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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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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도서정보 저자 : 루쉰
출판사 : 정산미디어
2009년 12월 29일 출간  |  ISBN : 899311708X  |  274쪽  |  A5  |  1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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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고향』은 루쉰(魯迅)의 ‘고향’을 비롯하여 고향과 관련 있는 중국 단편소설 14편을 수록하였다. 이 작품들은 대체로 1920~30년대와 1950~60년대의 작품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책의 삽화는, 신문, 잡지에 연재되었던 작품은 그 당시의 삽화를, 기타는 여러 자료 중에서 그 내용에 알맞는 그림이나 사진을 고르거나, 엮은이가 직접 촬영하여 수정하거나 하여 그 효과를 내기에 힘썼다.

상세이미지

저자소개

저자 : 루쉰 1881~1936. 중국의 작가, 문학자, 사상가. 본명은 저우수런(周樹人), 자는 위차이(豫才). 저장성 사오싱(紹興) 출생.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조부의 하옥, 아버지의 병사 등으로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살았다. 청년시대에 진화론과 니체의 초인철학, 톨스토이의 박애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898년 난징의 강남수사학당에 입학, 당시의 계몽적 신학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902년 졸업 후 일본에 유학, 고분학원을 거쳐 1904년 센다이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문학의 중요성을 통감하고 의학을 단념, 국민정신의 개조를 위하여 문예 활동에 힘썼다. 1905~1907년 혁명당원의 활동에 참가하고, ‘마라시력설’, ‘문화편지론’ 등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무렵 유럽의 피압박민족 및 슬라브계 작품에 공감하여 1909년 동생 저우쭤런(周作人)과 ‘역외소설집’을 공역하는 한편, 망명중인 장빙린(章炳麟)에게 사사하였다. 1909년 귀국하여 고향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남경임시정부와 북경정부의 교육부원이 되어 일하면서 틈틈이 금석 탁본의 수집, 고서 연구 등에 심취하였다. 1918년 문학혁명을 계기로, 처음으로 ‘루쉰(魯迅)’이라는 필명을 사용, 중국현대문학사상 첫번째의 백화소설인 ‘광인일기’를 발표하여 신문학운동의 기초를 다졌다. 5·4운동 전후 ‘신청년’ 잡지의 일에 참가하여 ‘5·4’ 신문화운동의 선봉이 되었다. 1918년에서 1926년에 이르는 동안 창작을 계속하여 소설집 ‘눌함’, ‘방황’, 논문집 ‘분(墳)’, 산문시집 ‘야초’, 산문집 ‘조화석습’, 잡문집 ‘열풍’, ‘화개집(華蓋集)’, ‘화개집 속편’ 등을 출판하였다. 이 중에 ‘공을기(孔乙己)’, ‘고향’, ‘축복’ 등을 발표하여 중국 근대문학을 확립하였는데, 1921년 12월에 발표된 중편소설 ‘아Q정전(阿Q正傳)’은 중국현대문학사상 불후의 대표작으로 세계적 수준의 작품이다. 많은 외국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였고, 1920년 이후에는 베이징대학, 베이징여자사범대학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4년 저우쭤런과 어사사를 조직하고, 1925년 청년문학사와 미명사(未名社)를 조직하였으나, 1926년 8월 베이양 군벌의 문화 탄압과 격돌한 베이징 학생애국운동 지지로 말미암아 베이징을 탈출, 아모이대학 중문과 주임으로 부임하고, 1927년 1월 당시의 혁명 중심 광저우(廣州)에 이르러 중산대학의 교무주임이 되었다. 1927년 가을 상하이의 조계에 숨어 쉬광핑(許廣平)과 동거하며 문필생활에 몰두하는 한편, 창조사, 태양사 등 혁명문학을 주창하는 급진적 그룹 및 신월사(新月社) 등 우익적 그룹에 대한 논전을 통하여 매우 전투적인 사회 단평(短評)의 문체를 확립하였다. 한편 소비에트 러시아 문학작품을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하였다. 1930년 전후하여 중국자유운동대동맹, 중국좌익작가연맹과 중국민권보장동맹에 참가하여 국민당 정부의 독재 통치와 정치 박해에 항거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 뒤에 대두된 민족주의 문학, 예술지상주의 및 소품문파(小品文派)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였다. 1927년부터 1936년까지 역사소설집 ‘고사신편’을 출판하였고, 대부분의 작품과 잡문은 ‘이이집’, ‘삼한집’, ‘이심집’, ‘남강북조집’, ‘위자유서’, ‘준풍월담’, ‘화변문학’, ‘차개정잡문’, ‘차개정잡문 이편’, ‘차개정잡문 말편’, ‘집외집’과 ‘집외집습유’ 등에 수록되었다. 또 1931년부터 판화 운동도 지도하여 중국 신판화의 기틀을 다졌다. 