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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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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도서정보 저자 : 백유선
출판사 : 두리미디어
2008년 10월 10일 출간  |  ISBN : 897715197X  |  351쪽  |  A5  |  1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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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선사 시대부터 대한민국 정부 수립까지~ 29개 테마로 한 눈에 보는 우리 역사! 『한국사 콘서트』. 한반도 문명의 새벽부터 고대 왕조의 흥망성쇠, 고려와 조선, 격동의 근대사까지 한국사의 흐름을 흥미로운 테마를 통해 한눈에 조망한다. 정확한 역사 이해와 역사의 대중화라는 의의 아래 누구나 쉽게 역사의 흐름을 읽고 더 정확한 역사 교양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호기심을 일으킬만한 29개의 테마를 시대별로 나눠 총 5부에 걸쳐 소개한다. 생생한 시각 자료를 수록해 역사를 어렵게 느끼는 일반 독자들도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유도한다. 특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잘못된 역사 상식과 전승까지 바로 잡아 객관적이고도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한다.

상세이미지

저자소개

저자 : 백유선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한국사를 전공했다. 1999년 출간한 《청소년을 위한 한국사》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권장 도서, 올해의 좋은 책, 대한출판문화협회 선정 올해의 청소년 도서 등에 뽑히며 스테디셀러가 됐다. 〈월간 독서평설〉, 〈위즈키즈〉 등 여러 잡지와 매체에 칼럼을 연재했으며 EBS 〈진리의 오디세이, 한국사 이야기〉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한 바 있다. 지은 책으로 『우리 불교 문화유산 읽기』, 『한번만 읽으면 확 잡히는 국사』가 있다. 현재 보성중학교 역사 교사로 재직 중이며 우리 역사를 입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복원하는 작업에 힘쓰고 있다.

목차

머리말 | 역사와 벗하기를 기대하며 1장 선사 문화와 고대 국가의 발전 01. ‘사람’ 중심의 고대사 복원을 위하여 역사 상식 바로잡기 | 청동기 시대에는 청동기가 널리 사용되었다? 02. 고대사 최대 쟁점, 단군 신화 바로보기 역사 상식 바로잡기 | 단군은 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을 건국했다? 03. 대륙의 중심은 우리다, 고대 국가의 각축 역사 상식 바로잡기 | 고구려를 건국한 사람은 주몽이다? 04. 잊혀진 해상 세력의 맹주, 가야 05. 중원 정벌의 두 주역,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역사 상식 바로잡기 | 삼족오는 고구려의 상징이다? 06. 칠지도는 하사품이었다, 베일 벗은 고대 한일 관계 07. 동북아 강국의 대격돌, 고구려와 수∙당 전쟁 역사 상식 바로잡기 | 高句麗는 ‘고구려’라고 읽는다? 2장 남국 신라와 북국 발해 01. 삼국 통일, 어떻게 볼 것인가? 역사 상식 바로잡기|의자왕은 3천 궁녀를 거느렸다? 02. 발해는 한국사인가, 중국사인가? 03. 신라 붕괴를 부른 귀족들의 권력 다툼 역사 상식 바로잡기|진성여왕은 음란했다? 04. 후삼국의 영웅, 견훤과 궁예 그리고 왕건 3장 고려, 통일 국가의 탄생과 성장 01. 왕권 회복을 위한 두 군주의 선택, 왕건과 광종 역사 상식 바로잡기_고려는 일부다처제 사회였다? 02. 고려와 요, 역사를 두고 맞붙다 03. 무신 정권 100년, 억압과 하극상의 시대 역사 상식 바로잡기 | 격구는 전통 놀이다? 04. 대몽 항쟁 30년, 난세의 영웅은 이름 없는 백성이었다 4장 조선, 유교 국가의 성립과 발전 01. 역성혁명으로 새 나라를 열다 02. 조선의 태평성대를 열다, 세종 시대 역사 상식 바로잡기 | 황희정승은 청백리였다? 03. 정쟁의 기폭제, 훈구와 사림의 대결 역사 상식 바로잡기 | 4대까지 제사 지내는 것은 우리나라의 오랜 전통이다? 04. 바다에서 건져 올린 승리, 조일 전쟁 역사 상식 바로잡기 | 원균은 비겁한 장수이자 간신이었다? 05. 피할 수 있었던 치욕, 조선과 청의 전쟁 역사 상식 바로잡기 | 나선 정벌은 조선이 러시아를 정벌한 사건이다? 06. 왕의 나라 VS 신하의 나라, 정쟁의 소용돌이 역사 상식 바로잡기 | 사도 세자는 정신병자였다? 07. 개항과 쇄국의 기로, 대원군의 선택 역사 상식 바로잡기 | ‘대명천지’는 ‘밝고 환한 세상’이라는 뜻이다? 5장 근대를 향한 발걸음 01. 부강하고 싶거든 개화하라, 19세기 개화 운동 역사 상식 바로잡기 | 명성황후는 뛰어난 정치가였다? 02. 민중의 횃불, 봉건 조선의 심장을 노리다 03. 조선의 마지막 황실, 대한제국 역사 상식 바로잡기 | 고종은 원구단에서 황제 즉위식을 했다? 04. 동조론에서 일체론까지, 일제의 조선 말살 프로젝트 역사 상식 바로잡기 | 친일파들은 모두 창씨개명에 앞장섰다? 05. 한반도를 뒤덮은 태극 물결, 3∙1 운동 역사 상식 바로잡기 | ‘남대문’이란 이름은 일제의 잔재다? 06. 좌 ․ 우 대립을 넘어, 신간회의 결성과 해소 07. 짧은 해방 긴 대립, 분단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역사 상식 바로잡기 | 신탁 통치는 소련이 먼저 제의했다?

