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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입은 영혼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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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도서정보 저자 : 마르틴 되리
출판사 : 북스코프
2010년 02월 28일 출간  |  ISBN : 8996295159  |  379쪽  |  A5  |  1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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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안네의 일기’를 뛰어넘는 홀로코스트의 생생한 증언! 아우슈비츠에서 희생된 유대인 여의사 릴리가 남긴 삶의 기록 『상처 입은 영혼의 편지』. 쾰른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자란 릴리 얀은 자의식이 강한 여성으로 남편과 함께 병원을 개업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나치스가 권력을 장악하고 국가사회주의 정책이 독이 되어 그녀는 결국 아우슈비츠에서 세상을 떠난다. 이 책은 수용소에 갇힌 릴리가 죽기 전까지 자신의 자녀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으로 2차 대전 말 유대인들과 그들 가족의 비극적인 삶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자소개

저자 : 마르틴 되리 릴리의 외손자로 1955년에 태어났으며, 튀빙겐과 취리히 대학에서 독문학과 역사학을 공부했다. 1987년부터 '슈피겔' 에서 일했고, 1998년부터 지금까지 부편집장을 맡고 있다. 역자 : 조경수 연세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대학원을 졸업했다. 옮긴 책으로 '어느 멋진 날', '거짓말의 딜레마', '자본주의 250년의 역사', '넥타르와 암브로시아', '우리 시대의 아이' 등이 있다.

목차

시작하는 글 쾰른의 유대인 가족 우리는 들떠 있습니다 | 릴리의 유년기와 청소년기 우리는 어떻게 될까? | 사랑의 기쁨과 슬픔 내가 누구인지 좀 이해해 줘! | 의사, 아내이자 엄마? 그리고 물은 아직도 아주 깊어! | 릴리 부모의 결혼 반대 안달이 나서 못 참겠어 | 랍비의 축복을 받은 결혼식 임멘하우젠에서의 박해의 나날 나를 위한 당신의 감동적인 배려 | 젊은 가족 우리는 충격적인 일을 겪었어요 | 국가사회주의자들의 권력 장악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 | 릴리와 가족의 고립 유대인 할머니 | 릴리의 사촌 올가에 대한 오마주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니 | 릴리와 에른스트의 결혼이 파국을 맞다 한없이 외롭고 쓸쓸한 | 한 지붕 아래의 별거 생활 카셀로의 추방 이별은 몹시 힘들어요 | 임멘하우젠에서 추방된 릴리와 아이들 새로운 혼란 속에서 | 게슈타포에 체포되다 브라이테나우 노동교정수용소 빵 조금, 소금 약간 | 시설에서 겪은 굶주림과 추위 그리움이 점점 커져 | 아이들에게 보낸 릴리의 비밀 편지 헨스헨이 겁을 내요 | 공중전이 임박하다 삶을 위한 질주 | 1943년 10월 22일의 폭격 엄마, 힘들 때가 많아요 | 아이들이 그들만의 생활을 꾸리다 아주 조심해야 한다! | 비밀 만남을 계획하다 자루 같은 옷과 나막신 | 노동교정수용소에서 엄마를 만나다 엄마는 많이 울지 않을 거야 | 1943/44년 전환기 엄마가 우리 곁으로 돌아오신다면 | 릴리의 소식을 기다리는 아이들 내가 곧 풀려나도록 도와주렴! | 에른스트는 게슈타포에 청원서를 보냈나? 아우슈비츠에서의 죽음 나는 계속 씩씩할 거야 | 동쪽으로의 강제 이송 내 마음은 모두의 곁에 있어요 | 강제수용소에서 보낸 최후의 몇 달 맺는 글 릴리 얀의 생애 | 감사의 글 | 옮긴이의 글

