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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독일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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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도서정보 저자 : 제바스티안 하프너
출판사 : 돌베개
2014년 10월 01일 출간  |  ISBN : 897199620X  |  376쪽  |  규격外  |  1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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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을 쓴 작가, 제바스티안 하프너의 나치 시대 회고록! 『어느 독일인 이야기: 회상 1914-1933』은 1914년부터 1933년까지, ‘어느 독일 사람’ 제바스티안 하프너가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하면서 목격하는 위태로운 시대상과 내면의 갈등을 섬세하고 선명한 필치로 그린 책이다. 전장의 승전보에 열광하던 일곱 살 철부지 어린아이부터 불의에 서서히 눈을 뜨고 나치의 급격한 부상에 분노하며 외국으로 이주하게 되는 청년의 성장과정을 꼼꼼히 기록했다. 한편으로는, 그 기간 동안 독일인이 어떻게 나치에 열광하거나 침묵하며 공멸의 길에 발을 들여놓았는지 저자 특유의 통찰력으로 관찰하고 분석하였다. 하프너는 독일을 뒤흔들었던 역사적, 정치적 사건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자기 자신을 비롯한 동세대의 내면 풍경에 더욱 주목하였다. 개인적인 경험을 근간으로 삼아 사회현상과 병치하면서 한 시대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드러내고 평가하며 왜 그렇게 되었는지 분석한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을 비롯한 뭇 독일인의 일상과 내면을 드러내는 기술을 사용했을까. 저자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 사람들의 삶에 남긴 흔적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중에 일어난 일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단언하며 사소한 순간들이 드러낸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상세이미지]

[저자소개]

저자 : 제바스티안 하프너 저자 제바스티안 하프너 Sebastian Haffner는 1907년 12월 27일,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라이문트 프레첼(Raimund Pretzel)이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법원과 출판사에서 일하다가 나치의 폭정이 극으로 치닫던 1938년에 유대인 약혼자와 함께 영국으로 이민했다. 언어장벽과 가난, 나중에 부인이 되는 약혼자의 임신으로 이민 초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독일에 남아 있는 가족들의 피해를 우려해 필명 ‘제바스티안 하프너’로 저술 활동을 시작했다. 이 필명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이름과 모차르트 교향곡 35번의 곡명 「하프너」를 조합한 것이다. 훗날 하프너는 이 교향곡의 쾨헬 번호 ‘KV 385’를 자동차 번호로 쓰기도 했다. 1941년 하프너는 조지 오웰의 청탁으로 ‘서치라이트 북스’ 시리즈 중 한 권인 『독일 공습』(Offensive Against Germany)을 영어로 집필, 출간했다. 한편 명망 높은 언론인 데이비드 애스터의 후원하에 「옵서버」지에 기고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편집장 자리까지 올랐다. 1954년 편집장에서 물러나 독일로 돌아왔으며,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질 때까지 줄곧 「옵서버」지 베를린 특파원으로 일했다. 쉰 살이 넘어서야 독일 언론을 위해 일하기 시작한 하프너는 1962년까지 「디 벨트」지에 글을 썼고, 이후 1975년까지는 「슈테른」지 칼럼니스트로 일했다. 베스트셀러 역사 교양서를 여러 권 발표했으며, 자유베를린방송(SFB)에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1999년 1월 2일, 세상을 떠났다. 하프너는 독일 제국의 성립부터 1차 세계대전 발발, 바이마르 공화국의 실패, 히틀러의 부상과 몰락에 이르는 독일의 파란만장한 근현대사를 놀라운 통찰력과 신선하고 명료한 언어로 서술하는,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역사 교양서 작가로 평가받는다. 대표작으로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1967),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Anmerkungen zu Hitler(1978),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Von Bismarck zu Hitler(1987), 『어느 독일인 이야기』Geschichte eines Deutschen(2000) 등이 있다. 역자 : 이유림 역자 이유림은 경희대학교와 같은 대학원에서 철학을,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영화학을 공부했다. 지금은 책과 영화를 번역한다. 옮긴 책으로 『그해 봄은 더디게 왔다』, 『그 여름, 마리아』, 『독수리와 비둘기』, 『바람 저편 행복한 섬』, 『파블로와 두 할아버지』, 『첫사랑』, 『질문의 책: 마틸다의 숨은 행복 찾기』, 『사슬옷 베티』, 『어느 날 빔보가』 등이 있다.

[목차]

머리말 4 프롤로그 11 혁명 121 작별 225 후기 359 옮긴이의 말 374

[책속으로]

다음 날 아침 누가 나를 깨웠을 땐 벌써 짐 싸기가 한창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처음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며칠 전에 사람들이 나한테 설명해주었지만 ‘동원령’이란 말은 나한테 아무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나한테 뭔가 더 설명해줄 시간도 없었다. 짐을 다 싸서 정오에는 출발해야 했다. 그다음에는 기차가 계속 다닐지 확실치 않았다. 유능한 우리 집 하녀가 말했다. “오늘은 영점오로 가야 해.” 그게 무슨 뜻인지 지금도 아리송하지만 어쨌든 모든 게 어수선하기 짝이 없고 누구나 각자 알아서 챙겨야 한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래서 내가 눈에 띄지 않게 빠져나와 숲으로 달려갈 수도 있었다. 출발하기 바로 전에 사람들이 간신히 나를 찾아냈다. 나는 나뭇등걸 위에 앉아 얼굴을 손에 묻은 채 엉엉 울면서 이제 전쟁이니 모두 나름대로 희생해야 한다는 말 따위는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았다. 나는 어찌어찌 마차에 실려, 이미 떠난 한스와 바흐텔은 아니었지만 타닥타닥 속보로 달리는 갈색 말 두 마리를 따라 떠났다. 우리 뒤로 먼지구름이 일어 모든 것을 덮어버렸다. 나는 내 어린 시절의 숲을 다시는 보지 못했다.