책속으로

고구려가 국호를 ‘고려’로 바꾸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일반적인 역사책에는 물론 교과서에도 잘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장수왕 때 평양 천도 이후 국호를 바꾼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고구려가 국호를 ‘고려’로 바꾼 것은 고구려인의 기록에서도 볼 수 있다. 장수왕의 남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중원고구려비에는 ‘고려 태왕’이란 글자가 있고, 6세기 불상인 연가7년명금동여래입상에도 ‘고려’라는 나라 이름을 분명히 쓰고 있다. 후삼국 시대 왕건이 ‘고려’라고 한 것은 고구려에서 ‘구’자를 뺀 것이 아니라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뜻에서 고구려의 나라 이름인 ‘고려’를 그대로 쓴 것이다.
----p.61 중원 정벌의 두 주역, 광개토왕과 장수왕

무신 정변은 우리 역사 속에서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 정상적인 절차가 아닌 군사력을 이용한 권력 장악의 본보기가 된 것이다. 더구나 개혁을 통한 민생 안정보다 자신의 권력 유지와 사리사욕을 탐했다는 측면에서 보면 더더욱 그러하다. 우스운 것은 같은 방법으로, 즉 군사력을 이용해 권력을 장악한 지난 군사 정권 시기에는 무신 정권에 대해 몽골에 대항한 투쟁 의지만을 내세워 매우 높은 평가를 했다는 것이다. 역사 해석이 정치적인 입김에 따라 이루어진 바르지 못한 예라고 할 수 있겠다.
----p.168 무신 정권 100년, 억압과 하극상의 시대

이 시기 시각 측정을 얼마나 중요시했으며 또 얼마나 정확했는지 보여 주는 일화가 있다. 세종 때 일식이 있었다. 그런데 천문학자가 계산한 시각보다 1각, 즉 지금의 시간으로 약 15분 늦게 일식이 일어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단히 잘 맞춘 것 같지만 이로 인해 이 천문학자는 곤장을 맞았다.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에 말이다. 따라서 조선 시대에는 그저 식사 때 정도나 구분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때도 대단히 정확한 시각에 따라 생활하고 있었던 것이다.
----p.207 조선의 태평성대를 열다, 세종 시대

동아시아의 역사에서 조선과 청 두 나라가 일본과 다른 길을 걸어가게 된 배경은 바로 개혁의 실패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거의 마지막 시도였던 개화당의 갑신정변마저 허무하게 3일 만에 무너졌다. 조선은 근대 국민 국가의 수립을 이루지 못한 채 더욱 어려운 운명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제 조선의 근대화와 외세 침략에 대한 대응 과제는 정치권에서는 해결할 수 없었다. 핍박받던 민중들이 마지막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뛰어든 것은 20세기를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였다.
----p.279 부강하고 싶거든 개화하라, 19세기 개화 운동

흔히 신탁통치는 소련이 먼저 제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5년 12월 27일 〈동아일보〉는 “소련은 신탁 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1면에 실어 보도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닌 오보였으며, 더구나 모스크바 3상 회의 결의 사항의 전부도 아니었다. 사실 처음 신탁 통치 문제를 제기한 것은 미국이었다. 카이로 회담을 주도한 루스벨트는 ‘한국에 40년간의 신탁 통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는 이후 카이로 선언에서 ‘적절한 과정을 거쳐(in due course)’ 한국을 독립시킨다는, 완곡한 외교적 수사로 표현되었다. 그리하여 전쟁이 끝나갈 무렵에는 신탁 통치 문제에 대한 미․ 영․ 중․ 소 4개국의 합의가 이루어졌다. 즉 신탁 통치 문제는 미국이 기본적인 틀을 구상하고 소련 등의 양해를 구함으로써 합의된 것이었다.
----p.351 신탁 통치는 소련이 먼저 제시했다?

