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인 서문 종합문예지 청목 제19호를 맞이하며 가을 초입, 사색의 계절에 문단의 ‘종합문예지 청목 19 가을호’를 통해 독자 여러분께 선보입니다. ?계절이 주는 풍요로움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이야기를 만나고,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봅니다. 이번 가을호는, 이처럼 찰나의 순간들이 빚어내는 삶의 아름다움과 그 이면에 숨겨진 다양한 서정과 감정들을 한데 모았습니다. 시, 동시, 시조, 디카시 수필, 소설 등에 이르기까지, 각 작품 속에서, 현실 속에 벌어지는 숱한 이야기들을 작가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문학을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을 문학적 치유의 힘 ‘영속성과 지속성’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은 절대 변하지 않는 감정을 약속한다기보다는, 그 관계를 행동으로 지키겠다는 다짐이라고 얘기한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을 상기해 봅니다. 문단이 우뚝 서기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함께 하고자 하는 가치의 산물이, ‘종합문에지 청목 19호’로 반증하는 것입니다. 문단의 대표 문학지로 곧 20회 생일을 앞두고 있다고 하니 감개무량하며, 바로 실천적 행동의 공유, 청목 19호 참여를 통한 밀알이 되어주신 기성 작가님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이번 가을호를 통해 마음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감성을 깨우고, 자신만의 가을 이야기를 완성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길 기원합니다. 이 책이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의 여유와 함께하는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 주기를 바라며, 문학고을에서는 앞으로도 작가님들의 수준 높은 좋은 작품과 다양한 콘텐츠로 전국의 수많은 독자 여러분을 찾아뵐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문학고을 회장·시인 조현민

발행인 서문 6 조현민 | 발행인 서문 _ 종합문예지 청목 제19를 맞이하며 디카시 8 김선규 신입사원 외 2편 11 염혜원 쿵 외 2편 15 김다령 오늘도 외 2편 19 이정경 무정설법 외 1편 22 이제성 서성이는 빛 외 1편 디카시론 26 염혜원 디카시 서평 시론 33 조현민 시론2) 수필론 42 정혜령 수필론 소설론 49 남기선 소설론 4章 인문학 산책 57 김선규 AI 시대, 인문학이 더욱 중요한 이유 64 이지선 아도르노의 미학과 현대 시인의 역할 명수필 72 신경희 ‘행복’ 만들면되지 77 정혜령 가장 좋은 지금… 사람꽃 신작시 84 고영재 추억의 바란追憶의 叛亂 외 2편 91 권기영 노을빛 외 2편 95 김계이 장지미 아지매 외 2편 102 김미선 빨간 우산과 아빠 외 2편 106 김민희 고뇌 외 2편 110 김분자 낮은 곳에서 외 2편 114 김선순 가까움은 역설 외 2편 120 김순호 존재함은 말이 없다 외 2편 127 김영련 고 녀석 외 2편 132 김영철 화양연화花樣年華 외 2편 136 김영현 아이스 아메리카노 외 2편 143 김용 삶 외 2편 147 김유신 진달래 외 2편 155 김철홍 책 외 2편 159 박만근 마음은 시냇물 외 2편 163 박위업 계축년癸丑年 첫사랑 외 2편 169 박현숙 최고의 선물 외 2편 174 방성욱 적도의 9월 외 2편 179 서기선 붉은 독백 외 2편 186 신기순 파묘 외 2편 192 안귀숙 내일 외 2편 197 안찬호 노란 은행잎 엽서 외 2편 201 양윤화 고요한 울림 외 2편 207 양희범 우로보로스의 뱀 외 2편 215 염여명 퐁당fondant 외 2편 223 오향숙 예술의 혼 외 2편 229 유광식 집에 가는 길 외 2편 234 윤승희 산그리메 외 2편 238 이가령 내 복을 바라보다 외 2편 245 이성의 계단 외 2편 251 이세종 산사와 장미 외 2편 255 이애리 집요하게, 더 집요하게 외 2편 261 이정범 어느 소나기 오는 날 외 2편 265 이지선 흰 달 외 2편 271 이지훈 곱닥한 제주도 외 2편 279 이현숙 추억이 새고 있다 외 2편 286 임상훈 생선 좌판 할머니 외 2편 294 임성환 아침 기도 외 2편 299 정석호 심장 외 2편 310 정선녀 7월의 장마 외 2편 314 정성희 그 남자의 재력은 해운대 썬 베드 1열 외 2편 321 정인수 붓 외 2편 326 조동수 열대야의 경고 외 2편 330 조영애 새는 잠시 날개를 접었다 외 2편 337 최근용 옥수수 이야기 외 2편 341 최해영 들국화 외 2편 346 홍계선 대나무가 되기까지 외 2편 신작시조 356 김옥희 고독의 숨결 외 2편 신작동시 362 허은주 연못 외 2편 366 현은경 음표 낚시 외 2편 371 황미선 망초꽃 외 2편 신작수필 376 강영란 마지막 식당 봉사 383 권명자 오빠, 미안해 389 배병규 사랑의 목줄 393 신경희 MZ 속으로 397 엄현서 운전은 무서워 403 이상학 (재인아! 내 얘기 좀 들어보렴) -세근이- 408 이필수 노래와 함께 오는 추억들 414 정안나 가정家庭 동산바치와 커피나무 423 주진복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 신작소설 428 김주하 유리 벽

