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발간된 『헤겔 정신현상학 번역과 주해(1, 2)』는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동시에 주석과 해제를 달아 놓은 책이다. 헤겔 『정신현상학』 번역은 국내에서 여러 번 시도됐지만, 헤겔 『정신현상학』을 번역하고 동시에 주석과 해제를 단 책으로서는 이 책이 처음이다. 아니 세계적으로 볼 때도 『정신현상학』을 주해하기를 시도한 책으로는 처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자는 『정신현상학』의 해석을 위해 거의 50여 년을 바쳐왔다. 그동안『정신현상학』 해설서를 여러 권 발표했으나, 이번 나온 주해 본은 그의 최종적인 노력의 결실이라 하겠다. 헤겔 『정신현상학』은 1807년 발간된 지 200년이 더 지났어도 아직 그 감추어진 진의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 헤겔이 도대체 어떤 목적으로 이 책을 지었고 나가서 이 책이 전개되는 독특한 방식이나 전체 구조도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지금껏 부분적인 해석은 있었어도 전체에 거쳐 완전하고 일관적으로 해석한 책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다. 그런데도 누구도 헤겔 『정신현상학』의 내용이 심대한 의미를 지닌 것이라는 점을 부정하지 못했는데, 간간이 드러난 내용만으로도 헤겔 이후 철학의 발전에 어마어마한 충격과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헤겔 『정신현상학』 연구와 관련된 저간의 사정을 생각해 볼 때 이를 번역한 것에 그치지 않고 심지어 주석과 해제를 붙였다는 것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엄청난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책은 헤겔 『정신현상학』의 전개 과정을 헤겔이 서론에서 제시한 ‘의식 경험’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해하고, 『정신현상학』의 최종 도달 목적인 절대정신을 그리스 철학의 비의인 ‘헨 카이 판(hen kai pan)’에서 흘러나오는 공동체 정신이라고 해석하면서 전체를 일목요연하게 서술했다. 이 과정에서 주인과 노예의 투쟁을 통해 형식적 자유의지가 출현하고 근대정신의 소외된 관계를 통해 실질적 자유의지 또는 정의를 추구하는 일반의지가 출현하며, 마지막으로 예술과 종교, 철학을 통해 이 일반의지가 구체적으로 표현된다고 보았다. 이 책의 설명이 모든 점에서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더라도, 헤겔 『정신현상학』을 이해하는 데 하나의 초석이 될 것은 틀림없다. 이 책을 토대로 질정을 거쳐나가면, 헤겔이 『정신현상학』에 감추어놓은 비의가 철저하게 드러나면서 앞으로 정신의 발전을 고대하는 세상 사람들의 갈망을 충족할 것이다. 특히 우리 민족의 철학사는 항상 심성을 함양하는 문제에 주력해 왔는데, 이 책은 그런 철학적 관심을 충족하는 데도 많이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 : 이병창 서울대학교 철학과 수학, 서울대학교 철학박사, 동아대학교 철학과 교수, 2011년 2월 명예퇴직, 현대 사상사 연구소 소장 헤겔철학과 정신분석학 및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하면서 문화철학 및 영화철학을 연구한다 박사학위 논문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정신 개념에 대한 연구, 서울대, 2000 주요저서 『영혼의 길을 모순에게 묻다(헤겔 정신현상학 서문 주해)』, 먼빛으로, 2010 『반가워요 베리만 감독님』, 먼빛으로, 2011 『불행한 의식을 넘어(헤겔 정신현상학 자기의식 장 주해)』, 먼빛으로, 2012 『지젝 라캉 영화』, 먼빛으로, 2013 『청년이 묻고 철학자가 답하다』, 말, 2015 『우리가 몰랐던 마르크스』 , 먼빛으로, 2018 『정신의 오디세이-자유의지의 역사』, 먼빛으로, 2021 『헤겔의 정신현상학-EBS오늘의 클래식』, EBS BOOKS, 2022 『지적 대화를 위한 교양인의 현대철학』, 팬덤북스, 2024 『헤겔 미학 산책-정신의 표현 기호로서 예술』, 먼빛으로, 2025 번역 프리드리히 슐레겔, 『그리스 문학 연구』, 먼빛으로, 2014 프리드리히 슐레겔, 『미학 철학 종교 단편』 , 먼빛으로, 2020 마르크스 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 먼빛으로, 2018 ?