출판사 서평

오늘의 한국을 만든 결정적 장면 29가지 그 변혁의 드라마를 만난다! “역사를 아는 자는 무너지는 담장 아래 결코 서지 않는다.” 제왕학의 교과서로 불리는 중국 당나라 사서 《정관정요》에 나오는 말이다. 이는 역사를 아는 것, 더 나아가 역사가 본연의 진실에 충실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 책은 ‘흥미’에만 초점을 맞춰 종종 역사 왜곡을 낳는 대중 역사서의 한계를 뛰어넘어 역사 본연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 선사 시대부터 대한민국 정부 수립까지 우리 역사에서 가장 긴박하고 파란만장했던 29장면을 선별해 한국사 전반을 깊이 있고 명쾌하게 풀어썼다. ▶ 시대를 만드는 것은 ‘사람’이다 ‘유물’ 중심에서 탈피한 ‘사람’ 중심의 색다른 선사 시대사! 역사는 ‘사람’이 살아온 과정을 살피는 학문이다. 왕조와 유물 중심의 역사 서술이 사람 중심으로 옮겨 온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역사의 한복판에서 살다 갔으나 주목받지 못했던 민초들의 삶을 더듬는 시도가 계속될수록 우리 역사는 더 풍부한 이야기를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유물’ 중심의 서술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대가 있다. 바로 선사 시대다. 수만 년 전 우리나라 역사의 시작점에는 뗀석기, 주먹도끼, 빗살무늬 토기 등 유물만 있을 뿐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 책은 선사 시대를 다룬 지금까지의 역사서와 달리 한반도 문명의 새벽을 연 ‘최초의 사람’들에게 주목한다. 이들이 우리 역사의 첫 주인공이자 우리 문화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사료가 부족해 추론 수준에 그친다 해도 한 시대를 산 사람들의 삶을 복원하려는 시도는 계속되어야 한다. 저자는 화석 인류와 여러 선사 유적, 최근 발굴 성과를 토대로 우리 역사의 첫 주인공들은 누구였으며, 어떻게 살아갔는지 생생하게 복원해 냈다. ▶ 아득한 역사에 얽힌 가장 깊숙한 비밀 철의 왕국 가야는 왜 가장 먼저 멸망했을까? 근초고왕이 왜왕에게 칠지도를 보낸 까닭은 무엇일까? 나당 연합 시 신라와 당나라 사이에는 밀약이 있었다? 대조영 출신을 둘러싼 한국․ 중국․러시아의 엇갈린 해석 등등. 까마득한 고대사에 얽힌 미스터리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특히,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로 ‘역사 전쟁’이 가시화된 시점에서, 한․ 중․러․일의 사료들을 비교․ 분석하며 빛바랜 역사의 굽이굽이를 새롭게 조명한 점은 이 책이 거둔 큰 성과다. ▶ 오늘의 한국을 빚어 낸 사건과 인물 몽골의 말발굽이 고려로 향했을 때 세계 최강 몽골 부대와 맞선 것은 이름 없는 농민과 천민이었다. 충주성 전투, 처인성 전투의 승리는 지휘관과 양반이 도망친 가운데 가장 홀대받던 노비들이 거둔 값진 승리였다. 왕자의 난을 통해 형제를 죽여 가며 강력한 왕권을 수립한 태종 이방원은 조선 왕조를 위해 장남 양녕 대군을 내쫒고 셋째 아들 충녕 대군을 세자로 삼았다. 피를 뿌리며 이룩한 새 왕조를 통치하기에는 태종에게 양녕이 아닌 충녕이 필요했다. 우리 역사에서 ‘세종대왕’이라는 위대한 성군을 만나게 해 준 이 사건은, 조선은 어떤 나라여야 하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 사건이었다. 구한말 격동의 시기에 새로운 조선을 갈망하며 치열하게 살다 간 개혁가들도 빼놓을 수 없다. 민중의 분노를 하나의 목소리로 결집해, 이후 사회 변혁 운동의 기반을 마련하고 민중 저항 시대를 연 전봉준과 농민들, 조선의 살길을 개화에서 찾고 국정 전반에 일대 혁신을 주장했던 개화파 지식인들, 민족 최대 수난기에 좌우 대립을 뛰어넘어 화합의 교두보를 마련한 신간회 결성, 희망과 절망의 교차로에서 터진 신탁 통치 왜곡 기사 등등. 한국사에 획을 그은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종횡하며 역사를 이해하는 새로운 시선을 제공한다. 〈font color="blue"〉기록 아래 숨겨진 ‘진짜 역사’를 견인하다 교양인이라면 바로 알아야 할 한국사의 참모습!〈/font〉 “단군은 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을 건국했다.” “삼족오는 고구려의 상징이다.” “고구려를 건국한 사람은 주몽이다.” “진성여왕은 남자관계가 복잡했다” “고려는 일부다처제 사회였다.” “나선 정벌은 조선이 러시아를 정벌한 사건이다.” “황희는 청백리였다.” “대명천지는 밝고 환한 세상이라는 뜻이다.” “친일파들은 모두 창씨개명에 앞장섰다.” “남대문이란 이름은 일제의 잔재다.” “신탁 통치는 소련이 먼저 제의했다.” …….많은 사람들이 사실로 믿고 있는 한국사 상식들이다. 과연 그럴까? 얼마 전 고구려를 소재로 다뤄 큰 인기를 모았던 한 드라마가 심각한 역사 왜곡 때문에 논란을 빚은 적이 있었다. 관련 학자들이 논문을 통해 드라마의 문제점을 일일이 지적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우리 역사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 준 사례다. 