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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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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도서정보 저자 : 김남일
출판사 : 학고재
2023년 04월 18일 출간  |  ISBN : 8956254508  |  3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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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2023년 04월 18일 출간 | ISBN : 8956254508 | 3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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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쪽
이태준은 1930년대 중반에 쓴 장편 『성모』에서 지금으로선 꽤 낯선 교실의 풍경을 그려낸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철진이가 엄마에게 자기네 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아예 지리부도까지 펴놓고 침을 튀기는 것이었다.
“엄마? 우리 반에 글쎄 여기 이 제주도서 온 아이두 있구 또 나허구 같이 앉었는 아인 함경북도 온성서 온 아이야. 뭐 경상남도 진주, 마산, 부산서도 오구 평안북도 신의주, 그리구 저 강계서 온 아이두 있는데 걘 글쎄 자동차루, 이틀이나 나와서 차를 탄대…. 퍽 멀지, 엄마?”
지도를 거침없이 짚어가는 그 손가락이 퍽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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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도쿄-엄밀한 의미에서는 ‘동경’이라는 기표-는 싫든 좋든 우리 근대 문학의 자궁 같은 곳이었다. 사실 우리의 근대는 수신사를 파견하던 시절 이후 도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는다. 근대 문학사에 이름을 올리게 되는 거의 대부분의 주요 작가들 역시 도쿄를 통해 어떤 형태로든 문학과 인연을 맺게 된다. 가령 최남선이 처음 가서 보고 기겁한 도쿄는 서울에서 말 그대로 대롱으로만 보던 것하고는 전혀 딴판 세상이었다. … 아직 학생 신분을 벗어나지 못한 이광수 역시 『소년』과 그에 이은 『청춘』의 주요 필진이었다. 두 사람은 도쿄에서 처음 맺은 인연을 한 40년 좋이 이어간다. 그 인연의 절정 또한 도쿄를 빼고 말할 수 없다. 1944년 그들이 새삼 도쿄까지 건너가 나눈 대담의 기록이 실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거기서 조선을 대표하는 두 지성인은 도쿄에서 공부하는 조선의 청년 학도들을 향해 “조선이란 점에 너무 집착하는 모습”을 벗어나 “대동아의 중심이자 중심인물이 된다는 기백”을 지닐 것을 요구한다. 그러면서도 같은 지면에서 그들은 처음 도쿄에 와 문학에 눈을 뜨던 시절부터 새삼 회상을 이어나가는 가운데, 몇십 년을 ‘국어(일본어)’로 글을 써오긴 했으나 ‘외국인’으로서 흉내 내기가 가능할지 근본적으로 의문이라는 속내 또한 솔직히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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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우리에게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1897)로 잘 알려진 영국의 여행기 작가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평양을 방문한 것은 1895년 11월의 일이었다. 청일전쟁이 끝난 그해 초겨울로, 일본인 자객들이 명성황후를 잔인하게 시해한 바로 다음 달이었다.
비숍은 조선이 희망 없고 무기력하고 한심스럽고 애처로운 존재라고 말했다. 어떤 큰 힘에 이리저리 튕겨 다니는 배드민턴 셔틀콕 같은 사람들의 나라로 여겼는데, 그런 그녀의 눈에도 평양의 첫인상만큼은 대단했다.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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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쪽
아무튼 오산 출신은 훗날 각계각층에서 크게 활약을 하는데, 문학과 예술 방면에서는 특히 화가 이중섭과 시인 김억, 김소월, 백석을 배출한 학교로 유명세를 타게 된다. 김억은 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선생으로 돌아와 교편을 잡기도 했다. 김소월이 그의 제자였다. 소설가 황순원도 평양의 숭덕소학교를 졸업한 뒤 오산학교에 들어가 한 학기를 다녔다고, 그 짧은 기간에도 남강의 감화를 크게 받았노라 회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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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쪽
김남천은 겨울에 온면이나 어묵 장국을 애호하는 사람이 있다지만 그건 늙은이들이나 할 짓이라면서, 웬만큼 국수(냉면) 맛을 아는 사람은 한겨울 엄동에 오히려 그 맛을 즐긴다고 주장했다. 혀를 울리는 쩌르르한 동치미 국물에 국수를 풀어놓고 돼지비계 같은 흰 잔디 쪽 위에 다대기를 얹어 훅훅 들이켜는 맛은 무엇에도 비교하기 어려운 훌륭한 별미라는 것. 이런 의견에는 정주 출신 백석도 동의했다. 눈이 많이 와서 산새들이 들판으로 내려오고 토끼도 더러 눈구덩이에 빠지곤 하는 겨울이면 어김없이 ‘이것’이 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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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쪽
