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회한과 설움 속에서 만나는 카타르시스! 희망을 노래하는 정안면 시집 『바람의 행로』.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저자의 개인사와 역사, 과거의 아름다운 사람이 없는 현실을 말한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상업주의에 의해 박제된 사랑이 아니라 사랑이 없는 몰인정한 현실에 노출된 영혼들을 치유하는 노래를 담는다. 또한 대중적 정서에 눈높이를 맞추고 있어서 익숙하고 편안한 울림을 전한다. 이 시집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그동안 먼 길을 걸어왔고 또 먼길을 가야 하는 인생유전의 원리를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먼 길을 가네」를 비롯해서 50여편의 시가 펼쳐진다. 저자는 특별히 멋을 부리지도 내용을 숨겨 꼬아서 드러내지도 않는 솔직한 대중 감상으로 삶의 희노애락을 노래한다.

저자 : 정안면 1955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1985년 문학무크 『민의』3집에 시 「찔레꽃 하얀 꽃잎」외 5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찔레꽃 하얀 꽃잎』, 『사랑을 찾아서』, 『지상의 그리움 하나』, 『꽃눈이 그대 어깨 위에 내려앉아』가 있다.

제1부 바람의 행로 / 다시 아름다운 사랑을 만나고 싶다 / 사랑 / 러브레터 / 꿈이라면 좋겠네 내게는 강물 같은 사람 / 그대 안에서 / 운해만리 / 꽃무릇 / 사량도에서 제2부 저 푸른 목숨들 / 바람꽃 / 지리산 산철쭉 / 시월 / 가을 엽서 / 어떤 울음 봄날 저녁 / 가을 여정 / 가볍게 가벼웁게 바람처럼 / 겨울 섬진강에서 / 조약돌 / 사람들은 내게 말하네 제3부 고향집 서대회 / 후회 / 지독한 치통 / 먼 길을 가네 / 그는 새가 되어 날아갔다 / 봉숭아 찔레꽃 가슴에 묻고 / 동행 / 오늘 / 다초점안경 / 융프라우를 오르며 / 해탈 제4부 시(詩)는 씨다 씨앗이다 / 나는 무섭다 / 아주 단순한 생각 / 반성 / 세월 앞에서 몽마르뜨 언덕에서 / 똘레랑스를 생각하며 / 회상 / 그대는 한 송이의 하얀 조선꽃이여 신 동북과정 / 독도를 그리며 / 푸른 산이여 푸른 강이여 푸른 목숨이여 오월이 오월에게 / 촛불바다, 미대사관 삼키다 - 해설/ 공광규 - 시인의 말

바람이 분다 바람은 풀잎 위에서 잠시 머물다 다시 안간힘으로 제 정신을 불어간다 바람은 어디로 불어가는 것일까 바람은 사람들의 지친 시간들을 쓰다듬으며 불어간다 바람이 불어가는 쪽으로 새들은 슬픔처럼 하강하며 날아가고 또 새들은 어디로 날아가는 것일까 바람은 절망하지 않는다 바람은 이미 절망의 덫을 쓸어안고 불어오기 때문이리라 오늘도 바람은 분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 그리운 이름들을 호명하며 바람이 분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는 제 슬픈 그림자마저도 바람에 안기며 흔들리고 있다 바람의 시작과 끝은 어디인가 펄럭이는 깃발 위에 잠시 머물다간 저 바람의 시간은 무엇인가 그 시간 속의 내 안으로 바람은 불어 온다 어떤 슬픔 같은 아니 어떤 사랑 같은 바람이 분다 내 안의 깊고 푸른 잠에서 깬 바람이 분다 그래 삶이라는 것은 저 바람의 머나 먼 행로를 따라 불어오거나 불어가는 사람의 일 일 것이다 - ( 바람의 행로 전문)

정안면의 다섯 번째 시집 『바람의 행로』가 ‘시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개인사와 역사, 그리고 과거의 아름다운 시절에 대한 동경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가파른 산길”과 “모랫바람 몰아치는 사막의 길”을 걸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고 있으며, 나아가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설령 어려운 현실이 삶을 고통스럽게 한다고 해도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정안면 시는 대중적 정서를 바탕으로 삶의 희로애락을 노래한다. 이런 점이 그의 시가 사랑받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요즘 우리 시단은 읽어도 무슨 뜻인가를 알지 못할 시편들로 넘쳐난다. 뿐만 아니라 역사나 사회의 현실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개인의 내면에만 치우면 경향도 크다. 이러한 때에 정안면의 시편들은 사람과 사람에 따뜻한 시선을 통해 사랑을 노래한다. 바람의 행로는 어디인가. 사랑한다는 말보다는 들꽃의 향기로 다가오는 사람이고, 멀리 있어도 살 내음으로 오는 사람이며, 어려운 삶 속에서도 해 맑은 웃음으로 살아가는 길이다. 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길이다. 이는 시인의 생리적인 삶으로 ‘바람의 행로’를 따라 “결코 포기하지 않는 그리운 이름들을 호명하는” 또다른 시작에 불과하다.