흔히 역사는 ‘사실의 기록’이라고 한다. 하지만 인류가 과거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래, 역사는 오류와 위조, 불확실한 속설들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한국사 상식 중 적지 않은 부분이 실제 사실과 다르다. 때로는 기득권의 권력 유지를 위해 때로는 시대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혹은 가설에 풍문이 더해져 잘못된 상식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굳어진 예도 많다.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이 사실로 믿고 있는 역사 오류 중 20가지를 엄선해 별도 장으로 구성함으로써 내용의 깊이를 더했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역사의 진실한 면면을 들여다보며 박제된 지식에 온기가 더해지고 역사의 흐름이 새롭게 재편되는 놀라운 경험을 선사한다. ▶ 고구려를 건국한 사람은 주몽이다? 고구려를 건국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열에 아홉이 ‘주몽’이라고 답할 것이다. 정말 그럴까? 광개토왕릉비의 맨 앞에 실린 고구려 건국 기사에는 “시조 추모왕(鄒牟王)께서 나라를 세우셨도다.”라고 쓰여 있다. 또 5세기경 고구려 무덤인 모두루 무덤에는‘추모성왕’이란 표현이 보인다. 당시 고구려인들은 자신들의 시조를 ‘추모’라고 부른 것이다.‘주몽’이란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중국의 사서인 《위서》‘고구려전’이다.‘추모’의 음을 따서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비슷한 음 ‘주몽’으로 기록한 것이다. 더구나 의도적으로 좋지 않은 글자를 택했다. ‘주(朱)’자에는 난쟁이란 뜻이 있고‘몽(蒙)’자는 어리석다는 뜻이다. 중국이 주변 민족을 비하해 좋지 않은 글자로 이름을 붙인 경우는 흉노, 몽고 등 쉽게 찾을 수 있다. 최근 중국은 고구려를 자신들의 역사라 주장하면서‘주몽’ 대신 ‘추모’라고 쓰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 진성여왕은 음란했다? 흔히 진성여왕은 사생활이 복잡하고 음란했던 ‘요부’로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의 기사 영향 때문이다. 유교적 사관에 입각해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은 진성여왕과 숙부였던 위홍의 근친상간을 용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신라의 성도덕과 문화는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 당시 진성여왕과 위홍은 ‘공식적인 관계’였다. 삼국유사에는 “왕의 배필은 대각간 위홍”이란 기록이 있다. 유교적인 기준과 달리 신라의 도덕관으로는 합법적인 관계였다는 뜻이다. ▶ 격구는 전통 놀이다? 격구는 흔히 전통 놀이 정도로 치부되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격구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었다. 무인이라면 반드시 익혀야 할 ‘무예의 꽃’이었다. 격구는 군사 훈련의 한 과정으로서 국가적으로 장려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군사들에게 무예를 익히고 상무 정신을 고취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으며, 조선 시대에는 무과 시험의 필수 과목으로까지 지정될 정도였다. 세종은 “격구를 잘하는 사람이라야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할 수 있으며, 창과 검술도 능란하게 된다.”고 말하며 격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조 역시 격구를 ‘무예 이십사반(무관들이 배운 24종류의 무예)’의 하나로 선정해 《무예도보통지》에 수록했다. ▶ ‘남대문’이란 이름은 일제의 잔재다? 숭례문은 그동안 ‘남대문’으로 불리다가 1996년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명칭을 ‘숭례문’으로 바꾸었다. 본래의 이름을 되찾은 것이다. 그런데 항간에는 남대문이 일제가 붙인 명칭이기 때문에 바꿨다는 잘못된 상식이 유포됐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숭례문은 처음 지어질 당시부터 남대문으로 불리었다. 이는 《조선왕조실록》에 남대문이란 명칭이 수없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태조실록》에서부터 남대문이란 명칭이 등장하고 있다. 《태조실록》에는 “숭례문은 속칭 남대문이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아예 숭례문 대신 남대문으로 쓰고 있는 곳도 있다. 따라서 남대문이란 명칭이 일제의 잔재라고 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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