루쉰의 일생은 중국 문화사업에 지대한 공헌을 이룩하였다. ‘미명사(未名社)’, ‘조화사(朝花社)’ 등 문학 단체를 영도하고 지지하였으며, ‘국민신보부간’, ‘망원(莽原)’, ‘어사(語絲)’, ‘분류(奔流)’, ‘맹아(萌芽)’, ‘역문(譯文)’ 등 문예잡지를 주편하였고, 청년 작가를 열성적으로 적극 배양하였다. 외국의 진보된 문학 작품을 번역하는 데 힘쓰고, 국내외의 저명한 회화, 목각을 소개하였으며, 대량의 고전문학을 수집, 연구, 정리하고, ‘중국소설사략’, ‘한문학사강요’를 저술하였으며, ‘혜강집(?康集)’을 정리하고 ‘회계군고서잡록’,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 ‘당송전기록’, ‘소설구문초’ 등등을 집록하였다. 죽기 직전에는 항일투쟁 전선을 둘러싸고 저우양(周揚) 등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그가 죽은 뒤에는 대체로 그의 주장에 따른 형태로 문학계의 통일전선이 형성되었다. 그의 문학과 사상에는 모든 허위를 거부하는 정신과 언어의 공전이 없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뿌리박은 강인한 사고가 뚜렷이 부각되어 있다. 1936년 10월 19일 폐결핵으로 말미암아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나고 민중 만여 명이 자발적으로 공제(公祭)를 거행하여 훙자오만국공묘에 묻혔다. 1956년 루쉰의 유해는 훙커우공원에 이장되었다. 1938년 ‘루쉰전집’ 20권이 출판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 루쉰의 저서는 분야별로 나뉘어 ‘루쉰전집’ 10권, ‘루쉰역문집’ 10권, ‘루쉰일기’ 2권, ‘루쉰서신집’이 간행되었고, 루쉰이 편교(編校)한 고적(古籍) 여러 종류도 다시 간행되었다. 1981에는 ‘루쉰전집’ 16권이 출판되었다. 베이징, 상하이, 사오싱, 아모이 등지에는 전후하여 루쉰 박물관, ?기념관 등이 건립되었다. 역자 : 민병덕 성균관대 문학박사. 혜전대, 성결대 교수, 충남대, 서울산업대, 청운대, 한성대, 중앙대 강사, 사단법인 한국출판학회 회장 역임. 한국출판학회 고문. 저자 : 머우샤오위 1923~. 중국 타이완의 소설가. 필명은 샤오펑(嘯風), 지장(吉章). 쓰촨성 메이산현) 출신. 중앙대학 정치학과 졸업 후 입법원에 취직, 정부를 따라 타이완으로 옮기어, 입법원 과원, 비서, 전문위원 등의 직무를 역임하고, 원장 장다오번(張道藩) 선생의 비서, 교육위원회 주임비서를 역임하였으며, ‘입법원 원문월간(立法院院聞月刊)’ 주편으로 10여 년 동안 종사하였다. 1946년 1월 20일 충칭(重慶) 중앙일보(中央日報) 부간(副刊)에 처녀작 ‘울음과 웃음(哭與笑)’을 발표하였다. 소설 위주로 창작을 하였으며, 잡지에 발표된 소설과 산문이 모두 500여 편이나 된다. 산문의 제재는 신선하며 인생의 진수를 표달하였고, 소설에서는 애정의 진실한 의의를 탐색하였으며, 창작 방법은 사실적이며 자연스럽다. 장편소설 ‘대록년화(黛綠年華)’, ‘화자표령(花自飄零)’, ‘속죄(贖罪)’, ‘도옥기(逃獄記)’,‘나강풍운(羅崗風雲)’, ‘한우(寒雨)’, ‘가릉추월(嘉陵秋月)’, ‘연귀하처(燕歸何處)’, 중편소설집 ‘홍삼(紅衫)’, 산문집 ‘비취곡(翡翠谷)’ 등이 있다. 저자 : 마오둔(茅盾) 1896~1981. 중국의 소설가, 펑론가. 5·4신문화운동 선구자의 한 사람,중국 현대문학의 기초를 닦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본명은 선떠훙(沈德?), 자는 얀빙(雁?),필명은 쉔주(玄珠), 팡비(方璧), 랑순(郎損) 등이 있다. 저장성 퉁샹 현(桐鄕縣) 출신. 그는 10세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1913년 베이징대학 예과에 입학했다. 1916년 졸업 후 상하이 상무인서관 편집부 근무, 이로부터 그의 문학 생애가 시작되었다. 1920년 ‘소설월보’ 주간이 되었다. 동년 12월,정전둬(鄭振鐸) 등과 문학연구회를 발기하여 성립시켰다. 제1차 국내 혁명전쟁 시기에 정치활동에 적극 참가하였으며 국민당 중앙선전부 비서,우한(武漢)의 중앙군사정치학교 교관, ‘민국일보’ 주간으로 종사하였다. 대혁명 실패 후 일본으로 건너갔다. 1930년 봄상하이로 돌아와 중국좌익작가연맹에 가입하였다. 1937년 이후, 우한에 가서 중화전국문예계항적협회 이사를 맡았고,‘문예진지’를 주편하였다. 1938년 겨울,신장(新疆)으로 가서 신장 각족문화협회 연합회 주석을 맡았다. 1940년 5월 옌안(延安)으로 갔으며, 1940년에 충칭(重慶)으로 갔다. 뒤에 또 구이린(桂林), 홍콩으로 가서 ‘대중생활’ 편집위원을 맡았다. 1946년에 러시아를 방문하였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중국문련 부주석,중국작가협회 주석,문화부장,제1차 제5회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 전국정치협상 회의 상무위원,제4,5회 전국정치협상회의 부주석 등의 직책을 맡았다. 문화대혁명 때는 영화화된 그의 소설 ‘임상점(林家鋪子)’이 비판을 받았으며, 1981년에 세상을 떠났다. 작품으로 장편소설 ‘식(蝕)’, ‘무지개(虹)’, ‘자야(子夜)’, ‘제일단계의 고사(故事)’, ‘부식(腐蝕)’, ‘상엽은 이월의 꽃처럼 붉다’, ‘단련’, 중편소설 ‘길(路)’, ‘삼인행’, 단편소설 ‘누에(春蠶)’, ‘추수’, ‘잔동(殘冬)’, ‘임상점’, 기록문학 ‘탈험잡기(脫險雜記)’ 등이 있고, 자서전 ‘내가 달려온 길’과 저술로 ‘신화잡론’, ‘서양문학통론’, ‘북유럽신화ABC’, ‘중국신화연구ABC’, 등이 있다. 문집으로 ‘마오둔 문집’ 10권, ‘마오둔 문예평론집’, ‘세계문학명저잡담’ 등이 있다. 저자 : 로란(羅蘭) 1919~. 중국 타이완의 여류소설가. 본명은 진페이펀(?