- 본문 23~24쪽(1부. 프롤로그)

그해 3월 내내 그랬듯 무척 따뜻하고 화창한 봄날이었다. 맑디맑은 하늘 한조각 구름 아래 송진 향기가 나는 소나무 사이 이끼가 덮인 풀 위에 앉아, 우리는 영화에 나오는 연인들처럼 입을 맞췄다. 평온한 세상에는 봄기운이 가득했다. 한두 시간쯤 거기 앉아 있었을까, 전교생이 소풍이라도 가는 날인지 10분마다 학생들이 무리지어 지나갔다. 양떼를 성실하게 지키는 목자 같은 선생님이라면 으레 그러듯 콧수염이나 턱수염을 기른 지도교사가 개구지고 귀여운 남자애들을 이끌고 갔다. 숲길에서 만났을 때 이 학생들은 우리를 지나면서 가벼운 인사말을 던지듯 쾌활하고 카랑카랑한 아이들 목소리로 입을 모아 외쳤다.
“유대인 뒈져라!”
어쩌면 꼭 우리를 겨냥한 말이 아닐 수도 있었다. 나는 유대인처럼 보이지 않고 찰리도 유대인치고는 별로 유대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냥 아무 악의도 없는 인사말이었을 수도 있었다. 모르겠다. 어쩌면 정말 우리를 향해 도발하는 말일 수도 있었다.
내가 자그마하고 사랑스럽고 발랄한 여자를 품에 안고 ‘봄 언덕 위에’ 앉아 어루만지고 입 맞추는 동안 천진한 아이들이 지나가면서 우리한테 뒈지라고 요구했다. 우리는 그러지 않았고 그 아이들도 우리가 뒈지지 않는 데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걸어갔다.
초현실적인 풍경.
- 본문 179~180쪽(2부. 혁명)

갈색 제복을 입은 사람 하나가 다가와서 내 앞에 버티고 섰다.
“당신은 아리아인이오?”
미처 생각할 틈도 없이 대답했다.
“예.”
그는 내 코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물러났다. 하지만 나는 온몸의 피가 얼굴에 쏠리는 듯했다. 나는 수치와 패배를 한 박자 늦게 비로소 감지했다. “예”라고 대답하다니! 물론 나는 맹세코 ‘아리아인’이다. 거짓말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훨씬 더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 물어보는데 나는 아리아인이라고, 평소에는 별 의미도 없던 사실을 마치 기다렸다는 듯 냉큼 대답하다니, 어찌나 굴욕적인지. 그렇게 대답함으로써 사건 서류에 몰두할 수 있게 타협하다니, 어찌나 부끄러운지! 벌써 이렇게 휘둘리다니! 첫 관문에서부터 잘못하다니! 스스로 뺨이라도 갈기고 싶었다.
법원에서 나올 때 잿빛 법원 건물은 늘 그렇듯 거리에서 좀 떨어져 잔디밭과 나무들 뒤에 냉정하고 여유롭게 서 있었다. 하나의 제도로서 사법부가 방금 무너졌다는 것은 결코 알아챌 수 없었다. 아마 나한테서도 내가 방금 거의 회복할 수 없을 치욕을 겪고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없으리라. 그저 말쑥하게 차려입은 젊은 남자가 포츠담 거리를 조용히 걸어가고 있을 뿐. 거리에서는 아무것도 눈치챌 수 없었다. 평소와 똑같았다. 하지만 공기 속에는 뭔지 모를 일들이 천둥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 본문 186~187쪽(2부. 혁명)

제3제국 건국의 역사에는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하나 있다. 나한테는 이 문제가 누가 국회의사당에 불을 질렀는가 하는 문제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하다. 독일인들은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1933년 3월 5일에만 해도 독일인 가운데 반이 넘는 숫자가 히틀러에 맞서 투표했다.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죽었을까? 지구에서 사라졌을까? 아니면 늦게나마 나치가 되었을까? 어떻게 그 사람들은 눈에 띌 만한 반응을 전혀 보이지 않은 것일까?