출판사 서평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등 세계 20개국에서 번역 출간 ‘안네의 일기’보다 더 많은 유럽인을 감동시킨 홀로코스트의 생생한 증언 “열다섯 소녀에게는 엄마가 간절히 필요했다” 수용소 담장을 오고간 수백 통의 편지, 갇힌 엄마와 남겨진 아이들의 애절한 가족 이야기! ‘상처 입은 영혼’, 릴리를 기억하며: 『상처 입은 영혼의 편지』가 출판되기까지 홀로코스트 시대에 한 독일계 유대인 가족의 비극적인 운명을 기록한 신간 『상처 입은 영혼의 편지』가 출간되었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일본 등 20개국에서 출간되어 전 세계 수많은 독자들을 감동시킨 이 책은, 독일 나치스의 반유대주의 정책으로 다섯 명의 어린 자녀들만 남겨둔 채 브라이테나우 노동교정수용소에 수감, 아우슈비츠에서 희생된 유대인 여의사 릴리가 자녀들과 가족, 지인들과 주고받은 550여 통의 편지를 엮은 것이다. 『상처 입은 영혼의 편지』가 출판되기까지의 과정은 다소 특별하다. 릴리의 외손자이자 《슈피겔》 부편집장인 저자 마르틴 되리는 1998년 세상을 떠난 외숙부 게르하르트 얀(릴리의 장남이며, 빌리 브란트 정부에서 독일 법무장관을 지냈다)의 유품 속에서 외할머니 릴리가 1943~44년 사이에 수용소에서 자녀들과 주고받은 250여 통의 편지를 발견했다. 릴리에 대한 기억은 일종의 금기였고 가족의 트라우마였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유대인 아내와 이혼해 학살의 톱니바퀴로 아내를 밀어 넣은 사람이 바로 외할아버지이자 릴리의 남편인 에른스트였기 때문이다. 가족은 나치스의 희생자였지만 한편으로는 공범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 편지들이 발견되면서 저자는 외할머니의 일생을 추적할 수 있는 다른 자료들을 찾기 시작했고, 릴리가 1918~44년 사이에 남편과 친구, 자녀들에게 보낸 300여 통의 편지를 추가로 발견했다. 너무나 사적인 이 편지들이 낯선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가족을 1년 이상 설득해 평범했던 한 인생의 상처 입은 삶을 책으로 출간하게 되었다. “이 책에는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한 어머니의 고통과 어머니를 근심하는 어린 자녀들의 공포, 그리고 이방인에 대한 증오가 낳은 엄청난 결과들입니다. 어떤 사회가, 어떤 피부색이 그런 일을 당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책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어느 누구도 출신이나 종교나 정치사상 때문에 비난을 받거나 차별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한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단 한 가지는 타인과 이방인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 한국 독자들을 위한 낭독회 ‘저자의 글’ 중에서 우리는 충격적인 일을 겪었어요!: 나치스의 권력 장악과 박해의 나날 릴리는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는 1900년 쾰른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공장주였던 유대인 가정에서 성장한 릴리는 자의식 강한 여성이었고, 의사이자 1920~30년대 독일을 주의 깊게 관찰한 시대의 증인이었으며, 철학과 신학, 문학과 예술에 심취한 지식인이었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독교인 에른스트 얀과 결혼한 릴리는 카셀 근교의 소도시 임멘하우젠에서 남편과 함께 병원을 개업한다. 1933년 1월 30일 힌덴부르크 제국대통령은 아돌프 히틀러를 제국총리로 임명했고, 이후 국가사회주의당(나치스)이 집권하자 국가사회주의 정책의 독이 차츰 릴리의 삶을 잠식한다. 1933년 4월 1일자로 독일 전역의 유대인 상점, 변호사, 의사가 보이콧을 당했다. 에른스트 역시 처음으로 유대인과의 결혼에 대한 벌을 공공연하게 받았다. 릴리는 친구인 한네와 레오 바르트 부부에게 이날의 소식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레오는 에른스트의 대학 친구이며 만하임에서 신문기자로 일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친구들! 우리는 충격적인 일을 겪었어요! 내 기분이 어떤지 상상할 수 있겠죠? 내 마음이 얼마나 무겁고 이 모든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이해할 수 있겠죠? 그래서 미래에 대한 기쁨이 완전히 사라져버렸어요. 아마데(에른스트)가 나를, 유대인을 아내로 두었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어제 그이한테도 보이콧을 행사했지 뭐예요!! 그 일로 내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말이 안 나올 정도예요. 