번역자 서문 3 서문[Vorrede] 17 서론[Einleitung] 175 A 의식 215 1 감각적 확신 또는 이것과 의도[meinen] 217 II 지각; 사물 그리고 속임 241 Ⅲ 힘과 지성, 현상과 초감각적 세계 275 B 자기의식 343 IV 자기를 확신하는 진리 345 A 자기의식의 자립성과 비 자립성: 주인과 노예 367 B 자기의식의 자유: 스토아주의, 회의주의 및 불행한 의식 392 C (AA) 이성 461 Ⅴ 이성의 확신과 진리 463 A 관찰하는 이성 487 a 자연의 관찰 493 b 자기의식을 순수한 상태에서 외적 현실과 관계해 관찰 하는 것: 논리적 법칙과 심리학적 법칙 590 c 직접적인 [신체적] 현실과 자기의식의 관계에 관한 관찰, 관상학과 골상학 605 B 이성적인 자기의식의 자기 자신을 통한 실현 679 a 쾌락과 운명[필연성] 702 b 심정의 법칙과 자만의 광기 717 c 덕과 세속 740 C 그 자체로 자기에게 나타나면서 스스로 실재하는[reell] 개체성 762 a 정신적인 동물의 나라와 속임 또는 사태 자체 767 b 법칙을 발견하려는 이성 815 c 이성에 의한 법칙의 검증 829

4) 〈SK 13:32~14:12〉〈FM 11:8~23〉
실체적 삶의 직접적인 상태 를 벗어나 교양을 획득하는 시원을 얻기 위해서는 우선 일반적인 원리와 관점에 관한 지식을 획득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사태에 관한 사상[Gedanken]을 획득하는 단계로까지 자신을 끌어올릴 뿐만 아니라 그에 못지않게 이런 사상을 근거로 뒷받침하거나 반박하면서, 더 나가서는 사상 속에 담긴 구체적이고도 풍부한 내용을 세부적으로 규정함으로써 이 내용을 질서정연하게 전달하면서 성실하게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교양의 시원은 일단 삶의 요구를 충족하려는 성실한 태도를 우선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성실한 삶의 태도야말로 사태 자체를 경험하는 데로 인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또한, 진지한 개념이 사태 자체의 심연에서 솟아 나온다면 이른바[Konversation] 면식[面識:Kenntnis]이나 [단순한] 평가도 자기에 합당한 자리를 얻게 될 것이다.

[해제] 이 구절의 전반부에서 헤겔은 3 구절에서 언급한 서술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서술에 이르기 위해서는 일반 원리를 인식한 위에서 서술로 나가야 한다. 전자가 상승하는 과정이라면 후자는 하강하는 과정이며 마르크스는 전자를 연구 과정, 후자를 서술 과정으로 설명한 적이 있다.
헤겔은 서술 과정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는데, 사태를 어떤 원리에 따라서 규정하여 사상을 획득하는 것만 아니라, 이를 근거를 통해 뒷받침하거나 반박해야 한다. 서술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다시 현상이 지닌 풍부한 내용을 그것이 지닌 추상적 계기들의 필연적 관계 즉 ?질서정연한” 체계로 재구성해야 한다. 이런 체계적 인식에 도달해야만 비로소 사태에 관한 개념적 인식이 출현하게 된다.
헤겔은 현상의 최초의 직접적인 인식을 면식이라고 하며, 이것이 최종 근거에 해당하는 개념을 통해 재구성되면서 도달한 개념적 인식 속에서 이런 면식도 그 일면성을 벗어나 ?자기에 합당한 자리를 얻게 된다”라고 한다.
