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은 불심(佛心)이요 교(敎)는 불어(佛語)다”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의 은사이자 한국불교 대강백으로 추앙받았던 고(故) 백운지흥 스님(1934~2020)이 1990년대 대한불교신문에 연재했던 ‘조계고승전’이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불기 2569년(2025) 5월24일자로 간행된 〈조계고승전〉(불교신문 刊)은 진우스님이 발행인으로, 원적 5주기를 맞아 은사 스님의 원고를 정리하여 출간한 것.5월24일 담양 용흥사에서 봉행된 백운당 지흥 대강백 원적 5주기 추모다례재에서는 이 책이 참석 대중들에게 배포됐다. 이 날 추모다례재에는 종열·돈명 대종사를 비롯한 원로의원과 제17·18·19·21교구본사 주지 스님, 중앙종회의원 등 종단 주요 인사들과 김영록 전남도지사, 이개호·전진숙·조인철 국회의원 등 정관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백운스님을 추모하며 큰스님의 넋을 기렸다.이번에 출간된 ‘조계고승전’은 백운스님이 1992년부터 1993년까지 대한불교신문에 연재했던 조계종 고승들의 일화와 행적을 정리한 것으로, 근현대 한국불교를 이끌어온 선지식들의 수행과 가르침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읽어도 그 가치가 빛바래지 않은 것은 백운스님의 깊은 안목과 치밀한 고증, 그리고 유려한 필치 덕분이다. 백운스님은 만암대종사의 조카이자 동산대종사이 직계 상좌로서 한국불교의 중심에서 직접 보고 들은 내용들을 기록했으며 이는 오늘날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조계고승전〉에는 한국불교 조계종의 종조인 보조국사(普照國師)를 시작으로 진각국사(眞覺國寺), 나옹보제존자(懶翁普濟尊者), 태고원증국사(太古圓證國師), 무학왕사(無學王師), 서산대사(西山大師), 청허휴정(淸虛休靜), 부휴선수(浮休善修), 백곡처능(白谷處能) 등 조계종의 법맥을 이어온 역대 고승 100여명의 행적이 시대순으로 정리되어 있다. 특히 근현대 고승인 금명보정(錦溟寶鼎), 석두보택(石頭寶澤), 효봉학눌(曉峰學訥), 구산수련(九山秀蓮)선사 등의 일대기도 포함되어 있어, 조계종이 일제강점이와 불교정화운동을 거치며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역사적 맥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백운스님은 1944년 장성 백양사에서 출가한 이후 범어사에서 동산대종사를 시봉하고, 통도사에서 운허 강백 지도하에 월운·지관·홍법스님과 동문수학했다. 화엄사, 범어사, 송광사 등에서 강주를 역임하며 후학을 양성한 선교겸수(禪敎兼修)의 대표적인 스님이다.특히 불교신문 주최 고승일화 공모전에서 두 차례나 당선될 정도로 뛰어난 필력을 지녔으며, 〈양치는 성자〉(편양언기 선사 일대기), 〈임제록 연의〉, 〈진묵대사〉, 〈초의대사〉, 〈완당 김정희〉, 〈만암대종사〉, 〈동산대종사〉 등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선(禪)은 불심(佛心)이요, 교(敎)는 불어(佛語)”라는 가르침을 평생 실천한 백운스님은 이 책에서도 각 고승들의 선풍과 교학적 업적을 균형있게 조명하고 있다.총무원장 진우스님은 5주기 추모다례재에서 은사 스님의 영전에 차를 올리며 “은사 스님께서는 학자로서, 강백으로서 평생토록 큰 소임은 맡지 않으시고 오직 후학양성과 집필에만 전념하시어 청렴하게 살아오셨다”고 추모했다. 백양사 주지 무공스님은 추모사에서 “백운당 대강백 큰스님의 발자취를 따라 크게는 부처닙의 법을 좇고, 안으로는 종단발전과 불법홍포에 진력하겠다”고 다짐했다.김영록 전남도지사는 “이런 때일수록 자신을 경계하고 욕심을 버리라고 했던 백운스님의 가르침을 되새겨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어가자”고 말했다.〈조계고승전〉은 단순한 인물평전을 넘어 근현대 한국불교사의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고려시대 보조국사로부터 시작하여 조선시대 나옹·태고·무학선사를 거쳐,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이끌었던 서산대사와 사명대사, 그리고 일제강점기와 불교정화운동을 거친 근현대 고승들까지 700여년에 걸친 조계종의 법맥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각 고승의 일대기를 상·중·하로 나누어 상세히 기술한 나옹보제존자전, 4편에 걸쳐 서술한 태고원증국사전, 근현대 불교중흥의 주역인 효봉·구산선사전 등은 그 자체로 독립된 연구서로서 가치를 지닌다. 백운스님은 ‘조계고승전’을 엮으면서 “알뜰하게 그리고 멋지게 살다 가신 이 땅의 많은 고승들의 자취에서 우리 조상의 얼과 사상을 배워 혼탁한 현실을 타개하고 제도하는 지혜와 슬기를 발휘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백운스님은 2020년 6월19일 ‘하얀 낮에는 밝은 구름 벗을 삼고, 푸른 밤에는 맑은 냇물 벗이 되어, 시비 벗어난 자연의 온갖 모습이여, 정녕 그대는 나를 즐겁게 하는구나’라는 임종게를 남기고 담양 용흥사에서 원적에 들었다. 이 책은 출가수행자는 물론 한국불교사에 관심있는 일반 독자들에게도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