게다가 이제는 이 일이 우리한테 계속 또 영향을 미칠까, 라는 심히 불안한 걱정까지 생겨요. 그 이상 생각할 엄두도 못 내겠어요. ― ‘국가사회주의자들의 권력 장악’(99쪽) 릴리는 이제 현관문에 에른스트와 나란히 붙여두었던 병원 문패를 떼어내야 했다. 더 이상 물의를 일으키지 않으려고 의사 일을 포기했다. 릴리와 가족들은 사회적으로 완전히 고립되었고, 릴리는 아주 가까운 가족의 테두리 안에 은거할 수밖에 없었다. 릴리의 자녀들은 소위 ‘반쪽 유대인’으로 낙인찍혀 거의 모든 인생의 기회를 빼앗겼다. 국가사회주의자들은 1935년 9월, 유대인의 시민권 박탈, 유대인과 독일인의 결혼 금지, 유대인의 공무담임권을 박탈하는 뉘른베르크법을 제정했다. 또한 1938년 11월 9일에는 나치스 돌격대가 독일 전역에서 수천 개의 유대인 상점과 시나고그(유대교 회당)를 불태워 파괴하고 약탈한 이른바 제국 수정의 밤(깨진 유리가 밤중에 수정처럼 반짝였다 해서 붙은 이름) 사건이 있었다. 이런 일련의 사건과 함께 유대인들은 공공행사, 무엇보다도 연극과 음악회의 관람이 원칙적으로 금지되었다. 릴리에게는 심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1938년 12월 31일에 릴리는 대문자 “J”가 적힌 신분증을 받았는데, 이 신분증은 모든 유대계 독일인들에게 의무적인 문서가 되었다. 새로운 규정에 따라 유대인 여성들은 “자라”라는, 남성들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추가로 써야했다. 릴리는 임멘하우젠에서 발행한 증명서에 “릴리 자라 얀”이라고 서명했고, 왼손과 오른손 약지 지문까지 찍어야 했다. 이후 1942년 1월에는 임멘하우젠 시 지구당 부위원장인 카를 그로스가 상관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NSDAP 호프가이스마르 군 지구당 위원장 귀하 특권을 가진 혼합 결혼 가정에 대한 1942년 1월 17일자 위원장님의 서한 138/42호와 관련해 이곳 의사의 처(순수 유대인)가 유대인 별을 달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주민들이 매우 흥분했다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그 유대인 여자는 이런 점을 십분 이용해 기차 2등석에 타고 자주 카셀에 가며 별을 달지 않고도 방해받지 않고 여행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가 시정될 수 있다면 온 주민이 매우 환영할 것입니다. 더불어 이곳 유대인 여자의 남편(의사)이 아리아계 여의사와 불륜 관계이고 그 여의사가 몇 주 후면 아이를 출산할 예정이기 때문에 유대인 여자의 추방을 고려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유대인 여자를 추방할 경우 아리아계 여의사가 의사 얀의 집안 살림을 맡아 할 수 있을 겁니다. 보고한 상황에 대해 개인 면담을 하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그렇게 하면 이곳에 거주하는 유일한 유대인이 이곳을 떠나게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일 히틀러! ― ‘릴리와 에른스트의 결혼이 파국을 맞다’(142~143쪽) 릴리를 위협하는 강제추방의 운명뿐 아니라 불행한 사생활까지도 엿볼 수 있는 편지다. 릴리는 서서히 그리고 고통스럽게 존엄성을 잃어갔다. 1942년 10월, 에른스트와 릴리는 이혼했고, 릴리와 다섯 명의 아이들은 임멘하우젠에서 추방되어 카셀로 갔다. 그리고 릴리는 1943년 8월 30일 무렵 경찰령 위반혐의로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카셀 경찰청에 구금되었다. 현관에 “릴리 얀 박사”라는 명함을 두었는데, 유대인이 ‘박사’라는 칭호를 쓰는 것은 오래전에 금지된 사항이었고, 유대인 여성이면서 이름에 ‘자라’를 넣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1943년 9월 3일 릴리는 브라이테나우 노동교정수용소에 수감되었다. “존경받던 유대인 의사이자 다섯 아이의 엄마인 릴리가 어느 날 아무런 이유도 설명도 없이 감금되었다” 게슈타포는 제국 전역에 수용소를 설치했고 1940년에는 200개가 넘는 노동교정수용소가 생겨났다. 릴리가 수감된 브라이테나우 노동교정수용소는 옛 베네딕트 수도원을 개조한 것으로 ‘강제수용소의 전 단계’로 여겨졌다. 하루 열두 시간씩 노동해야 했고, 급식은 턱없이 부족했으며, 잠은 나무판자 위나 짚을 깔고 자야 했다. 내일이면 집을 떠난 지 벌써 7주가 돼요. 집이 그리워서 미칠 것 같은 때가 많아요. 