이 구절 후반부에서 헤겔은 이런 교양에 이르기 위해서는 ?성실한 삶’이 필요하다고 한다. 성실한 삶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명백하게 서술하지는 않았으나, 뒤에 나오는 ?모순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라는 개념을 고려할 때, 그것은 현실 속에서 안주하지 않고 그 경계선까지 나아가 모순에 부딪히는 적극적 삶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모순에 부딪히면 기존의 인식은 반성하는 사유를 통해 더 깊은 인식으로 발전한다.
1 참된 것의 지반은 개념이며 그 참된 형태는 학문적 체계다.
5) 〈SK 14:13~30〉〈FM 11:24~12:2〉
진리가 실존하는 참된 형태는 그러한 진리가 전개된 학문적 체계일 뿐이다. 철학이 학문의 형식에 가까워지도록 협력하는 것-즉 단지 지혜[Wissen]에 대한 사랑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참된 지식[wirkliches Wissen] 으로 되려는 목표에 가까이 가도록 협력하는 것-이런 것이 내가 내 앞에 설정한 목적이다. 지식[Wissen]은 곧 학문[Wissenschaft]이어야만 한다는 내적 필연성은 지식의 본성 속에 깃들어 있다. 이 내적 필연성에 관한 만족할 만한 해명은 오직 철학 그 자체를 서술하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진리가 학문이어야 할] 외적인 필연성에 관해서라면 이 외적 필연성은 우연적인 인격이나 개인적 동기와 무관하게 일반적인 방식으로 파악해야 한다. 그러면 외적 필연성은 내적인 필연성과 같은 것으로 된다. 왜냐하면, 외적 필연성이란 시대[Zeit]가 현존하는 자기의 계기들을 표상하는[vorstellt] 형태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학이 학문의 단계로 끌어올리는 때[Zeit]가 다가왔다는 것, 바로 이 점을 명백히 밝히는 것이야말로 학문을 목적으로 하는 우리의 시도를 참되게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때가 닥쳐왔다는 사실만이 위에서 말한 목적이 필연적이라는 것을 해명하고 또한, 이 목적을 구체적으로 전개할 것이기 때문이다.

[해제] 위에서 헤겔은 철학은 유기적 통일체로서 서술 또는 학문적 체계라고 규정했다. 1절을 마무리하면서 헤겔은 철학은 ?지혜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참된 지식’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게서 참된 지식이란 곧 체계적 학문을 의미한다.
왜 철학이 체계적 학문이 돼야 하는지, 내적 필연성은 지식의 본성에서 도출된다. 그 도출은 지식이 전개된 최종 결과 즉 『정신현상학』이라는 이 책의 끝에 가서야 확립될 것이니, 헤겔은 여기서는 그런 내적 필연성에 대한 도출은 일단 생략하겠다고 한다. 헤겔은 이 「서문」에서 다만 학문적 체계가 요구되는 외적 필연성 즉 시대적 필연성만 말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외적 필연성이 곧 내적 필연성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은 무척이나 의미심장한데 이렇게 설명할 수 있겠다.
