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영웅들』은 지난 30년간 전개되어온 북한인권운동의 역사를 최초로 체계적으로 기록한 역사서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의 대기근과 대량 탈북 사태 이후, 한국과 국제사회 곳곳에서 시작된 북한인권운동은 오늘날 유엔, 의회, 시민사회, 종교계, 학계로까지 확산되었다. 그러나 이 운동의 역사는 그 중요성에 비해 거의 기록되지 않았다. 이 책은 그 공백을 메운다. 저자 최홍준은 KBS PD로서 북한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해 온 언론인이자, 학문적으로는 정치학 박사이자 통일운동 실무자다. 그는 수년간의 인터뷰와 자료 수집을 통해, 한 세대 동안 북한인권운동의 현장을 지켜온 사람들-‘숨어있는 영웅들’-의 발자취를 생생히 복원했다. 책은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북한인권시민연합·북한인권정보센터·피랍탈북인권연대·북한민주화네트워크 등 주요 단체들의 탄생과 분투, 종교계와 탈북민 단체, 대북 정보유입 활동, 국제연대와 유엔 COI(조사위원회) 보고서까지를 종합적으로 다룬다.

인사말·발간사 서문 _ 숨어있는 영웅들 / 1 제1장 북한인권운동, 길을 열다 / 7 북한인권시민연합 / 11 북한인권정보센터 / 38 피랍탈북인권연대 / 56 북한인권운동의 정치화 논란 / 76 제2장 타는 목마름으로: 북한민주화네트워크 / 85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창립 전사 / 88 북한민주화란 무엇을 말하나 / 95 북한민주화를 위한 방법론 / 105 중국사업은 어떤 것이었나 / 118 제3장 북한인권과 민주화운동의 확산: 국민 속으로 / 131 물망초 등등 / 136 이미일 / 174 통영의 딸 귀환운동 / 205 최성용 / 206 수퍼맨 / 227 정치범수용소 철폐운동 / 228 전환기정의워킹그룹 / 244 북한인권법 제정 / 254 제4장 종교계의 북한인권운동 / 263 개신교 / 263 불교 / 281 제5장 북한민주화는 우리 손으로 / 295 탈북민 단체의 결성 / 298 자유북한방송과 김성민 / 305 북한개혁방송과 김승철 / 320 성통만사 / 322 NK워치 / 330 허광일 / 333 노체인 정광일 / 335 정치범수용소 경험 / 342 제6장 정보유입 활동 / 353 대북전문 언론매체의 창설 / 356 민간대북방송 / 360 대북전단 / 370 제7장 국제적 연대의 길 / 389 국제연대의 모색 / 391 해외의 북한인권단체 / 410 ICNK: 북한의 반인도범죄를 철폐하자 / 425 COI 보고서: 명실상부한 국제규범화 / 445 유엔 인권정례검토 UPR / 457 맺음말_ 새로운 30년을 맞이하며 / 469

북한인권운동의 시작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사람이 故윤현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이다. 목사이기도 한 윤현 이사장은 1969년부터 민주화운동을 시작했는데 1972년 국제앰네스티(AI) 한국지부 창립을 주도하면서 유신체제 아래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운동에 헌신했다. 1972년 3월 28일 한국지부가 창립되었는데, 윤현 이사장은 1985년까지 10여 년간 한국지부 전무이사와 이사장을 맡아 활동했다. 이 기간 동안 민주화운동으로 투옥된 많은 사람들이 앰네스티 한국 지부의 도움을 받았는데, 김지하 시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해찬 전 총리, 이재오 전 장관 등도 도움을 받았다. (11p)