佩芬). 허베이성(河北省) 닝허현(寧河縣) 출신. 텐진여자사범학원(天津女子師範學院) 사범부 음악과 졸업. 일찍이 음악 교사, 라디오 방송국 음악 및 교육 프로그램 프로듀서, 편집, 경찰 방송국 프로그램 프로듀서 겸 주관자로 종사하였다. 1969년 ‘로란 산문(羅蘭散文)’으로 중산문예상(中山文藝?), 1981년 금종상(金鐘?), 1979년 교육부 사회교육상, 1994년 방송 금종상 특별상,1996년 세월심사삼부곡(歲月沈沙三部曲)으로 제21회 국가문예상, 2003년 화문문학상(華文文學?)을 수상하였다. 산문으로 유명하며, ‘로란 소어(羅蘭小語)’ 계열은 더욱 호평을 얻고,젊은이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작품의 경향은 활발 명쾌하며,음악성이 풍부하고 철학의 미를 갖추었다. 저자 : 퉁전(童眞) 1928~. 중국 타이완의 여류소설가. 본명 퉁전(童眞). 저장성(浙江省) 츠시현(慈溪縣) 퉁스전(童市?) 출생. 성방제학원(聖芳濟學院) 졸업. 일찍이 1955년 홍콩 ‘조국주간(祖國週刊)’의 단편소설 이백금상상(李白金像?)을 받았으며,1967년 소설류로 중국문예협회 제8회 문예상장(文藝?章)을 받았다. 퉁전의 저술은 소설이 위주이다. 그 생활환경으로 말미암아 창작의 원천은 흔히 관념에서 온다. 작품 중의 인물은 항상 고사에서 안배하여 다양성을 얻는다. 동시에 구성도 충분히 중시하며, 민족에 대한 관심과 순수한 모성애도 드러낸다. 후기의 단편소설에서는 더욱 심리적 변화로 골격을 삼고,혹은 인심의 깊은 곳의 감정을 찾음으로써 주조를 삼기도 하였다. 작품은 구성과 형식이 모두 대단히 새롭고 창작도 각종 형식을 시험하기도 하였다. 1967년에 중국문예협회 문예상장(文藝?章)을 받았다. 저자 : 위다푸(郁達夫) 1895~1945. 중국의 소설가, 수필가, 시인. 본명은 위원(郁文). 저장성 푸양현 출신. 1911년에 구체시를 창작하여 잡지에 투고하였다. 1912년에 즈장대학 예과에 입학하였으나,학생운동에 참가하여 학교에서 제명되었다. 1914년 7월에 일본 도쿄제일고등학교 예과에 입학한 뒤로 소설 창작을 시도하기 시작하였다. 1919년에 도쿄제국대학 경제학부에 입학하였다. 1921년 6월에 궈모뤄(郭末若), 청팡우(成?吾), 장즈핑(張資平) 등과 미리 준비하여 신문학단체 창조사를 성립시켰으며, 7월에는 첫번째 단편소설집 ‘침륜’을 내어 당시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22년 3월에 도쿄제국대학을 졸업한 뒤 귀국하고, 5월에 주편한 ‘창조계간’ 창간호를 출판하였으며, 7월에 소설 ‘봄바람에 취한 저녁’을 발표하였다. 1923년부터 1926년 사이에 전후하여 베이징대학, 우창사범대학, 광둥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6년 상하이로 돌아온 뒤 창조사 출판부 일을 주재하고,‘창조월간’, 반월간 ‘홍수’를 편집하였으며, ‘소설론’, ‘희곡론’ 등 많은 문예 논저를 발표하였다. 1928년 태양사에 가입하고 아울러 루쉰(魯迅)의 지지 아래 ‘대중문예’를 주편하였다. 1930년 3월에 중국좌익작가연맹이 성립하자 발기인의 한 사람이 되었으며, 12월에 소설 ‘지계화’를 발표하였다. 1933년 4월 항저우로 이사한 뒤 많은 산수유기와 시를 썼다. 1936년 푸젠성의 참의가 되고, 1938년에 우한에 가서 군사위원회 정치부 제삼청의 항일선전공작에 참가하였으며 아울러 중화전국문예계 항적협회 성립대회에서 상무이사에 당선되었다. 1938년 12월 싱가포르에 이르러 ‘성주일보(星洲日報)’ 등 신문 부간의 편집을 맡고, 많은 정론, 단평과 시 등을 썼다. 1942년에 일본군이 싱가포르에 접근하자 후위즈(胡愈之), 왕런슈(王任叔) 등과 철수하여 수마트라의 바야궁부에 이르러 자오리엔(趙廉)이라고 이름을 바꾸고 주점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일본군에게 발각되어 종전 직후 8월 29일 누군가에게 납치되었다. 뒤에 시체가 발견되어, 일본 현병에게 피살된 것이라고 전한다. 위다푸는 중국 최초의 사소설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 작품은 그의 생활, 심리의 기록이라고 할 만큼, 역사소설의 형식이나 사회문제의 추구라는 주제 등에 관계 없이 그의 전작품을 통하여 이것이 들어맞는다. 이리하여 작품의 허구성을 배척하고 사실의 진실을 추구한 결과 일기문학에서 문학작품의 최상을 찾았다. 그가 루쉰의 작품 중 ‘양지서’를 높이 평가한 것도 이 때문이며, 왕잉샤(王映霞)와의 연애 기록 ‘일기구종’, 잡지 ‘인간세’에 연재한 ‘자전(自傳)’ 등도 그런 의미에서 위다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오로지 자기의 생활, 감정의 고민을 있는 그대로 표백하는 특이한 로맨티시즘의 작풍과 그 은근하고 고운 필치로 당시의 청년층을 풍미하였다. 작품으로 ‘은회색의 죽음’, ‘침륜’, ‘망망한 밤’, ‘회향병자’, ‘공허’, ‘조라행’, ‘연영’, ‘남천’, ‘풍령’, ‘추하(秋河)’, ‘수양적 춘수(水樣的春愁)’, ‘신루(蜃樓)’, ‘지계화(遲桂花)’, ‘채석기’ 등이 있으며, 그의 저작은 대부분 ‘한회(寒灰)’, ‘계륵(鷄肋)’, ‘과거’, ‘기령(奇零)’, ‘폐추(??)’, ‘미궐(薇蕨)’, ‘단잔(斷殘)’이라는 이름으로 된 7권의 전집에 수록되었고, ‘참여집(懺餘集)’과 ‘미양(迷羊)’, ‘그녀는 약한 여자’ 등의 두 장편, 유기, 일기, 에세이, 번역 등이 있다. 저자 : 궈쓰펀(郭嗣汾) 중국 타이완의 소설가. 다른 이름은 궈진샤(郭晉俠), 진샤(晉俠), 이슈한(易叔寒) 등. 쓰촨성(四川省) 윈양현(雲陽縣) 출신. 