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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의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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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도서정보 저자 : 이석필
출판사 : 한가람서원
2026년 01월 12일 출간  |  ISBN : 899035675X  |  224쪽  |  규격外  |  1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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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2026년 01월 12일 출간 | ISBN : 899035675X | 224쪽 | 규격外 | 1판

상세이미지

목차

프롤로그 6 1 미식의 민주화인가, 유통의 역습인가 1. 초연결 시대의 식탁, 배달 앱이 바꾼 저녁 풍경 12 2. 깃발 꽂기와 수수료 전쟁, 플랫폼이 결정하는 오늘의 메뉴 19 3. 1인 가구의 거대한 냉장고가 된 편의점 33 2 왜 우리는 자극에 중독되는가 1. 단짠의 경제학, 뇌를 자극하는 식품 공학의 설계도 40 2. 먹방과 인스타그램이 만든 ‘보여주기식’ 외식 문화 45 3. 저렴한 한 끼 뒤에 숨겨진 초가공식품의 습격 53 4. 혼밥, 고립된 현대인의 가장 외로운 미식 57 5. 욕망의 설계, 광고와 환경이 만드는 ‘무의식적 식사’ 63 3 외식 산업의 거대한 전환 1. 서비스 노동의 종말과 푸드테크의 진화 72 2. 키오스크 앞에서 소외되는 사람들과 효율성 78 3. 맛집의 줄 서기가 밀키트로 들어오다 86 4. AI는 어떻게 당신의 취향을 예측하는가 93 5. 편리함의 그늘, 반복 소비와 경험의 표준화 97 4 지속 가능한 먹거리를 찾아서 1. 비건과 대체육, 유행을 넘어 생존의 언어로 110 2. 친환경은 왜 쓰레기를 남기는가 115 3. 로컬 푸드와 슬로 푸드 120 4. 미래의 식탁, 기술 이후의 선택 128 5. 지속 가능성을 먹는 일상으로 가져오기 137 5 다시, 어떻게 먹을 것인가 1. 취향은 어떻게 훈련되는가 146 2. 예측 가능한 만족과 기억에 남는 식사의 차이 157 3. 시간을 들이는 먹기, 요리하기, 기다리기 168 4. 선의가 아닌 구조적 소비로서의 ‘로컬 선택’ 178 5. 완벽하지 않은 식탁을 선택하는 용기 185 6 먹는다는 것의 의미 1. 인간은 왜 필요 이상으로 먹는가 192 2. 맛은 어디에서 끝나는가 197 3. 요리하는 사람과 먹는 사람 사이의 차이 203 4. 기억하고 싶은 식탁, 마지막 만찬 208 5. 불완전함 속에서 식탁에 앉기 214 에필로그 220