- 본문 231쪽(3부. 작별)

[출판사 서평]

국가가 더 이상 개인의 편이 아닐 때, 어떻게 할 것인가? 독일 국민 작가 제바스티안 하프너의 나치 시대 회고 “그는 그저 스스로 자신의 인격과 사생활, 그리고 개인적 명예라고 생각하는 것을 지키고 싶어 할 뿐이다. 하지만 그가 몸담은 국가는 약간 투박하지만 매우 잔인하게 이 모든 것을 끊임없이 공격한다.” “어떻게 히틀러가 나올 수 있었는지 이해하게 만든다.” 디 차이트 “제바스티안 하프너 최초의 책, 그리고 어쩌면 최고의 책.”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이 책은 올봄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으로 국내에 소개된 제바스티안 하프너 ‘최초의 책이자 최후의 책’이다. 하프너가 독일을 떠나 영국에 정착한 지 1년 뒤인 1939년에 집필되었다는 점에서 ‘최초의 책’이지만, 오랜 세월 서랍장 속에 잠들어 있다가 1999년 하프너가 세상을 떠난 뒤 유족에게 발견되어 이듬해인 2000년에 출간되었다는 점에서 ‘최후의 책’이다. 책의 첫머리에서, 그리고 행간과 행간 사이에서 하프너는 끊임없이 묻는다. 국가가 더 이상 개인의 편이 아닐 때 어떻게 할 것인가? 나아가 “[국가가] 개인에게 친구를 포기하고 연인을 떠나길, 자신의 신념을 버리고 미리 정해진 것을 받아들이길,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인사하고 좋아하지 않는 방식으로 먹고 마시길, 경멸하는 활동에 여가 시간을 바치고 마뜩지 않은 모험에 자신을 내맡기길, 자기 과거와 자아를 부정하길, 게다가 이 모든 것에 대해 끊임없이 열광하며 감사하는 모습을 보이길 요구”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이처럼 이 책은 ‘난폭한 권력을 휘두르는 무자비한 국가’와 ‘작고 이름 없는 개인’의 ‘결투’를 기록한다. 이 개인은 타고난 영웅도 순교자도 아니지만 그저 ‘어깨를 한번 으쓱’ 올려 보이며 국가가 청하는 결투에 기꺼이 응한다. 그는 결투 내내 수세에 몰리지만 결코 무릎 꿇지 않은 채, 국가의 공격을 잽싸게 피하고 아슬아슬하게 막아낸다. 그 개인은 바로 저자 제바스티안 하프너 자신이다. 이 책은 부제가 말하고 있듯이 1차 대전이 발발하는 1914년부터 나치가 정권을 장악하는 1933년까지의 기록을 담고 있다. 전장에서 들려오는 승전보에 열광하던 일곱 살 철부지 어린아이가, 불의에 서서히 눈뜨고 의문을 품는 사춘기 청소년으로, 나치의 급격한 부상에 분노하며 외국으로의 이주를 꿈꾸고 그 와중에도 자유분방한 사랑을 나누는 스물여섯 살 청년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이 섬세하게 그려진다. 하여 이 책은 제바스티안 하프너 개인의 성장기요 자전적인 에세이이다. 한편으로는 그 기간 동안 독일인들이 어떻게 나치에 열광하거나 침묵하며 공멸의 길에 발을 들여놓았는지 특유의 통찰력으로 관찰하고 분석하고 전망하는 일종의 역사서이다. 1차 대전의 발발과 독일 전역을 휩쓰는 최종승리에 대한 열망, 믿기지 않는 패전과 이윽고 들이닥친 시련, 1918년 독일혁명과 이어진 혼란, 역사상 전무후무한 하이퍼인플레이션과 민족주의의 부상 등 파란만장한 독일의 현대사가, 하프너 개인의 생애라는 수면 위로 혹은 아래로 더없이 인상적으로 펼쳐진다. 이렇듯 이 책은 1914년부터 1933년까지, ‘어느 독일 사람’ 제바스티안 하프너가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하면서 목격하는 위태로운 시대상과 내면의 갈등을 섬세하고 선명한 필치로 그려낸 역작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60년 동안 미공개 상태로 남아 있다가 하프너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2000년에 유족에 의해 출간되었다. 출간에 얽힌 사연은 이게 다가 아니다. 그로부터 다시 2년이 흐른 2002년 3월 독일연방기록보관소에서 이전까지 종적을 알 수 없었던 이 책의 25장과 마지막 여섯 개 장, 즉 35장부터 40장까지의 원고가 추가로 발견되어 비로소 하프너가 집필을 마쳤을 때 모습 그대로 세상에 다시 선을 보인다. 이 번역서는 2002년에 출간된 증보판을 저본으로 삼았다. ■ 사소한 순간들이 드러내는 역사 올 5월에 국내 독자들을 만난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이 히틀러가 세상을 어떻게 아비규환으로 만들었고, 히틀러로 인해 세계가 어떻게 재편되었는지 거시적인 시각으로 분석하는 이야기라면, 『어느 독일인 이야기』는 그런 히틀러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넌지시 보여 주는 책이다. 독일 사람들의 침묵과 열광 속에서 히틀러와 나치즘이 대두하는 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이 책에서 하프너는 독일을 뒤흔들었던 역사적ㆍ정치적인 사건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만, 그보다는 자기 자신을 비롯한 동세대의 내면 풍경에 더욱 주목한다. 그는 개인적인 경험을 근간으로 삼아 이를 사회현상과 병치하면서 한 시대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드러내고 평가하며 왜 그렇게 되었는지 분석한다. 결코 주관적인 입장에만 매몰되지 않고 개인적인 경험을 세대 공통의 경험으로 확장해서 당시 독일의 역사와 현실을 탁월하게 분석하고 미래까지 예견한다. 그렇다면 하프너는 왜 자신을 비롯한 뭇 독일인들의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과 내면을 드러내는 기술 전략을 선택했을까? 