육군군관학교 제16기 졸업, 일찍이 해군출판사 총편집, 성신문처 과장, 주임비서, 금수출판사(錦繡出版社) 발행인, 아주화문작가협회(亞洲華文作家協會) 집행위원을 역임하였고, 아울러 ‘해양생활’, ‘중국해군’, ‘대만서간(臺灣書刊)’ 주편, 중국문예협회 상무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일찍이 중화문예상 희곡상, 교육부 극본상, 문장회(文?會) 중편소설상, 단편소설상, 아주소설상(亞洲小說?), 가신우량저작상(嘉新優良著作?)을 받았다. 그의 저작은 희곡, 소설, 산문, 유기(遊記) 등이 있는데 소설에 가장 주력하였다. 소설은 슬프고 가엾고 굳고 곧은 기질로 일관되어 있으며, 평범한 사람의 평범치 않은 감정을 잘 표현하였다. 인물에 대한 개성을 잘 그려 내고,옛 일과 정서를 잘 안배하였으며,분위기를 잘 살려 독창적인 데가 있다. 작품으로 ‘잃어버린 꽃송이(失去的花朶)’, ‘위성기(危城記)’, ‘강백란의 가을(康伯蘭的秋天)’, ‘낭떠러지에 걸린 비극(懸崖的悲劇)’, ‘푸른 집(綠屋)’, ‘보리수(菩提樹)’ 등이 있다. *삽화 중 그림은 정현웅의 신문연재소설 삽화 중에서 선별한 것임. 저자 : 장위이(張瑜佚) 1932. 4. 13~. 중국 타이완의 소설가. 원명은 샹푸(相甫),또 다른 이름은 셰산(學山). 후베이성(湖北省) 광화현(光化縣) 라오허커우(老河口) 출생. 뒤에 후베이성 우창현(武昌縣)으로 옮겼다. 1948년 군대를 따라 타이완에 온 뒤 타이완 각지를 돌아다녔다. 퇴역 후 타오위안현(桃園縣) 중리시(中?市)에 정착하였다. 어려서 전란의 영향을 받아 정식의 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자습으로 공부를 하여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취득하여 정전학교(政戰學校) 영화연극과에서 전공하고 1962년에 졸업하여 문학사의 학위를 받았다. 정정학교 졸업 후 이어 간사, 지도원, 보도장, 예공대 조장(藝工隊組長), 전영대(電影隊) 부대장, 강악관(康樂官), 육군총부 강악관, 육군인쇄창 보도장, 여처장(旅處長) 등의 직책을 역임하였다. 그러는 동안 ‘사교(士校)’, ‘사신(士訊)’ 등의 편집을 겸직하고,아울러 창작에 종사하여 문예상을 받기도 하였다. 퇴역 후 잡지 편집, 기자에 종사하고 교사를 겸임하였으며, 문학과 연극의 연구에 힘썼다. 저서로 ‘개가(凱歌)’(1980), ‘아버지의 이야기’(爺爺的故事)’(1996) 등이 있다. 저자 : 후예핀(胡也頻) 1905~1931. 중국의 소설가, 시인. 푸젠성(福建省) 푸저우(福州) 출신. 원명은 후충쉬안(胡崇軒). 해군 예비학교 수료 후, 1918년 베이징으로 가서 잡지 ‘현대평론(現代評論)’에 연애시 등을 기고하였다. 1924년 루쉰 문하에서 여러 가지로 혁명문학의 원리와 지도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였다. 1925년 여류작가인 딩링(丁玲)과 연애 결혼하고 베이징에서 ‘어사(語絲)’, ‘신보부간(晨報副刊)’ 등에 투고하는 등 열렬한 사랑과 문학작품을 내놓았다. 1927년경에 상하이로 가서 띵링과 친구 셴충원(沈從文) 등과 ‘홍흑월간(紅黑月刊)’을 창간하여, 편집 등에 종사하면서 공산당에 입당, 1930年 5월 중국좌익작가연맹에 가입, 그 집행위원이 되는 등 중국을 휩쓴 혁명문학에 휩쓸렸다. 결국 1931년 중국공산당원으로서 국민당에 체포되어 동년 2월 7일 작가 로우스(柔石), 인푸(殷夫) 등과 함께 상하이에서 총살되었다. 지난(濟南)에서 교사 생활을 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저서로 단편소설집 ‘성도(聖徒)’, ‘활주자(活珠子)’, ‘어디로 가나(往何處去)’, ‘시고(詩稿)’, ‘소마(消磨)’, ‘목장에서(牧場上)’, ‘세 불통일의 인물(三個不統一的人物)’, ‘4주일(四星期)’ 등과 희곡집 ‘도깨비와 인심(鬼與人心)’, ‘남의 행복(?人的幸福)’, 시집 ‘예핀 시선(也頻詩選)’, 중편소설 ‘일막 비극의 사실(一幕悲劇的事實)’, ‘모스크바에 가다(到莫斯科去)’, 장편소설 ‘광명이 우리 앞에 있다(光明在我們的前面)’ 등이 있다. 저자 : 라오서(老舍) 1899~1966. 중국의 소설가, 극작가.. 본명 수칭춘(舒慶春), 자는 서위(舍豫). 베이징(北京) 만주기인(滿洲旗人) 출신으로 3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다. 베이징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고등사범을 나와 수년의 중학교 교원생활을 거쳐, 1924년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대학에 유학하여 문학을 연구하였다. 6년간의 유학 기간 동안 ‘장(張) 선생의 철학’, ‘조자왈(趙子曰)’ 등 지식인의 생활 모습을 유머로 그린 장편을 잇달아 발표, 유머 작가로서 문단에 독자적인 지위를 이룩하였다. 귀국 후 치루대학(齊魯大學), 산둥대학(山東大學) 등에서 교편을 잡는 한편, ‘낙타상자(駱駝祥子)’를 내놓아 비판적 리얼리즘 방향에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항일전쟁 중에는 우한(武漢)에서 중화전국문예계항적협회의 지도적 역할을 맡으면서 ‘잔무(殘霧)’ 등의 희곡 집필에 착수하였다. 1946년 초청되어 도미, 미국 체재중에는, 일본군 점령하의 베이징에서 4대(代)의 대가족이 사는 모습을 그린 3부작 ‘사세동당(四世同堂)’을 발표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직후 귀국하여, 베이징 빈민굴의 변모와 새 삶을 그려 신중국을 찬양한 희곡 ‘용수구(龍鬚溝)’로써 베이징시로부터 인민예술가 칭호가 수여되었다. 또 중국작가협회 부주석, 베이징시 문련(文聯) 주석 등의 요직에도 있었다. 문화대혁명 때 당과 마오쩌둥에 반대하였다 하여 처형되었으나, 1978년 6월 명예가 회복되었다. 