책속으로

프롤로그

집에서 불을 켜는 순간, 가장 먼저 밝아지는 것은 냄비가 아니라 화면이다. 가스레인지의 점화음 대신 알림음이 울리고, 조리대보다 먼저 펼쳐지는 것은 메뉴판이다. 우리는 더 이상 “무엇을 해 먹을까”를 고민하지 않는다. 대신 “어디서 시킬까”를 고른다. 이 변화는 얼핏 보기에 편의가 진화한 결과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는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식탁의 구조 자체가 재편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한때 주방은 집의 심장이었다. 불과 물, 칼과 도마가 모여 있던 그 공간은 음식을 만드는 장소를 넘어, 가족의 하루가 교차하는 중심이었다. 저녁 준비는 곧 대화의 시작이었고, 냄비에서 올라오는 김은 하루의 속도를 늦추는 신호였다. 식사는 시간을 나누는 행위였으며, 함께 먹는다는 사실 자체가 관계를 확인하는 하나의 의식에 가까웠다.
그러나 지금의 주방은 점점 축소되고 있다. 원룸과 오피스텔에서 주방은 하나의 ‘공간’이라기보다 통로에 가깝다. 때로는 최소한의 조리 기능만 남긴 채 장식처럼 배치되기도 한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식당이 아니라, 식당의 인터페이스다. 테이블 위에 놓인 것은 접시보다 스마트폰이고, 식탁의 중심에는 음식보다 화면이 자리 잡는다.
배달 앱은 레스토랑을 집 안으로 옮겨놓지 않았다. 그것이 이식한 것은 레스토랑의 ‘경험’이 아니라, 선택과 결제의 순간을 극도로 압축한 구조였다. 접객은 사라지고, 조리 과정은 가려지며, 음식은 도착과 동시에 소비된다. 기다림은 최소화되고 설명은 생략된다. 음식은 이야기를 품기도 전에 식고, 관계를 만들기도 전에 치워진다. 이 속도는 우연이 아니다. 오늘날의 식탁은 효율을 중심으로 다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택지가 늘어났다고 믿는다. 수백 개의 메뉴와 수천 개의 가게가 손가락 아래 펼쳐진다. 화면을 넘길 때마다 새로운 음식이 등장하고, 세계 각국의 요리가 손쉽게 호출된다. 그러나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선택들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같은 플랫폼, 같은 알고리즘, 비슷한 가격대, 반복되는 맛의 문법. 다양성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 유통 구조가 허락한 범위 안에서만 가능한 차이에 가깝다.
선택은 많아졌지만, 선택의 조건은 오히려 단순해졌다. 조리의 난이도는 고려 대상에서 사라지고, 원산지와 계절성은 작은 글씨로 밀려난다. 남는 것은 가격, 별점, 배달 시간이다. 무엇을 먹을지는 선택하지만, 왜 그것을 먹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선택은 능동적인 행위처럼 보이지만, 그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점점 보이지 않게 설계된다.
이 글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먹고 있는 것이 과연 음식인지, 아니면 시스템인지 묻기 위해서다.
음식은 언제나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한 나라의 식탁을 들여다보면 그 사회의 노동 구조와 가족 형태, 기술 수준은 물론, 무엇을 가치 있다고 여기는지까지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식탁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혼자 먹는 저녁,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따뜻함, 사진을 찍기 위해 존재하는 음식, 칼로리보다 먼저 계산되는 가성비. 이 모든 장면은 개인의 취향이라기보다, 시대가 만들어낸 선택의 결과에 가깝다.
외식 산업은 지금 거대한 전환기에 놓여 있다. 조리사는 줄어들고, 데이터는 늘어난다. 맛은 점점 표준화되고, 자극은 강화된다. 식재료는 글로벌화되지만, 식사는 점점 고립된다. 우리는 분명 더 편리해졌다. 그러나 그만큼, 무엇을 먹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먹고 있다. 음식은 점점 말이 없어지고, 우리는 그 침묵에 익숙해진다.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다. “요즘 음식 문화가 왜 이런가”라는 탄식에 머무르지 않는다. 대신 묻고자 한다. 어떤 힘이 우리의 식탁을 설계하고 있는가를. 플랫폼은 중립적인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메뉴를 배열하고, 가게를 노출시키며, 가격의 상한과 하한을 암묵적으로 설정한다. 알고리즘은 우리의 취향을 예측하는 동시에, 그 취향을 형성한다.
우리가 자주 시키는 음식은 정말로 우리가 좋아해서일까. 아니면 그 음식이 우리 앞에 반복해서 등장했기 때문일까. 이 질문은 미식의 문제가 아니다. 소비자로서의 자율성, 더 나아가 선택할 권리에 대한 질문이다. 그리고 그 선택이 사라질 때, 우리는 무엇을 잃게 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기술은 종종 외식 산업을 구원하는 것처럼 등장한다. 로봇 조리, 무인 점포, 밀키트, 대체육, 스마트 팜. 효율과 지속 가능성이라는 언어는 언제나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새로운 배제와 새로운 불균형이 숨어 있다. 키오스크 앞에서 길을 잃는 사람들, 배달 용기 쓰레기 더미 위에서 논의되는 친환경, ‘힙’한 비건 담론과 생존의 문제로서의 식량 위기 사이의 간극. 미래의 식탁은 기술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배달도, 편의점도, 밀키트도 필요하다. 문제는 그것들이 유일한 선택지가 될 때 발생한다. 선택의 다양성은 메뉴의 숫자가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의 폭에서 결정된다. 직접 요리할 시간, 신뢰할 수 있는 정보, 공정한 가격 구조, 그리고 함께 먹을 수 있는 관계. 이런 조건들이 사라질 때, 식탁은 아무리 풍요로워 보여도 공허해진다.
이 글의 출발점은 단순하다. 우리는 무엇을 먹고 사는가. 그리고 그 선택은 과연 우리의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주방을 떠나 유통을 살피고, 화면 너머의 알고리즘을 들여다본 뒤, 다시 식탁으로 돌아올 것이다. 해체는 파괴가 아니라 이해를 위한 과정이다. 이 책은 식탁을 한 번 해체한 뒤, 다시 어떻게 먹을 것인가를 묻는 재구성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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