헤겔에게서 이런 철학은 예술과 마찬가지로 시대 정신의 발전에 따라 발전한다. 철학의 역사적 발전은 단순한 시대적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고 동시에 추상적 지식이 더 구체적으로 또한, 개별적 표면적 지식이 더 심원한 일반적 지식으로 발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헤겔은 대중 속에 출현한 그 시대 정신을 살펴보면서 ?시대가 현존하는 자기의 계기들[시대 정신의 계기들]을 표상하는 형태”를 보자고 한다. 그 속에 학문적 철학에 대한 요구가 있다면, 그것은 외적인 필연성을 의미하는 것 이상이며 이 시대가 요구하는 철학의 학문적 체계가 그 이전 비학문적 철학보다 더 참된 더 심원한 철학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그러므로 시대적 필연성은 곧 내적 필연성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2 정신이 도달한 현재의 처지
6) 〈SK 14:32~15:29〉〈FM 12:3~16〉
진리의 참된 형태는 학문의 형식[Wisenschaftlichkeit]으로 판단된다[gesetzt]. -같은 말이지만, 진리는 개념을 지반으로 실존한다고 주장된다. -나는 이렇게 주장하면서도 이런 주장이 이 시대 사람들의 [진리에 관한] 통념[Vorstellung]이나 여기에 따르는 갖가지 귀결에 배치[Widerspruch]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통념과 귀결은 이 시대 사람들에게 하나의 확신으로 유포됐고 그렇게 유포된 만큼 월권을 행사했다. 그러므로 그런 확신에 배치[Widerspruch]되는 나의 입장에 관해 약간의 해명을 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은 아닐 것이다. 물론 나의 해명이 반대하는 이 시대의 통념이 하나의 단정[Versicherung]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의 해명 역시 현재로서는 하나의 단정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 시대 사람들의 통념은 참된 것은 어떤 때는 직관으로, 또 다른 때는 절대자에 관한 직접 지[Wissen]나, 종교, 존재-즉 신적 사랑의 중심부에 있는 존재 가 아니고 바로 절대자 자체의 존재 -로 불리는 것 속에서 또는 오히려 다만 그런 종류로서만 현존한다고 가정한다. 이런 가정에서부터 개념의 형식과는 반대되는 것이 철학의 서술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요청된다. 즉 절대자는 개념 형식으로 파악돼서는 안 되고 느낌으로 다가가거나 직관 돼야 한다고 가정된다. 또 절대자에 관한 개념이 아니라 절대자에 관한 느낌[Gef?hl]과 직관이 핵심 단어로 돼야 한다고 가정된다.*

*FM주 〈12:10~16〉: 헤겔은 여기서 에셴마이어C.A.Eschenmayer와 괴레스J. G?res, 야코비F. H. Jakobi 그리고 무엇보다도 슐라이어마허F. Schleiermacher를 염두에 두는 것 같다. 참조: 슐라이어마허F. Schleiermacher, 「두 번째 담화, 종교의 본질에 관해」, 『종교에 관해』, S. 126: “종교를 지닌다는 것은 우주를 직관하는 것이다. ... 종교의 본질은 사유도 행동도 아니며, 직관이고 감정이다.”
7) 〈SK 15:30~16:15〉〈FM 12:17~13:8〉
이제 그와 같은 요구가 나타나는 현상을 좀 더 일반적인 맥락 속에서 파악하며 동시에 그러한 현상을 자기 의식적인 정신이 현재 있게 된 단계에서 살펴본다면 자기 의식적 정신은 자신이 이전에 사상[Gedanken]의 지반에서 이끌어가던 실체적인 삶을 넘어서 있다. -즉 정신은 이제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던 직접적인 실체를 초월하며 그런 확신 속에서 얻었던 만족이나 안정[Sicherheit]도 초월한다. 왜냐하면, 그런 확신은 의식이 자신의 본질[Wesen]과 화해하면서 즉 내면적이든 외면적이든 어디에든 현현하는 본질[Wesen]과 화해하면서 소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의식적인 정신은 실체적 삶을 넘어서 이를 벗어나며 이것과 반대되는 극단 즉 실체를 상실해 버리고 자신을 자기 자신으로 반성하는 정신으로 이행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러한 자기 내 반성마저도 초월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자기 의식적 정신은 그의 본질적인 삶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더 나가서 이와 같은 상실을 의식하며 그 자신의 내용을 이루는 유한성마저도 의식하기에 이른다. 마침내 정신은 이런 술지게미 앞에서 돌아서면서*1 그 자신이 곤경에 빠져들었음을 고백하고 또 이를 탓하면서 철학으로부터 이 시대 정신의 본성이 무엇인지에 관한 단순한 지식[Wissen]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철학을 통해 다시 실체적이고 견고한 존재를 회복하기를 요구한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욕구에 부응하려면 철학은 폐쇄된 실체를 열어젖힘으로써 이 실체를 자기의식으로 끌어올리는 것보다는-그에 못지않게 실체에 관해 혼돈에 빠진 의식을 질서정연한 사유와 단순한 개념으로 되돌려보내기보다는-구별된 사상들을 뒤흔들어 심지어는 구별하는 개념마저도 억제하고 다만 본질에 관한 느낌만을 살려내고자 할 뿐이며 통찰이 아니라 다만 경건한 마음을 얻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가정된다. 아름다운 것, 신성한 것, 영원한 것 또는 종교나 사랑이라는 것 등은 모두가 깨무는 즐거움을 불러일으키는 데 요구되는 미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2 개념이 아닌 도취가, 냉엄하게 전진하는 사상의 필연성이 아니라 들끓는 흥분이 실체의 풍요로움을 지탱하며 동시에 이것을 더 확장하는 것이라고 가정된다.