라오서의 작품은 비극이 많고 작품의 경향은 유묵(幽默)하며, 그의 만족(滿族)에 대한 진지한 감정이 반영되어 있다. 그의 대표작은 소설 ‘낙타상자’와 화극(話劇) ‘차관(茶館)’이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시민생활에서 취재하여,중국 현대문학의 중요한 제재 영역을 개척하였다. 그가 묘사한 자연풍광, 세태인정, 습속 등은 민중의 언어를 운용하여 모두 농후한 ‘경미(京味)’를 나타내고 있다. 그의 작품은 독특한 유묵의 풍격과 농후한 민족 색채를 갖추고 있어,내용에서 형식에 이르는 아속(雅俗)은 모두 광대한 독자의 호평을 받고 있다. 작품으로 앞에 든 것 외에 장편소설 ‘이마(二馬)’, ‘묘성기(?城記)’, ‘이혼’, ‘우천사전(牛天賜傳)’, ‘문박사(文博士)’, ‘화장(火葬)’, ‘고서예인(鼓書藝人)’, ‘정홍기하(正紅旗下)’(미완성), 중편소설 ‘월아아(月牙兒)’, ‘양광(陽光)’, 단편소설집 ‘간집(?集)’, ‘앵해집(櫻海集)’, ‘합조집(蛤藻集)’, ‘화차집(火車集)’, ‘빈혈집(貧血集)’ 등이 있고, 기타 ‘라오서 극작전집(老舍劇作全集)’, ‘라오서 산문집(散文集)’, ‘라오서 시선(詩選)’, ‘라오서 문예평론집’, ‘라오서 문집(文集)’ 등이 있다. 저자 : 궈모뤄(郭沫若) 1892~1978. 중국의 시인, 소설가, 극작가, 사학자. 쓰촨성(四川省) 자딩부(嘉定府) 출생. 본명은 궈카이전(郭開貞),자는 딩탕(鼎堂). 일본 규슈 제국대학 의학부 졸업. 1919년 중국 5·4운동의 자극과 휘트먼, 타고르, 괴테 등의 영향으로 시를 쓰기 시작, 시집 ‘여신(女神)’, ‘별하늘’ 등을 내어, 중국 신시의 기초를 쌓았다. 1922년에는 위다푸(郁達夫) 등과 함께 ‘예술을 위한 예술’의 낭만주의 문학 단체인 창조사(創造社)를 결성하였다. 1926~1927년 중산대학 주비위원회 위원, 1927년 장제스(蔣介石) 총사령 지휘하의 북벌군총정치부 부주임에 취임하였다. 그러나 뒤에 난창기의(南昌起義)에 참가하였으나 실패, 1928년 2월에는 일본으로 망명했다. 1937년 루거우차오 사건(蘆溝橋事件)이 일어나자 일본을 탈출, 상하이로 가서 항일전의 선두에 섰다. 국민정부와 함께 충칭(重慶)으로 옮겼으나 장제스로부터 용공분자로 몰려 정치활동의 제약을 받고 ‘굴원(屈原)’, ‘호부(虎符)’, ‘당체(棠?)의 꽃’, ‘남관초(南冠草)’, ‘공작담(孔雀膽)’, ‘축(筑)’ 등의 사극과 ‘청동시대’, ‘십비판서’ 등의 고대사상 연구에 몰두하였다. 중국 유물사관사학의 선봉, 고문자학자, 고고학자, 사회활동가, 갑골학자, 제1기 중앙연구원 원사.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오랫동안 중국과학원 원장과 중국문학예술연합회 주석을 맡았으며, 중화인민공화국 정무원 부총리 겸 문화교육위원회 주임,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주석, 중국과학기술대학 교장, 중국인민보위세계화평위원회 위원, 중일우호협회 명예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8년에는 중국공산당에 다시 새로 가입하였다. 1959년~1960년에는 사극 ‘채문희(蔡文姬)’와 ‘측천무후(則天武后)’를 발표, 1962년에는 시나리오 ‘정성공(鄭成功)’을 창작하였다. 이 밖에 자서전 ‘창조 10년’, ‘북벌의 길’, ‘귀거래(歸去來)’와 ‘홍파곡(洪波曲)’ 등이 있다. 저자 : 장광츠(蔣光慈) 1901~1931. 중국의 소설가, 시인. 본명은 장광치(蔣光赤). 안후이성(安徽省) 류안현(六安縣) 출생. 모스크바 동방대학 졸업, 상하이대학 교수 역임. 1924년 러시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시집 ‘소년표박자(少年漂迫者)’로 문단에 등장하였다. 혁명과 연애를 주제로 하는 작품이 많고 관념적이어서 구상화가 부족하다는 평을 받았으나 후난(湖南)의 농민운동을 그린 소설 ‘포효하는 토지’에서는 그것을 극복한 것으로 평가된다. 후에 창조사를 떠나 첸싱춘(錢杏邨) 등과 함께 좌익문학단체 태양사(太陽社)를 결성하여 ‘태양월간(太陽月刊)’을 내고 혁명문학을 주도하였으며 루쉰(魯迅)과 대립하였다. 그 밖에 소설로 ‘단고당(短袴黨)’, ‘압록강상(鴨綠江上)’, ‘형제야화(弟兄夜話)’, ‘쉬저우 여관의 하룻밤’, ‘심애(尋愛)’, ‘야제(野祭)’, ‘싸인 구름에서 솟구치는 달)’ 등이 있다. 저자 : 류다제(劉大杰) 1904~1977. 중국의 소설가. 필명은 다지(大杰), 쉐룽 여사(雪容女士), 루자오(綠蕉), 샤루자오(夏綠蕉), 셔우시(修士), 샹쥔(湘君), 류산(劉山), 실명(室名)은 춘파루(春波樓). 후난성(湖南省) 웨양(岳陽) 출신. 1926년 우창(武昌) 고등사범학교 졸업, 1927년 일본 와세다대학 수업, 1930년에 귀국하였다. 일찍이 상하이(上海) 대동서국(大東書局)에서 편집에 종사하였고, 안후이(安徽)대학 교수, 지난(?南)대학 문학원 원장, 쓰촨(四川)대학 중문학과 주임, 성요한(聖約翰)대학 교수 등 교직에 종사하였으며, 1949년 이후 푸단(復旦)대학 중문과 주임 교수를 역임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 중국작가협회 상하이 분회 부주석, 전국문련 상임위원, 전국인대 대표, 전국정협 위원、농공민주당 상하이시 위원회 부주임 등을 역임하였다. 젊어서 유럽 문학의 번역과 연구에 힘썼고,중년에는 고대문학연구를 하였으며,서양의 진화론과 사회학적 관점을 원용하여 중국고대문학 발전 중의 각종 현상과 문제를 해석하였다. ‘사해(辭海)’, ‘중국역대문론선’의 편집과 집필에 참가하였고, ‘중국문학비평사’를 주편하였다. 저서로 ‘중국문학발전사’, ‘홍루몽(紅樓夢) 사상과 인물’, ‘위진사상론(魏晋思想論)’, ‘입센 연구’, ‘독일문학개론’, ‘동서문학평론’, ‘류다제 고전문학논문선집’ 등 다수가 있다.