〈디카시〉
김선규 염혜원 김다령 이정경 이제성

〈디카시론 | 염혜원〉

디카시 서평

염혜원



일상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일상이 되는 디카시-삶의 여정과 공존, 담현 김선규 시인의 디카시 수상작 감상

우리는 일상에서 무심히 지나치는 풍경들을 얼마나 자주 마주하는가?!
길가의 그림자, 운동화 한 켤레, 회색 벽 틈의 작은 풀잎…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 장면 속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짧은 언어로 응축해 다시 우리에게 건넨다. 디카시는 바로 그런 예술이다.

디카시는 사진과 짧은 언술이 만나 이루어진다. 사진은 일상의 현상을 기록하지만, 디카시의 세계에서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영상 기호가 된다. 언술은 그 기호에 의미를 불어넣어 짧고 함축적인 문장으로 새로운 울림을 만들어낸다. 이 만남이 곧 ‘사진과 문장의 화학작용’이며, 독자는 그 속에서 일상이 예술로 승화되는 순간을 경험한다. 또한 디카시는 설명문이 아닌 시적 언술이어야 하며, 짧은 호흡(5행 이내)의 언어 속에 압축과 여백의 미학을 담아내야 한다.

〈시론 | 조현민〉

시론 2)

조현민


자유시의 개념과 특징
자유시는 정형시나 운율의 규칙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행, 연, 내재율을 갖는 시 형식이다.
행 길이와 운율, 시각적 배치 등이 시인의 자유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며, 현대시에 주로 쓰인다.
주제나 대상에 제한 없이 감정, 사상, 순간적 이미지 등 어떤 것도 소재가 될 수 있다.

자유시의 대표 사례와 시평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은 1930~40년대 한국 모더니즘 시단에서 독특한 자리를 차지한 시인으로, 특히 토속적 언어와 자유시 형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대표작 중 하나인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저작권이 이미 만료되어 전문을 소개 가능.


사물시의 개념과 특징
사물시는 관념보다는 구체적 사물에 집중하여, 사물의 존재와 본질을 언어로 감각적으로 재현하는 시적 흐름을 말한다.
시적 자아가 직접 사물을 경험하고 관찰하면서, 사물의 생생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창작한다.
형식은 자율적일 수도, 정형시일 수도 있지만, 핵심은 사물 자체에 대한 고찰이다.
자유시는 형식적 자유를, 사물시는 대상에 대한 시적 태도를 강조하는 것으로, 두 시는 소재와 창작 표현적 성격에서 본질적 차이를 지닌다.
〈수필론 | 정혜령〉

수필론

정혜령

1. 수필의 정의
수필은 개인의 사유(思惟)와 경험을 산문 형식으로 자유롭게 풀어낸 글입니다. 특정한 형식이나 엄격한 논증을 요구하지 않고, 일상적 소재에서 출발해 사적 성찰과 보편적 통찰을 연결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감정·기억·관찰·단상 등이 자연스럽게 흐르며, 글쓴이의 ‘목소리’(시선·어조)가 중요합니다.