하프너는 모든 역사적 사건은 모든 이에게 흔적을 남기지만, ‘1933년 이전에 일어난 일과 그다음에 일어난 일은 큰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이전의 일들은 우리를 지나가고 넘어갔으며, 우리는 그 일에 신경을 쓰거나 흥분하기도 했고 몇몇은 그로 인해 죽거나 가난해지기도 했’지만, 1933년 힌덴부르크가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하는 순간처럼 ‘6,600만 명의 인생에 [동시에] 지진’이 일어나는 순간은 없었다는 것이다. 하프너는 이처럼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 사람들의 삶에 남긴 흔적을 이해하지 못하면 ‘나중에 일어난 일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단언한다. ‘학술적ㆍ실용적 역사 기술은 역사적 사건의 이런 집중도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알고 싶으면 전기, 그것도 정치인의 전기가 아니라 거의 알려지지 않은 개인의 전기를 읽어야 한다. 이런 개인의 전기는 정치인의 그것보다 훨씬 드물다. 개인의 전기에서는 어떤 ‘역사적 사건’이 호수 위의 구름처럼 개인의 실제 생활 위를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고 이따금 그림자만 비칠 수도 있다. 어떤 사건은 폭풍우처럼 호수를 채찍질해대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만든다. 어떤 사건은 호수를 깡그리 바짝 말려버리기도 한다. 나는 우리가 역사의 이런 차원을 망각하면(거의 늘 잊힌다.) 역사를 잘못 이해하게 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20년 동안의 독일 역사를 나의 관점에서, 즉 내 개인사의 일부로 기술하려 한다. 별로 오래 걸리지 않을 테고 이어지는 이야기를 이해하는 게 더 쉬워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서로 좀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18~19쪽) 이런 소소함의 문법은 이 책의 기본 전제, 이른바 ‘컨셉트’이다. 하프너는 역사 기술이 정치적 사건의 나열과 분석에만 머무른다면 역사의 중요한 차원 가운데 하나를 잃어버리게 된다면서 제3제국과 개인, 즉 자신의 ‘결투’가 철저하게 대중을 배제한 채 고립된 상태에서 이루어지지만 결코 하나뿐인 사례가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 일곱 살 철부지 소년, 전쟁에 열광하다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대략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1부 ‘프롤로그’는 1차 대전이 발발하는 1914년부터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기 한 해 전인 1932년까지의 일을 다루고 있다. (2부 ‘혁명’과 3부 ‘작별’은 1933년 한 해 동안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1914년 8월 1일, 발트 해 연안 힌터포메른의 영지에서 방학을 보내던 일곱 살 소년은 1차 대전 발발로 인해 휴가를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게다가 아끼던 말 ‘한스’와 ‘바흐텔’이 ‘예비 병마’로 징발되어 심장에 비수가 꽂힌 듯한 아픔을 맛본다. 전쟁이 확산될 일은 없을 테니 방학이 끝날 때까지 남은 2주를 계획대로 힌터포메른에서 보내게 될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안도하며 잠든 소년을 기다리는 것은 하룻밤 사이에 결정이 바뀌어 베를린으로 돌아갈 짐을 허겁지겁 꾸리느라 가족과 하녀들이 부산을 떠는 아침이다. 하프너는 ‘내 어린 시절의 숲을 다시는 보지 못했다.’고 아프게 회고한다. 그러나 실망도 잠시뿐, 소년은 곧 ‘축구에 열광하듯’ 전쟁에 열광하게 된다. 후방인 베를린의 어린아이에게 전쟁은 놀라울 만큼 비현실적이다. 공습도 폭탄도 없이 ‘포로 숫자, 획득한 토지, 정복한 요새, 가라앉은 군함’의 수치가 마치 축구나 권투 경기에서 집계되는 점수표처럼 날아와 소년을 열광시킨다. 하프너는 자신이 며칠 만에 ‘광신적 국수주의자이자 책상머리 [꼬마] 군인’이 된 원인을 공기, 즉 시대 분위기에서 찾는다. ‘딱히 이름을 붙일 순 없지만 주위에서 수천 겹으로 느낄 수 있는 분위기’, 즉 ‘하나로 뜻을 모은 대중이 밀고 당기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기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여 ‘나치즘의 근간이 된 세대’는 자기처럼 ‘1900년에서 1910년 사이에 태어나 전쟁이라는 현실에 아무 영향도 받지 않고 이를 거대한 놀이로 경험한 사람들’이었다고 말한다. 독일에서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초등학생이었던 세대는 날마다 여러 나라들이 벌이는 거대하고 자극적이고 매혹적인 게임처럼 전쟁을 경험했다. 이는 평화가 제공하는 것보다 훨씬 신나고 극적인 만족감을 주었다. 이것이야말로 나치즘의 근본 비전이 되었다. (……) 많은 것들이 나치즘을 강화하고 그 성격을 변하게 했다. 하지만 그 뿌리는 바로 여기, 독일 군인들의 ‘전선 경험’이 아니라 독일 학생들의 전쟁 경험에 있다. 전선에 직접 나간 세대는 대개 확신에 찬 나치가 되지 않았고 지금도 주로 ‘깐깐이와 투덜이’를 만들어낸다. (31~32쪽) 어린 하프너는 사회 전체의 분위기에 젖어들어 마치 흥미진진한 모험을 하듯 전황을 쫓아가면서 전쟁을 경험한다. 전쟁으로 인한 고난이야 소년에게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전쟁이 쉬이 끝나지 않고 패색이 짙어지면서 전쟁 초기의 열광도 식어가자 소년은 깊은 실망과 배신감으로 괴로워한다. 심부름을 하러 나갔다가 전쟁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들과 우연히 마주친 소년은 ‘참고 견뎌야 한다’며 맹랑하게 일장연설을 늘어놓기도 한다. 