목차

ㅇ고향 / 루쉰 ㅇ아진 / 루쉰 ㅇ회향병자 / 위다푸 ㅇ누에 / 마오둔 ㅇ속죄 / 머우샤오위 ㅇ소녀 화가 / 로란 ㅇ올가미 / 퉁전, ㅇ홍엽 / 궈쓰펀 ㅇ사랑 / 장위이 ㅇ밀월 여행 / 후예핀 ㅇ개시 대길 / 라오서 ㅇ목양 애화(금강산의 애가) / 궈모뤄 ㅇ압록강상 / 장광츠 ㅇ밤 / 류다제

출판사 서평

이 책에는 루쉰(魯迅)의 ‘고향’을 비롯하여 고향과 관련 있는 중국 단편소설 14편을 수록하였다. 이 작품들은 대체로 1920~30년대와 1950~60년대의 작품으로 나누어 볼 수 있겠다. 2, 30년대의 작품은 1919년 중국의 5·4운동 이후 본격화된 중국현대소설의 초기 작품을 대표하는 소설들로서, ‘회향병자’나 ‘목양 애화’와 같이 서정적이고 로만주의적 경향을 띤 작품이 많으나 ‘누에’와 같은 사실주의적 수법으로 쓴 사회소설도 섞여 있다. 5, 60년대의 작품은 주로 50년대 중반의 타이완의 작품을 수록하였다. 지난 50년대는 중국이 극심한 양안 대립으로 타이완의 소설 중에는 정치색을 띤 작품이 많았으나 그런 중에서도 될 수 있는 대로 정치색을 배제하고 인간성을 추구한 작/품도 상당수 있다. 이 책에서는 이런 중에서도 가급적 순수문학적인 성격을 띤 작품을 선정하여 수록하였다. 특히 어떤 번역작품은 로컬컬러를 살리기 위해 대화에 사투리를 적용하였다. 이 책의 삽화는, 신문, 잡지에 연재되었던 작품은 그 당시의 삽화를, 기타는 여러 자료 중에서 그 내용에 알맞는 그림이나 사진을 고르거나, 엮은이가 직접 촬영하여 수정하거나 하여 그 효과를 내기에 힘썼다. '고향’ 해설 : ‘고향’은 세계적인 작품 ‘아Q정전’과 함께 루쉰의 대표작 중의 하나이다. 루쉰의 작품이 대부분 풍자성이 강한 데 비해, 이 작품은 서정적인 면이 강하게 나타나 있어, 이를 통하여 그의 따뜻한 인간성을 엿볼 수 있다. 이 작품 속에 묘사된 고향은 바로 루쉰의 고향이며 ‘나’는 루쉰 자신이라고 볼 수 있어, 하나의 신변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루쉰의 여러 작품 중에서 이 ‘고향’은 특히 많은 사람들이 애독하고 있다. 여러 해 동안 고향을 떠나 있던 주인공인 ‘나’는 집을 정리하고 가족을 데리러 귀향하여, 어릴 적 동무인 룬투를 만난다. 룬투가 늙고 생활에 쪼들리며 신분이 매우 멀어졌기 때문에 어릴 적 동무인 자기를 ‘나으리’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나’는 추억이 사라진 것을 보고 슬퍼한다. 그러나 ‘나’의 조카와 룬투의 어린 아들은 옛날의 자기들처럼 사이좋게 놀고 있다. 고향을 떠나는 배 속에서 ‘나’는 이 다음 세대의 꿈만큼은 잃게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며, 염원과 체념의 두 가지 생각에 사로잡힌다. 추억과 현실이 교차하는, 루쉰의 작품 중 서정적인 작품이다. ‘아진(阿金)’ 해설 : 루쉰과 그의 창작을 특정한 ‘공간’과 ‘시간’에 놓고 고찰할 때,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보면 루쉰 문학 세계는 삼대 주체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사오싱(紹興) 세계’, ‘베이징(北京) 세계’, ‘상하이(上海) 세계’이다. 루쉰은 중국의 5·4운동 중 신문학을 이끈 인물이며, 그의 작품은 읽을 때마다 항상 새롭기 때문에, 그의 세계는 똑같지 않은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 그의 창작의 열정은 바로 향촌의 기억과 도시 체험에서 얻은 3대 공간이 원천이다. 이로 말미암아 창조한 ‘사오싱 세계’, ‘베이징 세계’, ‘상하이 세계’는 루쉰 문학 세계의 주체를 구성하였다. 루쉰은 전통 중국에 있는 3대 공간과 현대 중국의 특수한 지위를 잘 투영하였다. ‘고향’은 ‘사오싱 세계’의 대표작이며 ‘아진(阿金)’은 ‘상하이 세계’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회향병자’ 해설 : ‘회향병자’는 1922년 4월 2일 오전 5시에 도쿄의 어느 주점에서 지은 작품이라고 한다. 나약한 조국을 가진 주인공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가운데 주점으로 가서 상하이 출신의 여종업원을 만나게 됨으로써 주인공의 우울함을 더해 주고 있음을 묘사하였다. 위다푸의 한 계열의 소설은 항상 고향 마을의 풍경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있는데, ‘회향병자’에 묘사된 푸춘강(富春江) 양안의 풍경은 주인공의 영혼에 대한 일종의 위무이다. ‘회향병자’ 중에서 주인공은 고향 풍경의 추억과 어떤 소녀에 대한 추억을 연관시켰다. 감정의 미세함과 풍경의 쓸쓸한 아름다움이 함께 융합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회향병자’는 내용은 매우 깊으나 이야기는 아주 간단하다. 대체적인 구성은 앞의 세 부분은 먼저 ‘그림(묘사)’이며 나중이 글이고, 마지막 한 부분은 첫 부분을 자연스럽게 잇는 부분이다. 타향에 있는 한 유학생의 마음속에 있는 비밀과 기이한 만남을 다루었다. 이 소설은 사실적 수법으로 시대의 성격을 사회적으로 극명하게 분석한 작품이다. 