2. 수필의 핵심 특징
개인성: 1인칭 관점의 사적 체험·사유.
자유로운 형식: 길이·구조가 비교적 유연.
서사와 성찰의 결합: 작은 사건 → 장면화 → 의미화(반성)로 이어짐.
구체성: 추상 말고 구체적 이미지·감각으로 설득.
문체·목소리: 독특한 문체(리듬, 어휘)가 매력 포인트.

3. 수필을 잘 쓰는 방법
1) 소재 발굴: 관찰 → 기록 습관 만들기
일상에서 ‘사소한 것’에 민감해지세요. (예: 엘리베이터의 광고 문구, 골목의 냄새, 버스정류장의 표정)
스마트폰에 ‘메모/ 보이스’로 즉시 기록. 하루 1개씩 ‘특이한 관찰’ 적기(50~100자).

2) 중심주제(테마) 설정
소재를 한두 문장으로 요약해보세요: “이 장면이 말하려는 건 무엇인가?”
주제를 너무 넓게 잡지 말고, 작은 깨달음이나 감정으로 좁혀라. 예: ‘어머니의 손맛’ → ‘기억과 위안의 통로’처럼.
〈소설론 | 남기선〉

소설론 4章

남기선


1. 소설 창작의 정석

(1) 개 요
소설을 쓰는데 있어서 아무리 주제가 좋고 플롯이 완벽하다 해도 완성하지 않으면 소설이 아니다. 소설은 단편이든 중편이든 장편이든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일단 원고가 완성이 되어야 소설이다. 200자 원고지 100매 분량 단편 소설을 쓰는데 있어서 90장을 써놓고 나머지 10장을 쓰지 않아도 소설이라고 볼 수 없다. 그냥 진행 중인 습작품이라 할 수 있다.
‘소설 창작의 정석’의 컨셉트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완성을 하는데 골격을 두고 있다. 완성한 후에 퇴고 과정을 거쳐서 소설의 형식에 맞는 작품을 완성해 보자는 것이 컨셉트다.

(2) 소설 그대로 따라 쓰기
일반적으로 미술이나 음악은 단체 교육이 가능하다. 여기서 단체 교육이 라고 하는 점은 구체적인 학습을 말한다. 미술에서 색의 3요소라든지, 음악에서 악보를 읽는 법을 말한다. 문학 교육은 어디 예술 장르처럼 구체적 교육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문학 교육의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대강의 개요만 학습하고 있다.

(3) 왕초보를 위한 신개념 작법
어떠한 일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말로 ‘밥이 되든 죽이 되든 노력해 봐’ 라는 말이 있다. 성공을 하던지 실패를 하던지 무조건 최선을 다해 보라는 말일 것이다.

〈인문학 산책 | 김선규 ㆍ 이지선〉

AI 시대, 인문학이 더욱 중요한 이유


김선규


우리는 지금 인공지능이 일상을 변화시키는 전환점에 서 있습니다. ChatGPT와 같은 생성형 AI가 등장하면서 번역, 글쓰기, 심지어 창작 영역까지 기계가 인간의 영역을 넘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이제 인문학이 필요할까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AI가 발달할수록 인문학의 가치는 더욱 선명해지고 있습니다.

기술 발전이 가속화될수록 우리에게는 본질적인 질문들이 더욱 절실해집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기술과 인간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이러한 근본적 물음에 답하는 것이 바로 인문학의 역할입니다. AI 시대에 인문학은 단순히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필수적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1. 인간 이해의 깊이를 제공하는 인문학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경험, 그리고 문화적 맥락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인문학은 수천 년간 축적된 인간 경험의 보고입니다. 문학 작품 속 인물들의 내적 갈등, 철학자들의 사유 과정, 역사 속 인간들의 선택과 그 결과들을 통해 우리는 인간 본성의 깊이를 탐구할 수 있습니다.