*1 FM주 〈12:26~27〉 잃어버린 아들의 일화를 시사한다. 누가복음 15장 16절: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2 FM주 〈13:4~8〉 참조: FM주 〈12:10~16〉; 〈36:3~16〉; 〈47:7~l5〉; 〈48:12~17〉
8) 〈SK 16:16~17:9〉〈FM 13:9~28〉
이 시대의 요구에 상응해 긴장된, 조급하다시피 한, 흥분된 것으로 보이는 노력이 발생해 인간을 감각적이며 통속적인 것 또는 개별적인 것에 빠진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서 그들의 시선을 하늘의 별로 향하게 하려 한다. 그런 노력은 지금 여기에 있는 인간이 신적인 것을 완전히 망각한 채 한낱 벌레처럼 티끌과 물로 만족하고 마는 듯이 여기고 있다. 인간이 예전에 가졌던 하늘은 더없이 풍부한 사상과 형상으로 채워져 있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의 의미는 오직 그 자신을 하늘나라로 이어주는 빛줄기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즉 시선은 하늘에 고정된 채 이 현재[Gegenwart]에 머물러 있지 않고 이 현재를 넘어 신적인 본질로 또는 이렇게도 말할 수 있겠는데 피안의 현재를 향해 미끄러지듯 줄달음쳤다. 이런 상태에서 정신의 눈을 다시 한번 지상의 것으로 향하게 하고 여기에 머무르게 하려면 강제가 필요했다.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비로소 차안의 것이 지닌 모호하고도 혼란스러운 의미 속에서도 오직 천상[?berirdische]의 세계에서만 있을 수 있는 명료함을 찾아내고 이른바 경험이라고 불리는* 지금 있는 것 자체에 주목하는 일이 흥미롭고 정당한 것으로 여겨지게 할 수 있었다. -지금은 위에서 얘기한 것과는 정반대 궁핍이 눈앞에 나타나고 있다. 즉 이 지상의 것이 지닌 의미는 너무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이제 그 의미를 그 너머로 들어 올리기 위해서는 앞에서와 마찬가지의 힘이 필요하게 됐다. 정신은 [지금] 너무나도 빈곤하게 보인다. 그 때문에 마치 사막 속에서 목말라하는 방랑자가 단 한 모금의 물을 애타게 찾을 때와도 같이 정신은 오직 신적인 것 일반에 관한 빈약한 감정이라도 찾아 생기를 얻으려 하는 듯이 보인다. 정신이 이와 같은 것에 만족을 느낀다는 사실을 통해 정신의 상실이 어느 만큼 큰가를 헤아릴 수 있다.

*FM주 〈13:22〉: 헤겔은 여기서 아마도 베이컨[F.Bacon]을 염두에 두는 것으로 보인다. 헤겔은 『철학사 강의』에서 베이컨을 경험론 철학의 지도자라 불렀다. 참조: 헤겔G. W. F. Hegel, 『철학사 강의』, 『전서』, 15권, S. 278.

[해제] 헤겔은 그의 시대가 ?탄생과 이행의 시기”라고 규정한다. 그에 따르면 그의 시대는 그리스적인 실체적 삶이 무너지고 자기를 반성하는 개인이 지배하게 됐다. 그런 개인주의가 심화한 나머지 이제 다시 실체적 삶에 대한 요구가 등장했다.