퉁바오 노인식으로 노동하여 재산을 모으는 길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그러면 새로운 길은 어디에 있는가? 아둬에게 있음을 계시하고 있다. 이것이 ‘누에’의 주제이다. ‘속죄’ 본문 일부 : 리싱페이(李省非) 선생의 병환은 하루하루 더 심해져 갔다. 이러한 소식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허전하게 하고 근심을 자아내게 하였다. 그는 십여 년 동안 자기의 온 재산을 통틀어 내서 세 곳에다 고아원을 창설하여 외롭고 의탁할 곳 없는 불쌍한 어린이들을 꽤 많이 모아 양육과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외로운 어린이들을 구원(救援)하는 별이 되었고 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 사람들의 존경의 대상 인물이 되었다. 그의 병세가 위독하게 된 날 오후에는 세 곳 고아원의 책임자와 많은 지방 인사들이 그의 신상을 보살피러 왔다. “고우맙소이다. 여러 어른들이 날 이렇게 염려해 주셔서.” 그는 감격한 눈으로 여러 사람에게 고마운 뜻을 표하는 것이었다. “선생님, 잘 보양하십시다. 뭐 며칠 지내면 곧 쾌차하게 되실 걸 가지구.” 셴(沈) 원장은 나지막한 소리로 그를 위안하여 말했다. ‘소녀 화가’ 본문 일부 : 조용히 내려와 정원의 파란 잔디밭과 여기저기 곳곳에 자란 작은 꽃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오래 전 그 예쁜 소녀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그 때 나는 ×시의 어느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었다. 소녀 화가 그 소녀는 늘 내 프로가 끝나면 나를 찾아오거나, 아니면 전화를 걸어 오거나 했다. 나를 찾아온다고 해서 무슨 일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리고 전화도 무슨 일이 있어서 거는 게 아니었다. 그 소녀 말로는 그저 나를 보고 싶어서, 아니면 내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라는 것이었다. 나는 몹시 바빴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바쁘더라도 힘 닿는 데까지는 잠시라도 같이 앉아, 그 소녀를 바라보고 또 그녀의 짤막하고도 아무런 목적 없는 이야기를 들어 주곤 했던 것이다. 자기 말로는, 올해 열여섯이라 했다. 동그랗고 말쑥한 얼굴, 까맣고 긴 눈썹, 짙고 검은 윤기 있는 머리채, 빨갛고 도톰한 입술, 입가에는 담담한 웃음이 늘 걸려 있었다. 그 소녀는 눈을 똑바로 하고 사람을 보는 일이 별로 없었고, 대개 눈을 내리깔고 있어, 드러난 속눈썹이 사람의 마음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올가미’ 본문 일부 : 제당회사 사무실을 나온 이웨이(逸偉)는 거대한 결정 탱크 앞에서 섰다. 결정 탱크 속의 당액(糖液)이 ‘검사유리’를 통해 또렷이 눈에 비쳐 왔다. 그 노르끄레한 액체는 빙글빙글 돌고 하얀 거품이 떠서 그 모양이 큰 바다 가운데서 소용돌이치는 파도 같았다. 올가미 이웨이는 그것을 응시하고 있었으나 생각은 그 위에 집중할 도리가 없었다. 그건 잠시 동안일 뿐, 이웨이의 ‘활발한’ 연상력은 소용돌이치는 파도에서 잔잔한 물결을 연상하고, 잔잔한 물결에서는 또 물결 모양 아름다운 슈피(舒碧)의 곱슬곱슬한 머리를 연상하고 있었다. 요즈음 한 달포 동안 이웨이의 생각은 모두 이상할 만큼 슈피에게로만 쏠리는 것이었다. 그의 생각은 어디서 출발을 하든 결국에는 언제나 슈피에게 머물고 말았다. ‘홍엽’ 본문 일부 : 고요한 산길을 그는 홀로 서성거리고 있었다. 아스라이 잃어버린 그날의 발걸음을 찾아서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 길가에는 아직도 자줏빛 꽃이 활짝 피어 있고 저 장엄한 산사(山寺) 앞의 우뚝우뚝 선 커다란 나무들 아래에는 단풍나무의 빨갛게 물든 낙엽이 흩어져 있을 것이다. 옅은 안개가 숲 사이에 깔린 채 아주 고요하고 새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날씨는 별로 좋지 않아 산에 놀러 오를 때가 아니다. 오래간만이지만 산 속의 풍경은 전과 다름없고 길가에 놓인 큼직큼직한 돌과 나무도 조금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지난 날 그 때 그 홍 엽 심정은 영영 찾을 길이 없었다. 그는 우스운 일들이 많은 줄 잘 알지만 이것은 조금도 우스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설령 다시 산에 올라 아무것도 찾지 못한다 해도 그랬고 심지어 자신의 소망이 더욱 더 멀어진다 해도 그랬다. 그렇다. 마음은 더욱 허전해지고 산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흰 구름처럼, 끝없는 광야의 저녁 바람처럼 돌아갈 곳을 몰랐다. ‘사랑’ 본문 일부 : 그녀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녀는 그 사람이 아주 이상하다고 생각이 되었다. 그녀가 그를 만났을 때에는 그가 매우 상냥하고 친절한 것처럼 느꼈었다. 