아도르노의 미학과 현대 시인의 역할


이지선


현대 사회에서 예술과 시의 역할은 단순한 감각적 즐거움을 넘어 사회적 성찰과 비판의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특히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대표 사상가인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W. Adorno)는 예술의 자율성과 대중 예술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예술의 본질을 재정립하려 하였다.
아도르노의 미학은 단순히 개인적 취향이나 미학적 논의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20세기 격동의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아도르노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인간성과 문명의 붕괴를 목격하였다. 특히 나치즘과 홀로코스트는 ‘문화와 이성이 진보를 이끌 것’이라는 계몽주의적 낙관을 무너뜨렸다. 그는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다”라는 말로, 예술이 전쟁과 폭력의 현실을 외면한 채 아름다움만을 노래할 수 없음을 강조했다.
또한 20세기 중반, 자본주의는 예술마저 상품화하였다. 영화, 라디오, 대중음악 등은 대량 생산과 소비 구조 속에서 획일적으로 제작되었고, 이는 인간의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켰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아도르노는 예술의 자율성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저서 『계몽의 변증법』에서 계몽이 인간 해방을 약속했지만, 동시에 도구적 이성으로 변질되어 지배와 억압의 수단이 되었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예술은 단순히 계몽의 도구가 아니라, 현실을 비판하고 전복하는 힘으로 기능해야 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아도르노가 예술의 자율성과 부정성을 강조하게 만든 토대였다.
〈명수필 | 신경희 ㆍ 정혜령〉


‘행복’ 만들면 되지

신경희


운전면허증 갱신 문자가 왔다. 이 나이에 운전도 않으면서 갱신이 필요할까 망설이는데 남편과 아들이 면허증을 반납할 나이에 갱신은 해서 뭐 하느냐는 말을 했다. 순간 본인은 나보다 나이가 많음에도 운전을 하면서 내게 갱신을 하지 말라는 남편의 불평등한 말투에 짜증이 나고, 어미를 무시하는가 싶은 아들의 말림에도 화가 나서, ‘백세시대인데 일단 갱신을 해놓고 봐야지’ 하면서 둘의 말을 일축했다.

막상, 갱신을 하겠노라 마음은 먹었지만 남편과 아들의 말이 맞는 듯 장롱면허로 있는 것이 불편함으로 다가오고 갱신을 하려면 가야 하는 면허시험장까지의 거리도 만만치 않음에 귀찮은 생각이 들어 하루를 미루면서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여러 생각을 하느라 잠을 설쳤다.

다음 날 아침을 준비하면서도 마음을 잡지 못하다가 갑자기, 이 나이면 어때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뒷방 늙은이로 있기보다 젊은 시절 자동차 운전은 했었다는 증거가 되는 면허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자존감을 세워주는 듯 여겨져 마음 바뀌기 전에 얼른 가야지 하면서 부지런히 경찰서로 갔다.

민원실 운전면허 관련 창구 앞에 가니 젊은 사람들도 있지만 나보다 연배로 보이는 분들도 몇 분 계셨는데 나와 같은 장롱면허가 아닌 생업과 관련해 갱신을 하려는 듯 보였다. 한참을 기다려 안내를 받고 시력 청력 검사 등을 마친 뒤 신청서를 제출하고 나오는 발걸음이 무척 가볍고 큰일을 해내고 난 뒤에 갖는 성취감 같은 흥분이 일며 만족스러운 웃음이 나왔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이런 내 모습이 늙은이의 쓸데없는 욕심으로 여겨지고 고령 운전자의 사고가 늘어나 각 지자체에서 노인들의 면허증 반납을 유도하는 분위기에 역행하는 듯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나뿐만 아니라 내 앞에서 생업에 필요해 갱신신청을 하신 분들을 생각해보면 노인들에게 돈을 줄 테니 면허증을 반납하라는 방식은 ”늙은 사람들 돌아다니며 사고 치지 말고 집에서 그냥 쉬세요.”라고 하면서 노인의 자존심을 깎아 내리는 듯 여겨지기도 해 면허증 반납 유도에 앞서 노인의 자존심을 세워주면서 사고를 막을 수 있는 다양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가장 좋은 지금… 사람꽃

