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한 살'의 기쁨과 그리운 '내 것'들의 초상 《주머니에 나이 한 살을 넣어 두었다》는 삶의 고비마다 마주친 상실과 그리움,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하는 따뜻한 위로를 담아낸다. 작가는 "내가 글을 쓰는 이유... 그리움"이었다고 고백하며, 일찍 여읜 아버지와의 이별을 글 속에서 '늘 함께한 것'으로 되살려낸다. 문단의 따뜻한 격려가 글쓰기를 지속하는 힘이 되었고, 아내, 엄마, 시어머니, 할머니의 역할을 해내면서도 가장 어려웠던 '글짓는 일'에 대한 진솔한 고백은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줄 것이다. 수록작 중 「아버지의 초혼(招魂) 소리」는 작가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집에 대한 애틋한 서정을 펼쳐 보인다. 성큼 들어선 대문 안의 인기척 없는 쓸쓸함, 남의 집이 되어버린 '내 것'에 대한 서먹함과 서러움은 뜨거운 눈물로 터져 나온다. 봉숭아 꽃물 들이던 여남은 살의 행복했던 기억, 달맞이꽃을 보던 사춘기, 그리고 무엇보다 "목소리가 쩌렁쩌렁"했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공간 곳곳에 배어 있다. 특히, 아버지 돌아가시던 밤, 사촌 동생이 사다리 위에서 혼을 부르던 초혼'의 아픈 기억과 열다섯 살의 푸른 달빛은 가슴에 화인(火印)처럼 남아 슬픔의 깊이를 더한다. 표제작인 『주머니에 나이 한 살을 넣어 두었다』에서는 6.25 사변 후 출생신고의 혼란 속에서 호적에 이름이 누락 될 뻔했던 어린 시절의 아찔한 사건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호적계 직원이었던 아버지 친구분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이름은 올리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한 살 적게" 호적에 기록된 일화는 이 수필의 핵심적인 '여유'와 '재치'로 승화된다. 작가는 이 덤으로 얻은 '한 살'을 주머니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삶의 지혜를 발휘한다. 헷갈릴 때면 오늘의 운세를 보고 띠를 정해 사는 유쾌함, 그리고 '철이 좀 덜 들어 보여도 젊은 나이가 왠지 좋은' 인생 후반부의 달콤한 여유는 독자에게 미소를 짓게 할 것이다. 작가의 글은 서툰 삶의 고백과 그리운 소리, 냄새, 그리고 눈물까지도 예쁜 글로 엮어 "읽다 보면 마음이 따뜻해져서 춥지 않게" 하는 힘을 가진다. 이 책은 주머니 속 '나이 한 살'처럼 덤으로 얻은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발견하게 해주는 따뜻한 선물이 될 것이다.

저자 : 최옥길 강원도 평창출생으로 월간 수필문학에서 「메밀꽃 필 무렵 그 봉평」으로 2011년 등단하면서 문학활동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강원도 학생실기대회에서 산문부 2등을 수상하며 막연히 글 쓰는 일을 꿈꾸게 되었다. 1975년 강원도 주부백일장에서 장원 수상을 하며 마음속에 어린싹 하나 꾸준히 키우고 있었다. 2021년 제1회 실레작가상을 수상하였으며, 수필문학 추천작가회, 강원수필, 춘천수필 문학회에서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2019년 『길에서 매듭이 풀리다』와 2025년 『주머니에 나이 한 살을 넣어 두었다』 등이 있다.

1부 천천히 가을이 간다 오후가 흐르는 미술관 11 / 천천히 가을이 간다 15 / 바느질하다 20 / 몽땅 고맙다 24 / 오이지가 익었어요 28 / 자화상 32 / 아름다운 순간은 너무 짧다 37 / 가을과 작별 41 / 배추 이삭 46 / 너무 늦었네 51 2부 장미 진다, 오월 가네 장미 진다, 오월 가네 55 / 다시 서강을 건너다 60 / 그곳은 어떠신가요 65 / 석사천에 봄이 살고 있어요 70 / 나이 들어보니 74 / 나도 보호자가 필요하다 78 / 콩나물국밥 드실래요 83 / 그때는 그랬었지 87 / 시크릿 코인 92 / 밥공기를 바꾸었다 96 3부 주머니에 나이 한 살을 넣어 두었다 주머니에 나이 한 살을 넣어 두었다 103 / 이야기 둘 -매생이를 잊어버리다 -향천 선생을 보내고 108 / 선운사의 동백꽃과 꽃무릇 113 / 마무리의 품격 117 / 평화 전망대의 바람 소리 121 / 봄이 오는 길 125 / 구곡폭포와 매미 소리 130 / 아들의 골목길 135 / 어떤 이별 139 / 벚꽃 위에 내리는 눈 143 4부 일흔 즈음에 무던한 사람 149 / 입을 떼다 153 / 평창에는 방아다리 약수가 있다 158 / 꽃에 묻히다 163 / 서면에 감자꽃이 피었어요 167 / 화목원의 대추라떼 173 / 돌나물 김치를 담그다 176 / 일흔 즈음에 181 / 바가지와 보리밥 186 5부 엄마를 기억해 아버지의 초혼 소리 193 / 엄마를 기억해 199 / 묵은지에 두부를 싸서 먹다 204 / 가을 다저녁때 209 / 나비 함지를 아시나요 213 / 참외를 깎다가 218 / 사는게 재미있으세요? 223 / 두 번 고마운 날 227

나이 한 살이 주는 여유는 의외로 달콤하다. 우선 보험 혜택에서 한 살은 삼백육십오 일이 덤으로 따라온다. 또 동갑의 굴레에서도 난 한 살 젊어요, 쓸데없는 자신감이 묘하게 소물거린다. 이제 이 나이가 되다 보니 어른 대접보다는 철이 좀 덜 들어 보여도 젊은 나이가 왠지 좋다.
「주머니에 나이 한 살을 넣어 두었다」 중에서

겨울 냉이에서 엄마 냄새가 난다.
연한 흙냄새와 구수한 숭늉 냄새가 살짝 보태어진 냄새가 바람결에 언뜻언뜻 내 코끝을 스친다. 엄마가 우리 곁을 떠나신 지 삼십 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가끔 나는 엄마 냄새를 맡는다. 화로 숯불에 얹어 구워지는 고등어 토막에도 엄마 냄새가 있고 배춧국에 한 움큼 넣어 끓인 냉이에서도 엄마 냄새가 난다. 순두붓집에서 얻어 온 비지 한 주먹을 김장김치와 함께 끓인 비지장 속에서도 엄마의 구수한 냄새를 만난다.
「엄마를 기억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