제가 얼마나 더 이곳에 있어야 하는지 게슈타포에게 문의해 볼 수 없나요? (……)불확실한 상황과 고통스러운 생각들 때문에 진이 빠져요. 물론 아이들 편지에 쓰는 것보다 훨씬 많이 힘들어요. 식사는 부족한 정도를 넘어서고 옷도 제대로 없어요. 외투도 재킷도 입을 수 없고 장갑도 못 껴요. 아침에는 기차가 연착을 많이 해 45분에서 1시간 동안 추위에 떨며 역에 서 있어야 하기 일쑤예요. 저녁에도 그렇고요. 건물에는 아직 난방이 안 들어와요. 무엇보다 갇혀 있는 것 자체가 힘들어요. 그게 어떤 건지 아무도 몰라요. ― ‘아이들에게 보낸 릴리의 비밀 편지’(230쪽) 릴리가 1938년 8월 17일자 경찰령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다면 4주 구금이었다. 하지만 릴리는 그 이상 수감되었다. 카셀에 남겨진 아이들은 엄마를 빼앗겼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없었다. 열다섯인 일제가 엄마 역할을 떠맡고 아이들은 스스로 생활을 꾸려야 했다. 릴리가 아우슈비츠에서 희생될 때까지 수용소에 갇힌 엄마와 남겨진 아이들의 삶을 지탱하게 했던 유일한 희망은 편지였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가족을 되찾겠다는 희망을 놓지 않았고, 크고 작은 그들의 일상을 세세히 알렸다. 편지마다 걱정과 그리움을 구구절절 드러냈다. 우리 예쁜 일제, 엄마 걱정 너무 많이 하지 마. 나는 조심하며 지내고, 건강한 몸으로 곧 너희 곁으로 돌아갈 생각만 한단다. 도를레가 감기 걸렸니? 왜 깔창이 있어야 한다는 거야? 그럼 다른 신발도 살 거니? 도를레한테 옷이 더 필요하면 겨울옷 중에 오래된 하늘색 민소매 니트 원피스가 있으니 거기에 천으로 소매를 달아줘. 그럼 아직 입을 만할 거야. 마그다와 도를레의 외투는 그걸로 됐고, 도를레한테 각반 바지도 맞니? 그밖에 옷에 관한 질문에는 전부 동의한단다. 커다란 고급 모슬린 시트는 찬장 서랍에 들어 있어. 식당의 창문과 등화관제용 커튼은 멀쩡하니? 집과 가구에는 아무 피해도 없었어? 꼭 답해 주렴! ― ‘아이들에게 보낸 릴리의 비밀 편지’(227쪽) 1943년 10월, 500대가 넘는 영국 폭격기가 카셀을 공습했고 릴리의 아이들이 살던 모츠가 집도 화염방사로 파괴되었다. 정확한 피해목록을 작성하기 위해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브라이테나우를 방문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게슈타포에 청원해, 마침내 일제는 1943년 12월 12일에 브라이테나우에서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일제는 그날을 이렇게 기억한다. 나는 예쁘게 차려입었다. 비 내리는 어느 날 아침에 나는 나를 거부하고 위협하는 것처럼 보이는 낡은 감옥 담 앞에 서 있었다. 작고 어두운 방에서 엄마를 기다렸다. 여자 간수에게 호송되어 엄마가 들어섰다. 단정했던 엄마가 얼마나 달라 보였던지. 엄마는 거친 옷감으로 된 자루 같은 옷을 입고 맨발에 나막신을 신었고 어금니가 하나 없었다. 간수가 “시간은 십 분입니다”라고 말하고 방에서 나가지 않았다. 우리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 꼭 껴안았다. 리버크네히트 부인은 엄마에게 더 이상 비밀 편지를 보내지 말라고 꼭 일러주라 당부했다. 발각되면 엄마가 아주 위험해질 거라고. 나는 이 임무를 완수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다시 바깥 큰 문 앞에 서 있었다. ― ‘노동교정수용소에서 엄마를 만나다’(303쪽) 이 만남이 마지막이었다. 릴리는 1944년 3월 아우슈비츠로 강제 이송되었고 그해 10월에 가족들은 릴리의 사망통지서를 받았다. 사망일자가 1944년 6월 17일인지 아니면 19일인지 확인할 수 없었고, 사망원인에 대해서도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지금까지도 릴리의 자녀들은 어머니가 어떻게, 무슨 이유로 세상을 떠났는지 알지 못한다. 몸이 쇠약해져 병에 걸렸는지, 아니면 가스실에서인지. 엄밀하게 말한다면 릴리의 운명은 수백만에 달하는 홀로코스트 희생자들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모든 희생자들은 제각기 그들만의 삶의 기억과 사연이 있다. 수백만 명이라는 통계의 숫자로 대변되는 집단이 아니라 게르하르트와 일제의 어머니이자, 마르틴 되리의 외할머니, 릴리가 희생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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