정혜령


열 시 넘은 밤시간에 집 앞 편의점에 갔다. 저녁 먹은 속이 울렁거리는 것이 체기가 있는 듯 영 편치 않다. 비상약통에 소화제는 없었다. 전반적으로 위의 기능이 좋지않은 가족들이 가끔 체하거나 소화불량일 때가 있어 항상 상비로 챙겨놓았었는데 약이 떨어진 것을 몰랐던 것이 밤시간 외출의 원인이었다. 요즘 편리해진 것은 약국은 문을 닫아도 편의점에서 소화제나 간단한 상비약 정도는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약을 사고는 아파트 단지를 걸어오는데 앞서가는 시커먼 덩치 큰 그림자 하나가 보인다. 휘청휘청 비틀비틀 웬 남자가 술을 제법 마신 양인지 손에는 꽃다발을 들고 걸어가고 있다. 걷는다기보다는 땅 위에 긴 두 다리 붓으로 뭔가 휘적휘적 그어내는 것 같다. 앞으로 나아가고는 있으니 걷는 것은 분명할터. 위태위태 불안하다. 그래도 꽃다발은 놓치지 않고 꼭 붙들고 있다. 가는 길이 그길이라 내가 뒤를 따라가는 모양새였는데 내가 사는 아파트 동으로 들어간다.

엘리베이터 층수를 누르는데 5층 사는 아기 아빠인 듯 싶다. 그 집이 이사온지 얼마 되질 않아 그 집 남편의 얼굴은 모르지만 항상 화사하게 화장을 하고 다니는 눈에 띄는 예쁘장한 아기 엄마. 네 살이라는 여아의 육아와 살림만으로도 벅찰 텐데 오며가며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늘 단정하고 인사를 잘한다. 술을 마시고 들어가는 그집 남편의 늦은 시간의 귀가를 보면 부부 기념일은 아닐 테고 부부가 일상적으로 꽃다발을 주고받는 모양이다. 꽤나 낭만적이고 멋스럽게 느껴진다.

나의 젊은 시절을 들여다봤다. 가끔은 꽃을 사들고 들어오던 남편은 아이들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까지도 내게 기념일이나 마음에 내키면 꽃을 다발로 안겨주는 낭만을 보였었다. 그렇다고 감동을 주고 세밀하게 살피는 낭만적인 성향의 남자는 아니다.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가 몸에 밴 그 시절 그 연령대의 일반적 남편 성향이다. 어찌보면 막내이므로 부단히도 막내스러운 유머러스하고 재미있는 부분은 있으나 뭔가에 대한 배려는 이프로 부족한 사람이다.

어느 순간부터 꽃보다는 아이들이 먹을 로스트치킨이나 회사 근처의 유명하다는 일본식 과자나 줄서서 먹는다는 족발 등등을 사들고 왔다. 나 또한 실용을 따지는 아줌마스러운 아줌마인지라 별반 섭섭함이나 아쉬움 같은 것은 없었던 것 같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을 키우느라 아름다운 꽃을 보고도 편안하게 느끼고 감상할 만한 여유가 있을리 만무했던 바쁜 시절이었다.

〈신작시〉

고영재 권기영 김계이 김미선 김민희 김분자
김선순 김순호 김영련 김영철 김영현 김 용
김유신 김철홍 박만근 박위업 박현숙 방성욱
서기선 신기순 안귀숙 안찬호 양윤화 양희범
염여명 오향숙 유광식 윤승희 이가령 이성의
이세종 이애리 이정범 이지선 이지훈 이현숙
임상훈 임성환 정석호 정선녀 정성희 정인수
조동수 조영애 최근용 최해영 홍계선

〈신작시조〉

김옥희


〈신작동시〉

허은주 현은경 황미선


〈신작수필〉

강영란 권명자 배병규 신경희 엄현서
이상학 이필수 정안나 주진복


〈신작소설〉

김주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