그러나, 언행상에는 오히려 침묵과 냉담을 유지했다. 그녀는 비록 그와 이미 안 지가 벌써 반년이 되었지만, 그녀는 그에 대해 여전히 처음 보는 사람 같았다. 그러나 어제 그가 그녀에게 소리지르며 모욕을 주던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이 때 그녀는 결코 그를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사 랑 오후에 그가 왔다. 이번에는 그녀가 그에 대하여 그전처럼 무관심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가 무슨 불쾌한 일이라두 있나?’ 그녀는 이렇게 속으로 생각하면서 슬쩍슬쩍 그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그는 무거운 걸음으로 천천히 그녀의 앞을 지나쳤다. ‘밀월 여행’ 본문 일부 : 우리 중국서 서양 문물의 영향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다 자유연애 결혼을 요구하고 동시에 밀월여행 가기를 좋아한다. 그 장소로서는 대개 항주 서호(杭州西湖)가 선택된다. 그것은 우리 나라에서 이 항주가 다른 데보다 경치도 좋고 또는 신혼 부부의 여행에는 적당한 곳으로 인정되는 까닭이다. 그래 여기 북경서 오는 한 쌍의 부부도 혹은 다른 데가 없나 하여 이곳저곳 생각하여 보았으나 도무지 적당한 곳이 없으므로 여러 번 의논한 결과 결국 서호로 가기로 결정하고 말았다. 그 부부는 혹은 돈에 여유가 있었으면 이탈리아나 일본으로 갔을는지도 모르나 그것은 결국 공상에 지나지 못한 것이 되고 말았다. 여행 지점을 결정한 그들은 장차 내일의 결혼을 상상하면서 둘이서 나란히 마차를 타고 유리창(琉璃廠)으로 가서 상무인서관(商務印書館) 지점으로 들어가 ‘서호유람지남(西湖遊覽指南)’과 ‘서호풍경도(西湖風景圖)’, ‘서호전도(西湖全圖)’ 등을 사 가지고 다시 마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개시 대길’ 해설 : 라오서는 ‘장 선생의 철학’, ‘조자왈(趙子曰)’, ‘합조집(蛤藻集)’ 등 많은 작품을 발표한 작가다. 그의 유머러스한 작풍은 가끔 루쉰이나 린위탕(林語堂)과 비교되나 이들과도 물론 다르고 타인이 모방할래야 할 수 없는 특이한 것이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본시 베이징 출신으로 순수한 베이징의 백화체를 그대로 작품에 사용하여 참된 대중문학의 건설을 위하여 한 개의 좋은 표본을 보여 주었으며 참된 백화소설은 그로부터 시작되었다고 극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여간 루쉰의 사후 중국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은 작가다. ‘개시대길’은 흔히 상가(商家)에서 ‘개시대길 만사형통(開市大吉萬事亨通)’이라고 써 붙이는 데서 떼어 온 것으로 엉터리 의사의 영업번창기다. 일종의 폭로소설이면서도 조금도 의식적으로 폭로한다는 감을 주지 않는 데에 이 작가의 비범한 수완이 있을 것이다. ‘목양 애화(牧羊哀話)-금강산의 비가’ 해설 : 작자의 유학 시대의 작품으로 베이징서 도일(渡日)하는 도중에 철도로 조선을 거친 경험을 토대로 하여 창작한 초기의 작품으로, 물론 금강산에는 들른 일이 없었다. 조선의 실정과 다소 어그러지는 점도 나타나나 그의 낭만적 시정과 정의를 사랑하는 순정만은 충분히 엿볼 수 있다. ‘목양 애화’ 본문 일부 : 금강산 일만이천 봉 산신령이 벌써부터 내 혼백을 해천만리(海天萬里) 밖에서 조선으로 끌어들였다. 나는 조선에 도착한 후 이 금강산 아래 동해에 면한 한 조그만 마을에 살았다. 마을 이름은 선창리(仙蒼里)라 부르며 홋수는 겨우 십여 호에 지나지 않고 모두 바다를 바라보고 산을 등지고 있으며 반은 새집이었다. 집집마다 앞에는 울타리를 했고 또 꽃나무, 소나무가 때때로 울 너머로 보였다. 온 마을과 바닷가 전부가 모두 솔밭이고 다만 마을 근방에 몇 섬지기의 농토가 있고 뽕나무가 몇 줄 있을 뿐이다. 배추꽃, 메밀꽃으로 그 몇 정본가 되는 농토는 금벽색(金碧色)으로 덮이어 있다. 그 동남편 소나무 숲 속에 적벽강(赤壁江)이라는 작은 내가 흐르고 있는데 일만이천 봉의 산골 물을 모아서 아침이나 저녁이나 구슬픈 소리를 내며 사나운 동해 바닷물 속에 삼키어 버려 남쪽으로 가고 만다. 내가 처음에 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 마을 사람들은 나를 가짜 중국인이라 의심하고 어느 집에서나 다 재워 주지 않았다. 다행히 마을 남쪽 끝에 윤씨(尹氏)라는 나이가 오십이 넘어 보이는 할멈이 하나 있었다. 단 혼자 외로이 살며 부처님을 모시고 있었다. 내가 찾아온 뜻을 잘 듣고 내가 멀고 먼 데서 와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것을 불쌍히 여기어 그 집에 머무르게 해 주었다. 윤씨네 집 대문에는 백지의 문련(門聯)이 붙었는데 조선 풍속으로는 아직도 대문에 춘련(春聯)을 붙이어 또 백지를 쓰는 것이 똑 그 나라 장사(??喪事)집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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