모든 북한인권 단체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게 있다. 재정적 어려움보다 더 힘든 건 호응이 없는 것이라고. 김영자 사무국장 역시 그랬다.42) “처음에 3년 정도 월급 없이 내 돈 털어 해야 했잖아요. 사람들이 지쳐요. 그런데 더 힘든 건 메아리가 없는 거였어요. 메아리가 없는 게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이사장님께 더는 못 하겠다, 이제 손 털고 나가겠다, 그랬던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이사장님이 당신도 힘들다면서 조금만 더 버텨보자 그랬는데 1999년 2월부터 외국의 지원을 받아서 하다못해 교통비라도 해결이 돼서 이어갈 수 있었죠.”
이 글을 쓰는 필자도 늘 느끼는 것이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은 북한문제에 대해 별반 관심이 없다. 왜 그럴까. 김영자 국장에게 물어봤다.43) “크게 봐서 세 가지를 들 수 있어요. 첫째는 지루한 거죠. 똑같은 이야기가 쭉 반복되는 거죠. 북한하고 엮인 문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이 박혀 있어요. 둘째는 그리고 지금은 많이 완화됐지만 한때는 북한이라고 하면 우리한테는 적이라는 인식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과거의 적이라는 사실에서 지금은 같이 살아갈 사람들이라는 인식의 혼란이 생겼죠. 셋째는 지나친 정치화라고 봐요. 앞에서 말한 적이라는 인식에 맞서 그걸 없애겠다고 하는 반대의 움직임이 있었죠. 그런데 그게 반대로 지나치게 움직이다 보니 부작용이 생겼어요. 너무 정치화돼버렸어요. 북한문제만 나오면 그게 어떤 문제이건 그냥 정치화되어 버려요. 같이 살아야 하는 사람들인데... 그러면서 국민들의 마음에 와닿지 않는 것 같아요. 저희는 접근을 조금 달리 해요.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해달라. 이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36p)



(저자 서문) 우리가 흔히 ‘북한문제’라고 하는 것은 크게 4개의 과제로 구성되어 있다. 핵문제, 인권문제, 세습 수령독재문제, 통일문제다. 이 중에서 민주화와 직접 관련 있는 것은 인권문제로 핵문제와 더불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인권은 민주화를 위한 아주 기본적인 토대다. 두 개가 같은 것은 아니지만 인권 없이는 민주화가 없으며, 민주화가 되지 않으면 인권도 보장할 수 없다. 북한인권 문제는 단편적,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라 북한체제의 구조적이고 조직적인 문제다. 긴 안목에서 볼 때, 인류의 역사는 인간의 자유와 인권을 확대하고 보장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지금 당장 잘 풀리지 않는다고 포기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또한 북한의 인권과 민주화는 통일을 이룩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남북이 같은 인프라를 갖췄을 때 통일은 한 발 더 다가온다. 이렇게 보면 북한문제는 모두 다 연결되어 있는 문제이고, 그 중에서도 인권과 민주화는 기본적인 과제라 하겠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로마 교황청은 유대인 학살을 수수방관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한 변명은 “증거가 없어서...” 라는 궁색한 대답이었다.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일어난 일들이 2차 대전 중 교황청에 보고되기도 했으나 당시 교황 비오 12세는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나서지 않았다. 만약 가톨릭이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했더라면 적어도 학살 규모는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북한인권 문제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강제수용소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것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강제수용소 생활을 직접 체험한 탈북민의 증언도 있고, 이에 대한 언론 보도와 공신력 있는 기관의 보고서도 많다.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북한에는 정치범수용소에 최대 20만 명에 이르는 수감자가 있다. 이들의 가족까지 합하면 약 50만 명이 최악의 인권유린 현장인 정치범수용소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다. 통일이 된 다음에 이들이 “우리가 죽어갈 때 당신들은 무엇을 했느냐”고 물을 때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식량이 없어 굶주리는 북한주민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은 아름다운 행위다. 그렇다면 정치범수용소에 갇힌 이들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이것보다 못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아직 이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지 않다. 북한에 최소한의 자유가 확보되어 그 참혹한 인권유린 실태가 확실하게 알려졌을 때, 그때 우리는 무어라 말할 것인가. “증거가 없다,” “몰랐다,” 이렇게 말할 것인가? 세월호 침몰로 어린 학생들이 숨졌을 때 우리는 얼마나 가슴 아파했나. 그런데 그보다 수백 배 아니 수천 배 더 참혹한 현실을 외면하는 이중성에 대해 뭐라고 변명할 것인가.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서울에서 직선거리로 봤을 때 전라남도 진도 팽목항의 거리보다 함경남도 요덕수용소의 거리가 더 가깝다는 사실이다.