하프너는 이렇게 후방에서 ‘안전하게’ 전쟁을 치른 자기 세대가 나중에 나치즘에 자양분을 제공했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에 이런 자극을 받았던 세대는 이후 더 큰 자극을 추구하게 마련이고, 별다른 이유 없이 안팎의 적들에게 잔혹해진다는 것이다. ■ 사춘기 소년, 혁명에 염증을 느끼다 전쟁이 지속되는 4년 동안 평화가 어떤 것이었는지 느낌조차 흐릿해지고 폐색은 짙어 가지만 소년은 여전히 독일이 승리하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못한다. 1918년 10월, 독일혁명이 시작되고, 이제 열한 살이 된 소년은 전쟁 내내 듣지 못했던 총소리를 혁명의 와중에 마침내 듣게 된다. 그리고 11월 19일 휴전 협정으로 1차 대전은 시작 때만큼이나 느닷없이 끝나버린다. ‘잔인한 패배의 언어’가 잔뜩 담긴 휴전협정 공고가 거리에 나붙고, 소년은 충격과 배신감에 휩싸인다. 나는 독일의 패배가 어떤 사람을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가랑비에 젖는지도 모른 채 낯선 거리를 헤매던 열한 살짜리 소년보다 더 큰 충격에 빠뜨렸을 거라고 믿지 않는다. 특히 비슷한 시간에 파제발크 야전병원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패전 선포 방송을 듣다가 참지 못하고 뛰쳐나온 상병 히틀러의 고통이 더 컸을 거라고는 믿지 않는다. 그는 나보다 더 극적으로 반응해서 이렇게 썼다. “나는 그곳에 더 머무를 수가 없었다. 다시 눈앞이 캄캄해진 채 휘청휘청 더듬거리면서 공동 침실로 돌아와 내 자리에 몸을 던지고 뜨겁게 달아오른 머리를 이불과 베개 속에 묻었다.” 그리고 그는 정치인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42~43쪽) 그리고 이제 소년의 눈앞에는 혁명과 바이마르 공화국의 거대한 혼란상이 펼쳐진다. 혁명은 일상생활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지만, 대중을 열광시키는 ‘환상’이 결여된 대신에 ‘모순’과 ‘혼란’으로 가득해서 소년은 도무지 혁명이 달갑지 않다. ‘권력은 거리에 굴러다니고’, ‘진정한 혁명가는 아주 드물었다’고 하프너는 회고한다.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열광할 건더기가 없는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카를 리프크네히트와 로자 룩셈부르크가 총에 맞아 죽는다. ‘좌파 혁명이 형태를 갖추려고 헛힘을 쓸 때’ 나치 혁명의 토대는 이미 굳건하게 자리를 잡고, 히틀러유겐트도 1919년에 이미 거의 완성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렇듯, 소년이 청년으로 성장해 가는 동안 목격하는 것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거대한 실패와 이 틈을 타고 민족주의가 무섭게 팽창하는 과정이다. 좌파는 우왕좌왕하고, 히틀러와 나치는 야금야금 세상을 집어삼킨다. 그 와중에 1923년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독일을 아비규환으로 몰아넣는다. 1달러가 2만 마르크, 4만 마르크로, 다시 100만 마르크로, 심지어 1조 마르크로 뛰어오르는 속에서, 웬만한 돈으로는 담배 한 갑조차 살 수 없고, 온 국민이 주식투자에 촉각을 기울이는 상황이 계속된다. 모든 정치적인 문제는 이제 뒷전으로 물러나고 모두가 주식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이제 열여섯 살이 된 하프너 역시 주가 예측이라는 새로운 놀이에 빠져든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은 독일인들이 쌓아온 경제적 가치가 통째로 무너지는 경험이었을 뿐더러 지금껏 통하던 상식과 지혜마저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만든다. 슈트레제만 정부의 화폐개혁으로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진정되고 비로소 평화가 찾아온다. 1924년부터 1929년까지 ‘슈트레제만 시대’는 질서정연하고 경제도 잘 굴러가며 독일 전역은 스포츠 열기에 들썩인다. ‘물론 단점도 많지만 우리가 경험한 가장 나은’ 시대. 그러나 겉으로 평화로웠을 뿐 ‘너무나 많은 불행이 표면 아래 들끓고 있었’던 시대. 그 모든 것이 불행의 전조였을 뿐이었던 시대. 1929년 10월 슈트레제만의 갑작스런 죽음과 1930년 봄 브뤼닝의 총리 등극으로, 이 일시적인 평화마저 막을 내린다. 하프너는 브뤼닝 내각을 최선도 차선도 아닌 차악, 즉 독재를 막기 위한 반독재로 규정한다. 뮌헨을 거점으로 남부에서 세력을 확장해가는 나치를 제어하기 위해선 브뤼닝 내각처럼 강력한 정부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브뤼닝은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게 그의 방식이었고 그는 자신이 ‘인기가 없다’는 사실을 되레 자랑스러워했다. 테가 없는 안경을 통해 실눈으로 엄격하게 내려다보던 무뚝뚝하고 앙상한 남자. 친절하게 굴거나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것은 그의 본성에 맞지 않았다. 그도 몇 가지 성취해냈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그의 성과는 예외 없이 “수술을 마쳤습니다만 환자는 죽었습니다.”나 “진지는 지켰지만 병사는 부상을 입었습니다.”라는 식이었다. (110쪽) 그러나 또한 하프너는 브뤼닝 정부로도 나치를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단언한다. 브뤼닝한테는 진정한 추종자가 없었다. 그는 ‘묵인되었다.’ 그는 차악이었다. 