이와 같은 시대 규정은 여전히 민족적으로 분열되고 전체적으로 봉건주의에 머무르는 독일의 현상과 유럽 전역에 전파되는 자본주의의 발전을 동시에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시대에 철학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게 됐다고 한다. 시대는 철학이 단순히 실체의 본성에 관한 지식에 그쳐서는 안 되고 “실체적이고 견고한 존재를 회복할 수 있는” 실천적 힘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헤겔의 철학이 실천적 요구에서 나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헤겔이 요구하는 실체적이고 견고한 존재란 『정신현상학』의 서술 끝에 밝혀지겠지만, 곧 공동체적인 삶을 의미한다.
이 시대 더없이 ?풍부한 사상과 형상으로 채워진 하늘”은 사라지고 정신은 너무 빈곤하게 돼서 마치 ?사막 속에서 목말라하는 방랑자가 한 모금의 물을 애타게 찾는 것처럼” 보인다. 헤겔은 그 때문에 ?시선을 다시 하늘로 향하게 하려는 노력”이 발생했는데, 그것이 바로 낭만주의라고 한다.
헤겔은 그런 점에서 낭만주의를 높이 평가하지만, 그 한계를 분명하게 밝힌다. 왜냐하면, 낭만주의는 실체적 삶의 회복을 자기의식이나 개념, 지식을 통해 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직관이나 느낌을 통해 접근하려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낭만주의는 “냉엄하게 전진하는 사상의 필연성”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경건한 마음”과 “들끓는 흥분”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정신현상학』을 읽는 근본적인 질문에 부딪힌다. 공동체적 삶의 요구를 직관이 아닌 개념의 필연성에 따라 인식하려는 헤겔의 목표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달성할 수 있는 것일까?
9) 〈SK 17:10~18〉〈FM 13:29~14:2〉
그러나 이처럼 받는 것에 만족하면서도 주는 것에는 인색한 것은 학문이 아니다. 다만 경건만을 찾는 자, 현존이나 사상이나 지상에 존재하는 것이 지닌 다양성을 안개로 덮어버리고 아무 규정성도 없는 신성이 주는, 무어라 규정할 수 없는 것을 즐기려는 자는 그가 과연 어디서 그런 것을 발견할 수 있겠는지 한 번 곰곰이 따져보는 것이 좋겠다. 그는 자기가 무엇이나 된 듯이 자화자찬하면서 이를 통해 우쭐해 할 수단을 쉽게 발견하겠지만, 철학은 그처럼 경건 하고자 하는 것을 경계해야 마땅하다.
10) 〈SK 17:19~18:16〉〈FM 14:3~22〉
학문을 포기하고 경건한 마음에 만족하는 나머지 그와 같은 도취와 혼미가 학문보다 더 우월하다고 요구하는 일*1은 있어서는 더욱 안 된다. 이런 예언자인 체하는 언사는 자기가 사태의 중심에 파고들어서 그 사태의 심층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모든 규정성[Horos: 경계]을 경멸하며 개념이나 필연성이란 오직 유한한 것 속에 머무를 뿐인 반성하는 사고에 그친다는 듯이 의도적으로 멀리한다. 그러나 박식하지만, 텅 빈 것이 있듯이 심원하지만, 텅 빈 것도 있다. 실체의 외연에 속하는 것이라도 유한하고 다양한 것을 분출하기는 하지만, 이런 것들을 하나로 결합할 힘은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이와 반대로 실체의 내포에 속하는 것이라도 아무 내용이 없어서 담백한 힘이기는 하지만, 자신을 확산하는 일이 없이 그저 자기만을 지킬 뿐이어서 천박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정신의 힘은 오직 그것이 밖으로 표출된 만큼만 크며 정신의 깊이도 또한, 자신을 밖으로 펼치는 가운데[Auslegung] 자신을 확산하며 동시에 그렇게 펼치더라도 자신을 상실하지 않는 만큼만 깊이를 지닌다. -동시에 개념이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