서 도덕적 자기의식은 자기를 지양하는 가운데[in sich als aufgehoben] 이 일반적 본성에 충실하려 한다. 그러나 이 자기의식은 여기서 그와 같은 두 가지 규정이 교대로 벌이는 전치의 유희일 뿐이다. 그리하여 양심의 단계에서 비로소 자기의식은 자신에 관한 확신 속에서 이전에는 비어 있던 의무와 내용 없는 법과 그리고 텅 빈 일반 의지를 채우는 내용 을 얻는다. 또 이런 자기 확신은 [도덕적 의식에] 못지않게 직접적인 것이므로 자기의식은 여기서 자기의 구체적 현존을 얻기에 이른다.

[해제] 1) 헤겔은 여기서 양심을 앞에서 등장했던 여러 일반적 자아와 비교한다. 우선 인격은 법의 상태에서 등장하는 형식적 자아다. 인격은 순수하게 자의적으로 결정하는 권리일 뿐이며 이 점은 누구에게나 같으며 일반적으로 즉 법적으로 인정된다. 이 법은 인격의 형식적 권리만을 인정하는 형식적 법이다.
그 결과 앞에서 보듯 인격 사이에서 자기 결정의 내용을 둘러싼 대립이 발생하며 결국, 이 대립에서 힘을 통해 승리한 자가 곧 세계의 주인 황제가 된다. 황제는 하나의 자의적인 인격으로서 이 법 내용을 자의적으로 결정한다.
2) 교양의 세계 끝에 일반 의지가 출현한다. 일반 의지는 잠재적으로 일반적 자아지만, 아직은 구체적 내용이 없는 부정적 자아다. 이 일반 의지는 고유한 자아를 지니지 못하고 ?개별적 자아로부터 자유로운 현존의 형식을 지니지 않은 탓으로” 개별적 의지에 의존하여 자기를 실행하려 한다. 그 결과 실현된 모든 것은 개별적이므로 일반 의지는 그 모든 것을 부정할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 텅 빈 무만이 남는다. 그러므로 일반 의지는 “그 어떤 충족된 내실에 이르지 못한다.”
3) 이제 세 번째로 등장한 일반적 자아가 곧 도덕적 의식의 자아다. 여기서는 개별자가 절대적 자유에서 등장한 죽음의 공포를 통해서 자기를 지양하며 일반 자아를 받아들이면서 여기서 비로소 일반 자아가 독립적인 구체적 현존을 지니고 출현한다. 그것이 곧 순수한 자유의지다.
순수 의지를 통해 정신은 자기를 실현하여 자기의식에 이르렀으나, 그 첫 번째 단계인 도덕적 의식에서는 이 자기의식은 내적 확신에 머무르고 현실적으로는 일반적 의무는 개별 자아는 대립한다. 그 결과 일반적 의무와 개별 의식 사이에 “전치의 유희”가 일어나면서 비록 왜곡된 방식이기는 하지만, 도덕적 자기의식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런 왜곡된 자기의식이 자기의 진리를 자각하면서 마침내 일반적 의무를 자기 자신으로 파악하는 양심이 출현한다. 개별 자아와 순수한 의무의 통일이다. 이런 통일 속에서 ?이전에는 비어 있던 의무와 내용이 없는 법과 그리고 텅 빈 일반 의지를 채우는 내용이 출현한다.” 양심은 구체적인 의무를 인식하며 동시에 인식을 즉각적으로 행동으로 전환한다.
634) 〈SK 466:10~22〉〈FM 342:4~342:13〉
이와 같은 자기의 진리[귀결]에 이르러 도덕적 자기의식은 이제 지금까지 전치를 발생시킨 실마리였던 자기 자신 내에서의 분리를 지양한다. 그런 분리란 곧 그 자체 존재[순수 의무]와 자아의 분리였으며 또한, 순수 목적을 의미하는 순수 의무와 이런 순수 목적에 대치되는 자연과 감성을 의미하는 현실의 분리였다. 도덕적 자기의식은 자기 내면으로 복귀함으로써 마침내 구체적인 도덕 정신으로 끌어올려진다. 이런 구체적 도덕 정신은 순수 의무를 의식할 때도 결코 실제적 의식에 대치되는 텅 빈 기준에 매달리지 않는다. 오히려 여기에서는 순수 의무와 그에 대치되는 자연이 다 같이 지양된 계기로 존재한다. 따라서 구체적 정신은 직접적인 통일 속에서 자기를 실현하게 하는 도덕적 본질인 까닭에 여기서는 행동도 또한, 직접[unmitelbar] 구체적인 도덕적 형태를 띨 뿐이다.

[해제] 여기서 헤겔은 양심의 개념을 제시한다. 그것은 곧 순수 의무와 현실의 일치이며 순수 의지와 자연적 감성 또는 개별 자아의 일치이다. 그러므로 양심은 구체적 현실에서 일반적 의무를 직접 인식하며 또한, 인식한 의무를 즉각적으로 행동하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헤겔은 이를 ?자기 내면으로 복귀한” 도덕적 자기의식 또는 ?구체적 도덕 정신’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헤겔은 양심 개념을 설명하는 가운데 이미 그 한계를 지적한다. 양심에서 의무와 자아의 통일, 의무와 현실의 통일은 어디까지나 직접성의 한계 내에 머무른다는 것이다. 그 직접성이 어떤 결과를 자아내는 것인지는 곧 설명된다. 미리 그것을 설명하자면 양심은 이처럼 직접적 통일을 주장하지만, 이는 지각 단계에 머무른다. 지각이 성질의 통일과 성질의 공존이 교체하듯이, 양심에서도 통일과 분열이 교체한다. 사유 속에서 양심은 통일이지만, 실제 현실에서 양심은 분열한다. 즉 이런 직접적 통일은 내적 사유에 그치고 실제 행동에서는 다시 대립이 발생한다. 이것이 나중에 설명되는 아름다운 영혼과 행동하는 야심의 분열이다.
635) 〈SK 466:23~467:35〉〈FM 342:14~343:13〉
이제 여기에 행동이 일어나는 하나의 사건[Fall]이 눈앞에 있다 하자. 이 사건이란 [도덕적] 의식이 인식하기에는 어떤 대상적 현실일 뿐이다. 그런데 도덕적 의식은 양심에 이르면 이 행동이 일어나는 사건을 직접적이며 구체적인 방식에 따라서 파악하며 더욱이 이런 사건이 존재하는 모습은 오직 의식이 그 사건을 파악하는 그대로일 뿐이다. 인식이란 자신이 대상으로 삼은 것과 다른 것일 때 그 인식은 우연적이지만, 자기 자신을 확신하기에 이른 정신[양심]은 더는 그와 같은 우연적인 인식일 수는 없으며 또한, 자기 안에서 지어낸 허구[Erschaffen von Gedanken]여서 현실과는 다를 가능성을 지닌 것일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