몹시 가학적인 고문 전문가에 맞서 학생들을 때리면서 “내가 너희들보다 아프다.”라고 말하는 엄격한 교사였다. 사람들은 브뤼닝이 히틀러를 막을 딱 하나뿐인 보호막으로 보였기에 그를 감쌌다. 브뤼닝도 당연히 이를 알고 있었고 그가 정치적으로 생존하는 이유는 히틀러에 대항하는 한편 히틀러가 존재하는 것이었기에, 그는 절대 히틀러를 없앨 수 없었다. 브뤼닝은 히틀러에 맞서 싸워야 하지만 동시에 히틀러를 보존해야 했다. 히틀러는 실제 권력을 잡아서는 안 되지만 계속 위험하게 남아 있어야 했다. (113쪽) ■ 나치 혁명, 히틀러를 반대했던 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1부 ‘프롤로그’가 1914년부터 1932년까지 18년간의 기록인 데 반해, 2부와 3부에는 나치가 정권을 거머쥔 1933년의 이야기가 오롯이 담겨 있다. 먼저 2부 ‘혁명’에서는 1933년 초 히틀러가 총리에 오르고 난 다음 통치 기반을 확립하고 유대인에 대한 박해를 시작한 그해 4월 1일까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프너는 법학대학을 갓 졸업하고 법원에서 연수생으로 일하면서 이 시절을 경험한다. 나치는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겉보기에는 평소와 똑같아 보일 정도로 천천히 유대인의 권리를, 그리고 독일인의 권리를 앗아간다.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의 책임을 물어 공산주의자를 우선 제거한 데 이어 사민주의자, 공화주의자에게까지 탄압의 손길을 뻗고, 언론과 통신의 검열을 강화하고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제한하면서 모든 단체를 차츰 나치 조직으로 통합해 나간다. 유대인에 대한 박해도 그리 다르지 않아서 처음에는 사치품을 몰수하고 유대인 가게에 대한 보이콧을 지시하는 데서 시작해 조금씩 그 범위를 넓혀나가다가 결국 한 인종에 대한 절멸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하프너는 자신과 지인의 경험, 즉 히틀러 돌격대가 사육제 파티에 들어와 분위기를 망쳐놓는다든가, 노동자 주거 지역에서 병원을 운영하던 사민당원 애인이 체포되는 바람에 제정신이 아닌 친구와 통화를 한다든가, 유대인 죽마고우가 직장에서 쫓겨난 바로 다음 날 스위스 망명을 결정하는 등의 에피소드를 통해 이 초기 단계를 실감나게 그려낸다. 3부 ‘작별’에서는 1933년 4월부터 그해 말까지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다. 나치 당원들이 유대인 법률가들을 쫓아낸 자리에 들어와 법과 정의 대신 당과 민족을 내세우는 광격을 목격하면서 하프너는 사법제도 자체에 대해 근본적으로 회의를 품게 된다.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도 점점 더 답답해진다. 좌파정당은 물론 우파정당까지 해산당하고 나치 독재가 시작된다. 하프너는 자신이 딛고 선 땅이 발밑에서 조금씩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노라고 표현한다. 작별은 모든 것을 관통하는 극단적인 좌우명이 되었다. 예외도 없었다. 내가 살던 세계가 날마다 자연스럽게, 소리를 내지 않고 녹아내리더니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거의 날마다 그 세계 한 조각이 사라지고 가라앉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세계를 찾아보려고 두리번거렸지만 남아 있지 않았다. 이렇게 기이한 일을 경험한 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내가 딛고 선 땅바닥이 발밑에서 끊임없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아니, 어디선가 내가 숨 쉬는 공기를 쉬지 않고 빨아들이는 것만 같았다고 하는 게 더 나을까. 공식적인 영역에서 눈에 띄게 일어나는 일이 거의 가장 무난한 일이었다. 그래, 정당이 사라졌다. 해산했다. 우선 좌파정당이 해산한 다음 우파정당도 해산했다. 나는 어느 정당의 당원도 아니었다. 대중이 그 이름을 말하고 그가 쓴 책을 읽고 그가 한 연설을 토론하던 사람들이 사라졌다. 이민을 떠나기도 했고 수용소에 들어가기도 했다. 때때로 누군가가 ‘체포될 때 자살했다’거나 ‘도망치려다가 총에 맞았다’는 얘기가 들렸다. 그 여름 언젠가 아주 유명한 학자와 문인 30~40명의 이름이 신문에 실렸다. ‘민족의 반역자’라 이름 붙이고 시민권을 박탈하여 추방했다. (241~242쪽) 결국 하프너는 희망이라곤 없는 조국을 등지고 파리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실제로 독일을 떠나는 것은 5년 뒤인 1938년이고 선택한 나라는 주지하다시피 영국이다. 나치의 횡포가 숨통을 죄는 속에서 하프너는 자신과 가족과 친구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대단히 담담하면서도 꼼꼼하게 그려낸다. 이 무렵 사법 연수생 여섯 명과 꾸렸던 스터디 그룹은 우여곡절 끝에 와해되는데, 세 사람은 나치 간부가 되고 나머지 셋은 외국으로 망명한다. 평생 청교도적인 품위와 절제, 청렴함을 꼿꼿하게 지켜온 아버지는 어느 날 연금을 계속 받으려면 국가관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설문지를 작성하고 나치 정부를 지지한다는 성명서에 서명하라는 요구를 받고 여러 날 고민하다가 결국 초등학생처럼 전전긍긍하며 설문지를 채우기 시작한다. 설문지는 며칠 동안 빈 채로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어느 날 오후 방에 들어갔더니 아버지가 책상에 앉아 작문 숙제를 하는 어린 학생처럼 천천히 설문에 답하고 있었다. 30분쯤 지났을까. 아버지는 마음이 바뀌기 전에 설문지를 직접 우체통으로 들고 갔다. 