김동인은 평양인의 생명이 대동강에 있다고 말했다. 대동강 없이는 평양도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부족한지 다시금 “평양의 대동강이 아니라 대동강의 평양”이라고 고집스럽게 제가 하고픈 말의 매듭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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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쪽
평양에는 조선 후기부터 관기들을 교육하는 기관이 있었다. 대한제국 시절에는 ‘기생서재’라는 데서 가무를 가르쳤다. 기생서재를 흔히 가무서재라 불렀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이런 가무 학교들이 여러 곳 생겼다. 1918년에 평양경찰서는 일본인 교사 한 명을 초빙하여 평양 기생들에게 일본어와 사미센 그리고 일본 가곡 등을 가르치도록 했다. 일본인 관광객들을 평양에 유치하기 위해서였다. 이때부터 기생들에 대한 좀 더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해져, 1920년에 평양의 기생 조합은 기성권번으로 이름을 고치고 본격적으로 강습소를 운영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되는 평양 기생 학교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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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쪽
삭주구성은 말 그대로 변방이었다. 평안도에서도 서북쪽 끝으로 일찍부터 국경선을 두고 외세와 숱한 다툼이 있어왔다. 삭주의 ‘삭朔’은 ‘삭풍’의 그 삭이다. 겨울철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 그 삭풍을 온몸으로 견디며 수자리 서던 병졸들의 모습이 절로 아련하다. 구성은 특히 고려 때 거란족의 거듭되는 침략을 막아낸 최전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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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쪽
평양 시내는 완전히 살육의 도가니였다. 곤봉이며 몽둥이를 쥐고 몰려다니는 군중은 “여기 있다!” 한마디만 하면 우르르 주린 이리떼처럼 달려들어 중국인의 해골을 박살 냈다. 멀쩡히 숨을 쉬던 중국인은 십여 분이 못 되어 두 손을 합장한 채 시체가 되어버렸다. 날이 밝았을 때, 피살된 자가 적어도 100명을 넘으리라는 오기영의 예상은 불행히도 들어맞고야 말았다.
1931년 7월 초 전국에서 발생한 화교 배척 폭동은 중국인 142명이 사망하고 120여 명이 중상을 입는 엄청난 피해를 남겼다. 그중에서도 평양의 피해가 가장 컸다. 평양의 사망자만 무려 133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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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쪽
서북 사람들, 특히 평양 사람들의 억세고 급한 성격은 뭐니 뭐니 해도 싸움할 때 가장 잘 드러난다. 그래선가 평양 사람 싸움 이야기는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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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쪽
사실 효석의 마음은 늘 서국西國에 가 있었다.

- 그 모든 아름다운 것은 외래의 것이요 이곳의 것은 아닌 것이다. 이곳의 것으로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 얼마나 있고 풍윤한 것이 얼마나 되는가. 수목이나 자연의 풍물을 제외하고 인간적의 것으로 가령 서반구의 아름다운 것을 당할 만한 무엇이 이 땅에 있는가.
서국의 미에 비하여 우리의 것이 너무도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은 편견도 아무것도 아니다.

그가 우유를 유달리 좋아하는 것, 심지어 백성 전체가 우유를 흡족하게 마시는 나라야말로 두말할 것도 없이 이상 사회라고 생각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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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쪽
평안도는 압록강 쪽으로 넘어가려는 유이민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이었다. 예컨대 소설가 황순원의 고향은 평양에서 가까운 대동군 방장리였다. 외가는 그곳에서 10리밖에 떨어지지 않은 천서리였는데, 그곳에 목넘이 마을이 있었다. 어디를 가려도 ‘목’을 넘어야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남쪽만은 꽤 길게 굽이도는 골짜기를 이루고 있지만, 결국 동서남북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어디를 가려도 산목을 넘어야만 했다. 해방 직후 월남한 황순원의 소설 「목넘이 마을의 개」(1948)에서도 서북간도로 가려는 이민들은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수도 없이 그 목넘이 마을을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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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6쪽
횡보 염상섭은 만주 땅 안동에서 해방을 맞이했다. 1937년 만주로 건너가 만주국의 수도 신경에서 한글 신문 『만선일보』의 편집국장으로 재직했던 그는 1939년부터 안동으로 자리를 옮겨 대동항건설사업에서 근무했다. 안동에서는 신시가에서 일본인들을 이웃으로 두고 살았다. 8월 15일 당일, 아직 날은 무더운 때여서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항복 선언임을 알아차리자마자 ‘인제는 우리도 풀려났구나’ 하고 꿈도 꾸지 못한 해방의 기쁨에 께께 울기만 했다. 그 옆에는 자기네 라디오는 잘 안 나온다면서 뛰어와서 염상섭과 나란히 앉아 라디오를 듣던 한 늙은 일본인이 있었다. 그 역시 훌쩍훌쩍 울면서 가버렸다. 물론 두 사람의 눈물은 그 뜻이 전혀 상극일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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