세계 역사를 보면 자국민의 인권을 침해한 나라는 이웃나라도 쉽게 침략한다. 대표적인 것이 나치 독일과 소련이다. 나치는 유대인 학살은 물론이고 자국 내의 사회주의자, 사민주의자, 공산주의자, 신체장애인, 정신장애인, 동성연애자 등을 체포해 수용소에 가두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나라의 인권에 관심을 갖는 것은 결국 우리의 안보와 평화를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북한인권이 확보된다면 한반도의 평화도 한 걸음 더 다가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한반도 평화라는 것은 사상누각이다. 우리 사회에서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잘못 생각하는 중요한 대목이 “북한인권 이슈를 제기하면 한반도 평화에 저해된다”는 잘못된 인식이다. 인권, 평화, 안보는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을 구상하고 집필하는 기간 내내 한국은 진영(陣營) 대립 문제로 매우 소란하다. 그러나 인권 문제는 진영의 문제가 아니다. 북한인권은 인권 문제 중에서도 최악의 상황이다. 그렇지만 한국정치를 갈라놓은 진영 대립은 북한인권 문제에서도 대립을 가져왔다. 진보는 보수가 ‘북한 때리기’의 일환으로 북한인권 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한다고 말한다. 반면 보수는 진보가 다른 인권 문제들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유독 북한인권 문제는 방관한다고 비판한다. 이 대립은 좀체 해소될 기미가 없다.(중략)

『숨어있는 영웅들』은 단순한 운동사가 아니다. 이 책은 “누가, 어떤 신념으로, 어떤 벽을 넘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북한문제’가 정치의 언어로만 소비되는 현실 속에서, 저자 최홍준은 인권의 본질을 되묻는다.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해달라-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이 짧은 문장은 이름 없이 헌신해 온 북한인권운동가들의 신념을 가장 잘 압축한다. 이 책은 1990년대 중반 북한의 대기근과 대량 탈북 사태 이후, 세계 시민사회가 하나의 목소리로 북한 인권을 외치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30년의 궤적을 되짚는다. 저자는 오랜 방송인으로서, 그리고 정치학자로서 축적한 통찰을 바탕으로 수많은 단체와 인물들의 생생한 증언을 기록했다. 각 장은 마치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처럼, 절망 속에서도 길을 낸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제1장에서는 故윤현 목사가 이끌었던 북한인권시민연합의 창립 과정을 비롯해, 한국에서 인권운동이 어떻게 북한을 향한 연대로 확장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제2장은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이름 아래 결성된 북한민주화네트워크가 제시한 비전과 이념적 논의를 다루며, 제3장에서는 ‘물망초’와 ‘통영의 딸 귀환운동’, 정치범수용소 철폐운동 등 시민이 참여한 다양한 인권운동을 조명한다. 제4장은 종교계-특히 개신교와 불교계-가 보여준 신앙적 연대의 기록이며, 제5장은 자유북한방송, 북한개혁방송, 노체인 등 탈북민이 주체가 된 운동의 현장을 담았다. 제6장은 대북방송과 전단을 통한 정보유입 활동을 추적하며, 제7장은 ICNK, COI 보고서, 유엔 인권정례검토(UPR) 등 국제사회가 북한인권을 보편 규범으로 정착시켜온 과정을 되짚는다. 『숨어있는 영웅들』은 한 시대의 기록이자, 동시에 인류의 양심을 깨우는 증언집이다. 이 책은 북한인권운동이 단지 ‘북한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세계 시민의 이야기임을 일깨운다. 북한인권 30년의 여정을 통해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고통받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이 책은 그 물음에 대한 응답이며, 다음 세대를 향한 조용하지만 단단한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