겉보기에 달라진 게 없었고 목소리도 평소보다 더 높아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모든 일이 그에게는 너무 버거웠다. 말이랑 행동에서 평정을 유지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은 대개 정신적 부담이 너무 커지면 어떤 신체 기관이 이를 떠맡아 병으로 드러낸다. 심장 발작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다. 아버지의 표현 기관은 위였다. 아버지는 책상 앞에 다시 앉기가 무섭게 벌떡 일어나더니 갑자기 막 토하기 시작했다. 사나흘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소화하지도 못했다. 이렇게 시작한 육신의 단식투쟁으로 그는 2년 뒤 비참하고도 고통스럽게 죽었다. (289쪽) 국적을 초월한 사교 모임에서 여신으로 칭송받다가 일찌감치 ‘독일에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사라졌던 오스트리아 여성 테디는 어느 날 홀연히 하프너 앞에 나타나 파리의 자유로운 공기를 한껏 풀어놓고는 또다시 독일에 영원한 작별을 선언한다. 로맨스가 결합된 우정을 나눈 것으로 추측되는 테디는 떠났지만, 하프너에게는 사육제 때 만난 유대인 여성 찰리가 있다. 하프너와 찰리의 달콤하면서도 애틋한 사랑 이야기와 두 사람이 유대인 박해로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이야기가 책 중후반을 인상 깊게 만든다. 이 책에는 언급되지 않지만 하프너와 찰리는 결국 결별한다. 하프너와 함께 영국으로 떠나 1938년에 결혼하는 유대인 여성은 다른 인물이다. 가까운 사람들 가운데 이상하게도 찰리만 남았다. 하필이면 사육제에서 만나 불장난처럼 시작한 여자. 찰리는 남았다. 이 비현실적인 여름의 잿빛 천을 꿰뚫는 붉은 실처럼 찰리는 머물렀다. 조금은 아프고 조금은 어긋난, 아주 행복하지만은 않은 사랑, 하지만 한 조각 달콤함이 아예 없지는 않은 사랑. 찰리는 착하고 소박하고 단순한 여자였고 행복한 시절이었다면 우리 사랑도 단순하고 진부하고 달콤한 이야기였으리라. 하지만 불행이 우리를 지나치게 꼭 묶어주고 우리가 서로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굳이 꼭 집어 말하자면 하나의 세계를 잃어버린 것에 대한 보상, 날마다 괴롭고 답답한 고통에 대한 보상. 하지만 우리 두 사람 가운데 아무도 이 단계에 이르지 않았다. 나는 찰리에게 내 속에 있는 이야기를 거의 할 수 없었다. 찰리 자신의 불행이 훨씬 더 현실적이고 단순하고 무겁고 설득력 있었다. 찰리는 유대인이었다. 그녀는 박해받았고 날마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자기 자신과 부모님과 대가족의 목숨을 걱정해야 했다. (298쪽) 하프너는 사람들이 저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치 시대를 통과하는 모습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누구보다 빨리 나치에 동조하고 앞잡이가 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저 침묵하고 외면하고 때로는 동조하는 수많은 사람들, 드물기는 하지만 끊임없이 나치와 대결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프너는 조용히 반항하고 거부하는 길을 선택한다. 그러나 그런 그도 어쩔 수 없이 하켄크로이츠 완장이 달린 제복을 입고 하루에도 몇 번씩 행진곡을 불러야 하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이고 만다. 사법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는 훈련소에서 군사 교육과 ‘세계관 학습’을 받아야 한다는 의무 조항이 새로 생긴 탓이다. 이 책은 하프너가 유터보그 시법 연수생 훈련소에 입소하고 퇴소하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첫날 완장을 받았을 때 거부해야 했을까? 그 자리에서 이런 것은 차지 않겠다고 말한 다음 짓밟아야 했을까? 하지만 그건 무모했을 테고 더 나아가 우스꽝스러웠을 테지. 그건 내가 파리 대신 수용소에 간다는 것을 뜻했을 거야. 사법시험을 치겠다고 아버지한테 한 약속도 지키지 못할 테고. 어쩌면 거기서 죽을 테지. 헛되이. 돈키호테처럼 행동한 탓에, 봐주는 사람도 없는데. 어리석은 일이야. 여기선 다들 완장을 차는데. 그리고 난 ‘사적으로’ 나랑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더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내가 난리를 쳤다면 그 사람들은 어깨만 으쓱했을걸. 지금은 그냥 완장을 차는 게 나아. 그럼 나는 자유롭고 나중에 이 자유를 제대로 이용할 수 있을 거야. 지금은 총을 쏘는 법이나 잘 배워둬야지. 그럼 나중에 좋은 일을 위해 필요할 때 총을 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 아래 결코 잠잠해지지 않는 목소리가 있었다. 다 소용없어. 넌 완장을 찼는걸. 동료들은 코를 골고 잠결에 이리저리 뒤척이고 다른 소음을 쏟아냈다. 나만 혼자 깨어 있었다. 갑갑했다. 창문을 열어야 했다. 달빛이 비춰 들어왔다. 다시 잠들어야 했다. 하지만 다시 잠드는 게 이제 그리 쉽지 않았다. 숙소에서 깨어나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른 쪽으로 돌아누웠다. 옆에서 자는 사람 숨에서 나는 냄새가 고약해 다시 돌아누웠다. (340~341쪽) ■ 지금,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5월에 이미 국내 독자들을 만난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의 서문에서 작가이자 언론인인 귀도 크노프는 이렇게 말한다. “히틀러 노스탤지어는 무지라는 토양에만 거주한다. 히틀러에 대해서 거의 또는 전혀 모르는 사람만이 그에게 열광할 수 있다. 전염성이 강한 히틀러 열병에 최고의 치료제는 과거나 현재나 히틀러에 대한 지식뿐이다. (……) 히틀러의 볼모로 남아 있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독일의 트라우마인 히틀러를 늘 새롭게 검토해야 한다. 우리가 의식에서 밀어내면, 그것은 우리를 압박해 올 것이다. 우리가 다가가면 스스로 물러난다. 히틀러와 그의 탓으로 생긴 재앙을 알기 위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이 책보다 더 나은 책이 없다” 귀도 크노프의 상찬은 이 책 『어느 독일인 이야기』에도 그대로 유효하다. 국가가 무엇이며, 공동의 가치는 또한 무엇인지 육중한 물음표가 짓누르는 지금,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80여 년이라는 까마득한 시간과 머나먼 거리를 성큼 건너와 묻는다. “국가가 더 이상 개인의 편이 아닐 때, 어떻게 할 것인가?” 대답은 각자의 몫이다. 책속으로 추가 아니, 개인 생활로 물러나봤자 아무 소용 없었다. 어디로 물러나든 내가 피해 도망친 그것이 바로 옆에 있었다. 나는 나치 혁명이 정치와 사생활의 오랜 분리를 없애버렸고 나치 혁명을 단지 ‘정치적 사건’만으로 다룰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혁명은 정치 영역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사생활에서도 똑같이 일어났다. 독가스처럼 벽을 통해 스며들었다. 이 독가스에서 벗어나려면 딱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신체적으로 멀어지는 것, 이민이었다. 즉 내가 태어나 언어를 배우고 교육을 받은 나라, 게다가 애국이라는 연결 고리가 있는 나라에 작별을 고하는 것이다. 1933년 여름 나는 이런 작별까지 할 작정이었다. 크고 작은 작별에 이미 익숙해진 다음이었다. 나는 친구를 잃었고, 무난하게 지내던 지인이 잠재적 살인자가 되고 나를 비밀경찰에 넘겨주고 싶어 하는 적으로 변하는 것을 봤고, 일상생활의 소소한 기쁨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 본문 269~270쪽(3부. 작별) 이 책이 이토록 큰 성공을 거두리라고는 나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언론과 독자의 반응에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이 책은 군데군데 흠이 있는 토르소인 데다가 그 뒤 훨씬 더 끔찍한 일이 많았는데 1933년 중반에 미흡하게 끝나버린다.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그 이유를 해명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어요?”라는 질문에 증언의 형식으로 대답한다. 전후 세대는 전전 세대에게 언제나 다시금 이 질문을 던졌지만 대개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단다.” 하는 대답만 받았다. 이 책은 그 대답을 완전히 무력하게 만들어버린다. 아무것도 보지 못한 사람은 아무것도 보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못 봤다. 하지만 다른 한편 이 책은 세계대전 사이 독일 국민의 심리 상태를 알기 쉽게 그려내서 그들을 그냥 용서하지 않으면서도 나치의 성장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해할 수도, 극복할 수도 없었던 1차 세계대전의 패배, 억눌린 혁명, 인플레이션이란 모험, 사랑받지 못한 공화국, 그리고 아주 중요한 요소인 민주적 정치인들의 비겁함. 이 모든 것을 워낙 생생하고 설득력 있게 묘사해서, 이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눈앞에 보듯 명백하다. - 본문 372~373쪽(후기) 하프너가 이 책에서 기술하는 것은 일곱 살 어린아이일 때부터 청소년기를 거쳐 청년이 될 때까지 목격한 위태로운 시대상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을 비롯한 동세대의 내면 풍경이기도 하다. 그는 개인적인 경험을 근간으로 삼아 이를 사회현상과 병치하면서 한 시대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드러내고 평가하며 왜 그렇게 되었는지 분석한다. 결코 주관적인 입장에만 매몰되지 않고 개인적인 경험을 세대 공통의 경험으로 확장해서 당시 독일의 역사와 현실을 탁월하게 분석하고 미래까지 예견한다. 하프너의 다른 작품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이 히틀러라는 정치현상을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면, 이 책은 그 히틀러를 가능하게 한 대중, 그리고 그 대중을 이루는 구성 요소인 개인까지 조금 더 세밀하게 다룬다. 이 과정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허울 좋은 마취제에 지나지 않는, ‘공동체’라는 이름의 집단주의에 매몰되지 않는 개인이다. 그러나 이 개인이 외따로 떨어져 있을 때 자신을 올곧게 지키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아마 그래서 연대의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이리라. 집단에 그냥 묻히지 않고 자기 자아를 지켜나가면서, 그와 동시에 서로 돕기 위한 연대의 고리를 찾아내는 일은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 본문 374~375쪽(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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